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

사도시대 교회

본지는 한신대 이장식 명예교수의 교회 역사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교수는 얼마 전 본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예수는 평신도였고, 초대교회 예수 운동을 이끈 무리들 역시 평신도들이었다"며 교회사에 큰 기여를 한 무명의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을 조명했습니다. 앞으로 연재되는 글이 평신도들의 신앙 생활 함에 있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4. 사도시대 교회

예루살렘의 마가의 다락방 교회처럼 사도시대의 교회들은 신도들의 가정에서 모인 가정교회(house church)였다. 사도행전에서 언급된 빌립보 교회, 고린도 교회, 그리고 로마와 에베소, 골로새, 라오디게아 교회들이 다 가정교회였다. 그리고 많은 교회들이 과부의 집이었고 부부의 이름으로 소개된 교회도 더러 있다.

사도시대는 100세 가까이 살았다고 하는 요한의 때까지를 말하며 사도시대의 교회라고 하면 주로 사도행전과 사도들의 서신에서 언급된 교회를 말하지만, 사실은 그밖의 더 많은 교회가 더 많은 곳에 역시 가정교회로서 존재해 있었다. 그 까닭은 오순절 사건 때 와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 살던 지방과 고을이 사도행전에 언급된 교회의 소재지보다 많기 때문이다.

사도시대와 이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교회가 가정교회일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교회가 박해 아래 있었기 때문이고, 그리스도교가 로마 정부에 등록된 종교가 아니었으므로 교회당을 지을 대지를 구입할 허가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신자들의 시체를 묻을 묘지를 갖기 위하여 장의사 조합을 만들어서 신자들을 묻을 땅을 얻을 수 있을 뿐이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야고보가 순교하고 AD 70년에 예루살렘이 함락한 후 크게 약화되었는데 교회의 중심이 되어온 예수의 동생들도 박해를 피해 베드로와 동행하여 선교하려 나가버렸고 남아있던 그들의 형제 유다와 그의 사촌 시메온도 순교하였고 감독들의 수명은 단명이었다. 예루살렘 교회에 관한 기록이 미비하지만 안디옥 교회의 고인 마크스(Marcus)가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이 되었다.

시리아 지방 교회

시리아 지방의 처음 교회인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독립하여 크게 성장해갔다. 안디옥은 당시 로마제국에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가는 대도시가 되어갔다. 이 교회는 이방선교운동의 발상지로서 역할이 컸지만 베드로도 이 교회에서 사역한 일이 있어서 안디옥 교회는 베드로를 초대 감독으로 생각하고 자랑으로 삼았다. 그러나 역사기록상 최초의 감독은 에보디우스(Evodius)이다.

안디옥 교회의 제2대 감독은 이그나티우스(Ignatius, 35-107)였다. 그는 사도는 아니지만 사도 요한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는 사도시대에 이미 교회의 지도자였으므로 그의 사역을 소개할만하며 그를 사도적 교부라고 부른다. 그는 69년경에 감독이 되어 시리아 지방의 교회가 그의 감화와 지도를 받고 있었다. 티투스와 도미티안 두 황제의 박해 아래서 목회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체포되어 투옥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수 명의 병사들이 그를 붙들어 로마로 가게 되었다. 안디옥에서 로마까지는 육로로 상당히 먼 거리였는데 가면서 그는 시리아 지방의 일곱 교회에 서신을 보내어 교회마다에 필요한 교훈을 주었고 사도 요한이 특별히 사랑한 폴리캅 감독이 있는 서머나 교회에 들렀다. 이때 가까이 있던 에베소와 마그네시아와 트랄레스의 교회 대표들이 찾아와서 이그나티우스를 위로하고 작별하였다. 그는 위의 세 교회 외에도 로마 교회와 필라델피아 교회에도 편지를 보냈다.

