오피니언

[이병학 칼럼]횡령의 공모자가 된 한 슬픈 여성사(2)

아나니아와 삽비라에 대한 새로운 이해(행 5:1-11)

   ▲이병학 교수(한신대, 신약학)

본지는 한신대 이병학 교수(신약학)의 '횡령의 공모자가 된 한 슬픈 여성사' 연구논문을 4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초대교회에서 최초로 불의한 행실로 죽음을 맞이한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야기를 통해, 시장경제 체제 내 인간관계의 신뢰를 파괴하고 병들게 하는 '횡령'에 관한 문제를 성서신학적으로 풀어낸 글입니다. -편집자주




Ⅱ. 횡령의 공모자가 된 한 여성의 슬픈 이야기

 

1. 아내의 재산권이 설정된 토지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얼마 전에 서로 합의하여 그들의 토지를 공동체에 바치기로 결정하였다. 이제 그들은 공동체의 필요에 의해서 자신들의 토지를 매각하도록 요구받았다. 삽비라가 토지매각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깊이 개입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5:1은 아나니아가 그의 아내 삽비라와 함께 토지를 매각했다고 언급한다: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5:1-2a).

그런데 왜 본문은 삽비라가 토지 매각에 함께 했다고 강조하는가? 남편이 혼자서 토지를 팔수는 없었는가? 이러한 물음들을 해명하려면 결혼한 유대 여성들의 재산권에 대해서 사회사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약간의 재물이 있는 가문의 자녀들의 결혼 계약서에는 결혼이 파기될 경우를 대비해서 신랑의 부동산인 토지를 담보로 일정 액수의 위자료를 지급한다는 법적인 규정이 적혀 있었다. 그러므로 결혼 후에 남편은 이러한 토지를 관리할 권리는 있지만, 아내의 동의 없이는 그것을 마음대로 매각할 권리는 없다. 토지 매각에 아나니아가 그의 아내인 삽비라와 함께 있었다는 것은 바로 매각할 그 토지가 그녀의 위자료를 담보로 한 땅이기 때문에 그녀의 동의가 불가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토지의 매각의 자리에 아내가 동석하여 동의한다는 것은 자신의 재산권에 대한 법적인 안전장치를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삽비라가 공동체를 위해서 자신의 위자료가 설정된 토지를 매각하려는 남편에게 선듯 동의한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왜 그녀가 남편의 횡령 행위를 알면서도 가만히 있었는지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남편의 횡령을 묵인한 그녀의 불가피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찾아보아야만 한다.

 

2.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긴 남편의 횡령

사도행전이 저작되었을 당시에 이미 예루살렘은 파괴되었고,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지배아래 있었다. 소수의 귀족들만이 거대한 토지를 소유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주 작은 땅을 소유하거나 혹은 소작농으로서 남의 토지를 빌려서 경작하였다. 본문에 서술된 토지 매각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의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구입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모자라는 식량을 사기 위하여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소유한 아주 작은 토지를 팔아야 한다는 것은 재산을 공유하는 예루살렘 공동체의 빈곤화 과정의 나사못이 계속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이러한 상황에 처한 공동체의 결정에 의해서 이미 공동체의 공동 재산으로 결의하였던 그들의 토지를 매각하였다. 그러나 아나니아는 빈곤화의 과정을 겪고 있는 공동체의 장래를 신뢰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안전을 도모할 생각으로 공동체와 성령을 속이는 횡령을 저질렀다. 아나니아는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에 탐심이 생겨서 그 토지의 매각 대금의 일부를 빼돌리고(nosfizestai) 나머지 돈을 사도에게 가져왔다(5:2). 이것은 그가 공동체의 공금을 횡령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횡령을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인 노스피제스타이(nosfizestai)는 5:2절과3절 외에도 디도2:10에서 사용되며, 그리고 70인역 수7:1과 구약 외경인 마카비하 4:32에도 나타난다. 주석가들은 이 단어를 횡령으로 해석하지 못하고 일반적으로 “감추다”로 해석함으로써, 그 토지의 매각 대금이 공동체의 공금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였다.

수7:1에서 아간이 금지된 전리품을 취한 것이 횡령으로 표현되었다. 아간은 값비싼 외투와 은과 금을 취해서 자기의 장막 아래 묻었다. 그는 하나님의 소유를 사적인 목적으로 취하였으므로 죽음의 벌을 받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제거되었다.

마카비하4:32에서도 횡령이 언급되었다. 대제사장 메넬라오스가 성전에서 쓰는 금 그릇을 가로채서 그것을 사적인 목적으로 어떤 권력자에게 바쳤다. 그는 하나님의 성물을 횡령한 죄로 인하여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이런 경우들에서 보듯이 횡령은 자기 자신의 재산과는 관련이 없다. 자신의 재산을 횡령한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횡령은 오직 타인의 소유물이나 공금 또는 공동 재산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범죄이다.

