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희생은 실패가 아닌 새로운 역사 창조의 힘”

<4.19와 기독교>(1) 남북평화재단 이사장 박형규 목사

올해 4.19 학생 운동이 50주년을 맞는다.  19세기 말 전래된 한국의 기독교는 일제 식민 통치 시절 민족의 수난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등 ‘민족과 함께하는 교회’로서 민족의 근대화와 자주독립을 위해 힘썼다. 그러나 해방직후 교회들은 저마다 가진 신학적, 정치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교단과 교파가 여러 갈래로 나뉘는 분열을 겪었다. 또 한편으로는 교세를 지키기 위해 당시 집권당인 이승만 정권에 적극적인 협조도 했다. 이 같이 교회가 내부의 일에만 관심을 쏟는 동안 이승만 정권의 1인 독재 체재는 민족을 수난의 현장으로 몰고갔다. 급기야 차오를 만큼 차오른 민족의 한(恨)과 서러움은 4.19 학생 운동이란 역사적 사건으로 분출되기에 이른다. 일제 식민지 때하고 달랐던 점은 민족적 과제에 충실했던 교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한 층 더 발전시켰던 역사적이며 민족적 사건이 일어날 때 한국 기독교는 침묵을 지켰다는 얘기다. 

본지는 4.19 학생 운동 50주년을 맞아 한국 기독교 민주화 운동의 과거 역사를 조명하고자 한다. 4.19 학생 운동에의 참여를 회피했던 한국교회의 실상을 파헤치는 한편, 4.19를 계기로 한국 교회가 어떻게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게 됐는지, 그리고 앞으로 한국교회가 어떻게 미래 사회에 민족의 과제를 붙들고 다시금 ‘민족과 함께하는 교회’로 우뚝 설 수 있을지를 조망해 보고자 한다. - 편집자주 

1960년 4월의 화창한 봄 어느날, 궁정동에서 교회 성도의 주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총소리가 들렸다. 곧 이어 학생들이 들것에 실려 피 흘리며 운반 되고, 여기 저기서 부패한 정권에 항의하는 학생들이 분주히 뛰어 다니고 있었다. 학생들의 고귀한 피흘림에 큰 충격을 받은 한 목사는 교인들과 함께 광화문을 배회하면서 울며 회개했다. 교회의 사회 선교와 빈민 구제가 목회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자신도 원하지 않게, 자신도 모르는 큰 힘에 떠밀려 4.19민주화 혁명의 역사 속으로 떠 밀려 들어가고 있었다.

   ▲4.19민주화 혁명이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한국 민주화 운동의 산 증인인 박형규 목사에게 4.19 혁명의 의의와 한국교회 민주화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김정현 기자

이승만 자유당 정권은 일명 ‘사사오입 개헌’으로 유명한 3선 개헌을 통과시킨 이후 1960년 3월 15일 대선에서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릴레이식 투표', '피아노 개표', '투표함 바꿔치기' 등 가능한 모든 불법수단을 다 동원했다. 마산에서는 불법선거에 항의하며 대모하다가 실종된 김주열 군의 최루탄이 눈에 박힌 시신 발견 후 불의에 대한 분노는 학생들을 거리에 나오게 만들었고 265명의 숭고한 희생은 4월 19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함으로 민주화를 성취하게 했다.

당시 마포 공덕교회의 부목사로 부임했던 박형규 목사는 부정 부패의 정권에 저항하며 산화한 김주열 열사와 동향 출신이었음에도 마음 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양심의 소리를 애써 누르고 있었다. 그는  그것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며 목회에 전념했다.