이그나티우스는 편지에서 말하길, 박해 아래서 교회가 분열되지 말아야 하며, 감독을 존경하고 주님의 성만찬을 엄수하여 교회의 일치를 견고케 하며, 고난에 동참하여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하며, 당시의 이단사상인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를 경계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서머나 교회에 보낸 편지에는 이단사상인 가현설(假現說)을 경계하라고 하였다. 영지주의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였고 가현설도 영지주의와 같이 예수는 사람의 진짜 몸이 아닌 유령이었다는 것이다. 서머나의 폴리캅에게는 특별히 친절한 권고를 많이 하였다. 과부들을 소홀히 하지 말 것과 예배를 자주 드릴 것과 교인 개개인의 이름을 외워야 할 것과 남녀 종들을 멸시하지 말 것 그리고 부부가 서로 사랑하도록 할 것과 감독의 허락으로 남녀가 결혼하게 할 것과 세례가 신자들을 무장시키는 투구이며 창이 되게 하라고 말하였다.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에는 로마 교회가 사랑의 제일인자라고 칭찬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박해를 받아 유배되어 고생하는 신자들을 돕는 일을 크게 칭찬하였다. 또 자기가 로마에 가면 사나운 맹수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는 절호의 기회이니 막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가 위대한 것은 세상의 미움을 샀기 때문인데도 그의 참 제자가 되고 싶다면서 “칼날에 가까이 갈수록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트라잔 황제 때 107년에 로마의 경기장 콜로세움에서 짐승의 밥이 되어 죽었다. 이 콜로세움은 트라잔 황제 때 완공되었는데 이그나티우스가 여기서 순교한 최초의 그리스도인이었다.

소아시아 지방의 교회

소아시아에는 바울이 세운 교회들과 이그나티우스의 편지에서 나오는 교회들과 베드로서에 나오는 교회들, 요한의 계시록에 나오는 교회들도 있었다. 이 지역의 교회들은 도미티안 황제와 트라잔 황제 때 박해를 받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투옥되거나 순교하고 광산으로 유배됐다. 박해의 주요 원인은 로마의 국가종교의 신전이나 황제의 신전에 참배하고 제물 바치는 일을 거부했다는 것이었다.

네로 황제가 로마에서 일어난 화재의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전가한 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미움이 널리 퍼져서 그리스도인들이 잘못이 없어도 관청에 끌려가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대교는 로마 정부에 등록된 종교이고 강력한 유일신 신앙이 인정되어 로마의 신전에 참배를 강요당하지도 않아서 종교 문제로 박해를 받는 일은 없었다. 다만 민족적으로 멸시를 받아 소외되었고 반로마 운동이 심하여 정치적으로 의심을 받아 박해를 받는 일이 있었다.

에베소 지방에는 사도 바울의 전도로 세워진 교회들 외에 사도 요한이 후에 와서 전도하여 세운 교회들도 많았다. 바울이 유대교를 비판한 것처럼 요한도 유대교를 심하게 비판하면서 계시록에서 말하기를 자기를 비난하는 유대인들은 사실 유대인이 아니라 사탄의 무리이며 그들이 옛날에 가졌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과 명예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넘어왔다고 하였다.

소아시아 지방에 있는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캅(Polycarp, 65-155)은 사도 요한으로부터 배우고 큰 사랑을 받았고 사도 요한이 그를 감독으로 임명하여 사도적 교부가 되었다. 박해 아래서 때로 체포되는 것을 피한 적도 있었는데 감독이 순교하면 교인들이 흩어져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감독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는 말이 이때 있었다.

폴리캅이 시골농장에 피신해 있다가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형장으로 끌려왔다. 재판관이 백발 노인이 화형 당하는 것을 측은하게 생각해서 만일 예수를 부인하는 말 한마디라도 하든지 로마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면 용서해주겠다고 하였으나 폴리캅은 거절하며 “내 나이 86살이 되도록 내 주 내 왕이 한 번도 나를 해치지 않으셨는데 내가 어찌 그를 부인하겠느냐?”고 말하였다.

형장에는 폴리캅이 잡혀왔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를 죽이라고 소리쳤다. 폴리캅은 맹렬한 불꽃 속에 싸였는데 그 불꽃이 그의 몸을 태우지 못하자 지켜보던 군인이 그의 몸을 찔러 피가 쏟아져 그 피가 그 불을 껐다고 한다.