아나니아가 저지른 횡령은 토지의 매각 이전에 이미 매각 대금의 전액을 공동체에 바치기로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서 결정되었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러한 점에서 아나니아가 토지의 매각 대금의 일부를 빼돌린 것은 더 이상 개인 소유가 아닌 공금을 횡령한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소속된 기독교적 공동체는 모든 물질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에 가입하는 자들은 개인 소유물이 있으면 그것을 가난한 자들과 나누기 위해서 공동체에 보고하고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서 언제든지 매각한다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결의하였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토지를 매각한 것은 이러한 공동체의 결정을 실행에 옮긴 결과이지 결코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생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마치 그들이 바나바의 행위(4:36-37)를 본 따서 공동체 안에서 개인적인 명예를 얻으려고 자신들의 토지를 매각하였다고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공금에 해당하는 토지의 매각 대금의 일부를 횡령하고 나머지를 공동체의 대표인 베드로에게 가져왔다. 아나니아를 향한 베드로의 질문들은 수사학적이다: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5:3-4). 이러한 베드로의 수사학적인 말의 의미는 토지 매각이 강요가 아닌 자발성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이미 공동체에 바치기로 결정한 토지의 매각 대금은 더 이상 개인 소유가 아니라 공동체의 소유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만일 아나니아가 그 공동체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땅이나 매각 대금을 고스란히 내놓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대안적인 사회의 실현을 위해서 물자를 공유하는 기독교적 공동체에 가입하였다. 그들이 토지를 매각하는 일을 수행했지만, 그러나 그 매각 대금은 더 이상 그들의 개인적인 재산이 아니라, 공동체의 공금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나니아는 분열된 마음과 탐심을 가졌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결정했던 것을 파기하고 횡령을 하는 과오를 범하였다. 베드로는 이것을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이라고 신학적으로 설명하였다.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물질을 우상 숭배하는 세상 한가운데서 생명, 정의, 평등, 그리고 사랑의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서 자신의 재산을 내어놓고 공유하는 이러한 공동체의 희망과 투쟁에 연대할 수 없다. 아나니아는 공동체에 거하는 성령을 기만하고 공동체에 손해를 끼쳤기 때문에 그 공동체에 소속될 자격을 상실하였다.

 

3. 남편의 횡령을 반대하지 못한 복종적인 아내

아나니아가 횡령이라는 범죄를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그런데 본문은 삽비가는 남편의 횡령 행위의 모든 과정을 함께 알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5:1). 삽비라는 남편의 이러한 불의한 횡령 행위를 함께 알고 있으면서도 반대하거나 저항하지 못하고 소리 없이 동조하거나 묵인함으로써 공범자가 되었다. 왜 삽비라는 남편의 횡령을 함께 알고 있으면서도 반대하지 못하고 묵인하였는가? 이 질문의 대답은 가부장적인 결혼에서 남편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는 아내의 역할에서 찾아야만 할 것이다.

삽비라는 가부장적 결혼에서 남편의 결정을 따르는 데 오랫동안 길들여진 억눌린 여자로서의 위치에 있었다. 그녀는 항상 말없는 존재로서 남편에게 복종하는 여자였다. 그러므로 그녀는 남편의 횡령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반대하지 못하고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묵인하였다. 남편의 불의한 행위를 함께 알고 있으면서도 저항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묵인했다는 것 자체가 남편의 실제적인 죄 보다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불의에 눈감고 저항하지 않는 행위가 불의를 온존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삽비라를 아나니아의 횡령에 함께 참여한 공범으로 간주하고 그녀를 책망하였다(5:9).

자신의 죽음을 초래한 삽비라의 죄는 남편의 횡령을 함께 알면서도 그것을 강력하게 반대하거나 저항하지 못하고 묵인한 점이다. 여성들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적 사회에 대한 비판과 변화 없이는 삽비라처럼 본의 아니게 불의에 저항하지 않고 묵인함으로써 공법자가 되는 희생자들이 계속해서 생길 것이다.

 

4. 동일한 심판을 받은 부부

베드로는 부부인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한 사람씩 차례로 심문하였다. 그들의 행위에 대한 책임은 각자에게 있다. 베드로는 재판장으로서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변호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죽음을 선고하는 재판장은 오직 하나님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의 철저한 결과는 그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것이라는 베드로의 준엄한 질책을 듣고 아나니아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사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5:5-6).

세 시간 후에 삽비라는 남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베드로 앞에 왔다. 삽비라를 심문하는 베드로가 “너희들”이라고 복수로 말하고 있는 점을 본다면 삽비라가 남편과 공모하여 횡령하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함게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곤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5:8-9).

베드로의 질문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있어서 비슷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직접적인 대답을 기다리는 질문을 하지 않았으나, 삽비라에게는 직접적인 대답을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삽비라는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는 질문에 “예, 이것뿐이라”고 거짓으로 대답하였다. 그녀는 남편의 횡령을 함께 알면서도 묵인했으며, 거짓말로 위장하려고 하였다.

베드로의 준엄한 질책을 받은 삽비라도 역시 남편처럼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5:10).

그런데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자신의 죽음을 불러온 아나니아의 죄는 헌금으로 약속한 토지 매각 대금의 일부를 숨기고 바치지 않은 것이고, 삽비라의 죄는 베드로 앞에서 거짓말을 한 데 있다고 해석하였다. 아나니아가 횡령한 것은 자신의 돈인 헌금이 아니라, 공동체의 공금이다. 또한 삽비라의 거짓말은 물론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가부장제적 결혼에서 자기주장을 피력하지 못하고 남편의 결정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억눌린 여자의 입장을 먼저 이해해야만 한다. 삽비라가 아직 남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모르고 있는 상황에서 베드로에게 자신의 남편의 횡령을 고발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죽음의 벌을 초래한 삽비라의 죄는 베드로 앞에서 거짓말을 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편의 횡령을 함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반대하거나 저항하지 못한 데 있는 것이다. 가부장제적 결혼에서 항상 남편에게 복종하도록 길들여졌던 삽비라는 남편의 횡령을 반대하지 못하고 말없이 동조하거나 묵인했기 때문에 결국 남편과 같은 비중의 죄과를 치르게 된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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