“공덕교회서 부목사로 있을 당시 교회는 정치 사회 문제 보다 약한 사람 선한 사라미라인 같이 강도 맞고 상처 받은 이웃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었다. 부목사로 있으면서 교인들과 함께 빈민촌 돌아다니면서 찌그러지는 집도 세우고 가난한 사람들을 결혼시키고 장례를 지내줬다. 그러던 중 궁정동의 큰 요정에서 결혼식 주례를 마치고 나오는데 총소리나서 달려갔는데 학생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고 있었다. 순간 머리를 치는 듯한 커다란 울림이 다가왔다. '나는 가짜 목사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사람들의 결혼을 주례하고 장례식이나 도우고 있단 말인가' 마치 하나님이 너는 뭐하고 있느냐 소리치는 것 같았다

   ▲박형규 목사는 이시대 잘못된 것이 있다면 예언자적 목소리로 직언해야 한다고 말했다.ⓒ김정현 기자

4.19 민주화 혁명은 박형규 목사의 목회 방향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박형규 목사는 학생들이 피를 흘리면서 죽어가는 모습을 통해 받은 충격이 그로 하여금 기독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교회라는 간판만 내걸고 있는 것이 교회가 아니라 정의롭지 못하고 부조리한 역사 속에서 가난하고 저항하는 사람 편에 서서 바른 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 교회라는 의식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4.19라는 민주화 혁명을 일컬어 하나님의 뜻이 개입한 사건이라고 말한 박목사는 하나님은 역사적인 사건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그 사건을 통해 우리를 깨우치고 우리로 하여금 역사 안으로 들어가도록 이끄신다고 말했다.


박형규 목사는 “교회가 부패하고 부패한 정부를 지지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교회에도 오고 나라에도 온다”면서 그런 면에서 4.19는 당대 부패한 정권 뿐 아니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4.19 민주화 혁명이 발생하게 된 하나의 원인 중 하나는 교회가 교회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고 목사는 목회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며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해 내무부 장관 등 정권의 핵심 관료들이 전부 기독교인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저렇게 학생들이 피 흘리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교회가 제대로 설교하고 제대로 행동하면 정치인들이 그렇게 부패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에 있어서 한국교회가 4.19 민주화 혁명을 위해 희생됐던 숭고한 젊은 피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회 목사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큰 반성을 하고, 깨달음을 얻은 그는 ‘행동’으로 속죄의 길을 걸었다. 4.19를 기점으로 한국사회의 주요한 민주화 운동의 현장에 빠짐없이 참여하며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기나긴 투쟁을 했던 것이다. 박형규 목사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자취를 되돌아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내가 실패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희생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셨던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남산 야외음악당 부활절연합예배 사건이었다. 당시 경찰과 공권력의 삼엄한 경비 속에 계획을 실천하지 못했었다. 그 운동은 실패로 돌아가고, 박형규 목사는 당국에 적발 돼 보안사로 끌려갔고 결국 내란 음모죄로 감옥살이를 하게 됐다.

“내가 보기에는 이 사건은 실패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돈만 쓰고 실패한 사건인데 하나님이 그것을 사용하셨다. 남산 운동을 보고 학생들이 군부독재도 별것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 주게 됐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민청학련을 조직하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하나님은 우리는 모르지만 역사의 한 가운데 관여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희생 없이 무엇이 이루어지는 것이 없고 희생이 되더라도 민주주의가 회복 되었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박형규 목사는 한국 교회가 물질에 빠져 세속적인 유혹에 휘둘리지 않기를 당부했다.  또 교회가 예언자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칼 바르트의 말 중 “교회로 하여금 교회가 되게 하라”는 말을 좋아한다는 박 목사는 “교회가 잘못된 사회와 부조리를 향해 ‘예할 때 예 하고 아니다 할 때 아니다‘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고 했다.

“구약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선지자들은 항상 기존의 세력에 저항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기성 교단에 저항, 선입견에 관해 날카롭게 비판하셨고, 회당에서 쫓겨나 산과 거리에서 말씀을 전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현 정부가 하는 일을 잘한다고 지지하는 교회는 부자교회 큰교회들이다. 어렵고 힘든 노동자를 위한 교회는 과거보다 더 심각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이런 때 교회가 제대로 깨어 일어나 메시지를 바로 전해야 한다. 그런 일을 통해 역사는 이어왔고 나라는 바르게 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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