이그나티우스 감독이 폴리캅에게 보낸 편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가톨릭(Catholic) 교회가 있다고 말하였는데 교회를 가톨릭이라는 형용사를 써서 말한 것이 처음으로 이 편지에서 나온다. 가톨릭이라는 말의 희랍어 의미는 ‘세계적’이라는 것이었는데 어느 특정 교회나 교파를 두고 한 말이 아니고 전체 교회를 두고 한 말이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온 세계의 교회는 하나의 교회라는 말이었다.

마게도냐 지방의 교회

마게도냐 지방의 대표적인 교회는 빌립보 교회와 뵈뢰아 교회였다. 이 교회들은 바울에게 물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캅이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가 있는데 빌립보 교회가 의롭고 모범적인 질서를 세웠고 이단을 막아내어 칭찬을 받을 만하다고 말하였다.

빌립보 교회는 감독이 없고 장로들과 집사들의 연합 체제였는데 폴리캅은 이들에게 교인들의 집을 심방할 때는 혀를 조심할 것과 일구이언하지 말 것과 절제된 생활을 하고 돈을 사랑하지 말 것과 교회 헌금을 별도로 관리하라고 권고하였다. 가현설의 이단을 조심하라고도 경고하였다.

아가야 지방의 교회

아가야 지방의 중심 교회는 고린도 교회였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오래 머물면서 선교하다가 여기에서 떠나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로 간 후 이 교회의 소식을 96년에 로마 교회의 제3대 감독인 클레멘트가 쓴 서신에 나온다.

서신에서 클레멘트는 고린도 교회를 칭찬하기를 큰 무역도시인 고린도를 찾아드는 많은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분별력 있는 건전한 신앙을 보여주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 분열이 생긴 일이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교회를 이끌어가던 평생직 장로들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교회의 쇄신을 위한다면서 새 장로를 선출하였던 것이다. 어떤 은사를 받은 사람들도 이 일에 동조하였다. 클레멘트는 서신에서 권고하기를 소수의 사람들이 일으킨 분쟁으로 주님의 이름이 훼손되지 않아야 하며 사도들의 초기 전통에 따라 교회 회중이 선출하여 세운 장로들과 집사들을 존경해야 하므로 물러난 장로들이 복직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로마 교회

로마에도 일찍부터 가정교회가 두세 곳 있었는데 바울이 로마서 말미에 로마의 교인들에게 인사한 것으로 알 수 있다. 로마 교회의 교인들이 박해 아래서도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잘 감당한 데 대한 칭찬은 이그나티우스와 폴리캅의 서신으로 잘 알려졌었다.

바울과 베드로의 순교 후에 로마 교회의 초대 감독은 리누스(Linus)였는데 그는 디모데후서 4장 21절에 나오는 리노라고 한다. 로마 교회의 옛 미사예전에는 리누스가 베드로의 시체를 묻었다는 말이 나오며 80년경에 순교하였다고 한다.

최초의 교회역사가 유세비우스는 로마 교회가 사도들의 전통과 관습을 이어받은 굳건한 교회라고 말하였는데 클레멘트가 고린도 교회에 권고한 것은 바로 자기가 감독으로 시무하던 로마 교회의 전통과 관습을 소개한 것이었다. 클레멘트는 그 편지에서 장로와 집사 직분을 말하면서 감독이란 뜻의 ‘에피스코포스(episkopos)’, 곧 감독이란 말을 사용하였는데 감독은 장로들 가운데서 교회 행정과 섭외 문제를 잘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을 교회 회중이 선출한 사람이었다. 이때 로마 교회가 감독제도를 확립시켰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같은 편지에서 평신도라는 뜻의 ‘라이코스(laikos)’란 말이 나오는데 초대교회 문서에서는 처음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감독과 감독급의 장로들 밖의 교인들을 평신도라고 부르기 시작한 듯하다. 교회 초기에는 집사나 교사나 예언자나 장로가 다 교회에 봉사하는 일꾼으로서 지위나 직급 의식이 없었지만 박해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 등의 이유로 감독제도와 같은 지도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감독제도는 사도의 권위를 이어받아 사도 계승을 확립해갔으며 감독이 교회 일치와 통일의 상징이 되었다. 로마 교회의 감독제도는 전통이 되어 다른 교파들에도 파급되어 갔다.

북아프리카 지방의 교회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와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되돌아간 사람들 중에는 북아프리카의 구레네와 리비아 지역의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돌아가서 자기들 지역에 교회를 세웠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기록은 없고, 빌립에게 세례를 받은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가 귀국해서 교회를 세웠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에티오피아에는 일찍 복음이 전파된 것 같고, 수도 아디스아바바에는 빌립기념교회당이 있다.

북아프리카의 중심 도시 알렉산드리아는 학문이 융성한 도시로 알렉산더 대왕이 세운 훌륭한 도서관도 있었다. 이 도시에 유대인들이 백만 이상 살고 있었고 헬라계 유대인들이 많아서 구약성서의 헬라어역인 70인역이 발행되어 헬라계 유대인들은 이 70인역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구약을 헬라 사상과 조화되게 해석한 필로(Philo)라는 학자의 저서는 그리스도교의 신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사도시대 교회에 위험이 된 영지주의 사상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나온 것이었고, 희랍철학의 영향을 받아 육신을 포함하여 모든 물질을 가멸적인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하고 영적이고 정신적이고 초월적인 것만이 불멸한 가치가 있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사상의 영향으로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리스도교 신학 논쟁에서 육신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보다 그의 신성(神性)을 더 강조하였다. 알렉산드리아 교회는 콥틱(Coptic) 교회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에뎃사 교회

에뎃사(Edessa)는 오늘날의 우르파(Urfa)인데 로마제국과 파르티아(바대) 왕국 사이에 낀 소왕국 오스로에네(Osrhoene)의 수도였다. 오스로에네 왕국은 약 300년간 시리아 문화의 전성기를 이룩한 나라였다. 에뎃사는 시리아 안디옥에서 동쪽으로 약 100km 떨어져있고 유프라테스강의 지류에 있어서 페르시아만의 동남쪽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아브라함 시대 때부터 대상(隊商)들의 통로가 된 곳이었다. 그래서 에뎃사는 그리스도교가 인도와 중국으로 전파되는 선교 거점이 되었던 것이다.

예수의 제자 다데오가 쓴 것으로 알려진 「다데오 서신」에는 일찍부터 에뎃사에 복음이 전파된 기록이 있다. 다데오는 본래 에뎃사에 살던 히브리 사람으로서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았고 이후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에뎃사에는 옛날 시리아 교회 문서들이 있는데 에뎃사의 왕 아바가(Abagar, the Black)와 예수 사이에 서신 교환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아바가가 예수의 명성을 듣고 예수가 고난을 받던 수난주간에 아나니아라는 사자를 예수에게 보내어 예수의 교훈과 기사와 이적을 칭찬하고 유대나라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지 말고 오스로에네로 오라고 초청하였다. 그러나 예수는 그의 초청을 거절하고 그의 왕국을 축복하였다. 요한복음 12장에 예수를 만나 뵙겠다고 청한 그리스 사람들은 어쩌면 아바가 왕이 보낸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리스는 예루살렘에서 너무 먼 나라여서 이때 그리스에서 사람들이 왔을 가능성이 적고, 예루살렘에서 과히 멀지 않은 에뎃사에서 온 사람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바가 왕의 별명은 검은 사람(the Black)인데 그는 얼굴이 유대인보다 검었으므로 예수에게 보낸 초청 편지에서 말하기길 ‘내 얼굴이 검다고 하여 거절하지 마시고…’라고 하였다.

다데오는 아바가 왕의 힘을 빌려 모든 우상을 없애고 많은 교회를 세우고 자기의 제자 한 사람을 감독으로 세워서 그 지방의 교회를 다스리게 하고 자기는 시리아의 큰 도시들에 가서 전도하였는데, 티그리스강변에 있던 메소포타미아의 대도시들에서였다. 그는 그곳의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들에게 예수의 교훈과 수난 이야기를 들려주어 많은 신자들을 얻고 많은 교회를 세웠다.

에뎃사에는 다데오의 서신 외에 「아다이의 교리」(Doctrine of Addai)라는 문서가 있는데 기록된 연대는 미상이지만 이 책에도 다데오의 에뎃사 선교가 기록되어 있다. (아다이와 다데오를 이명동인으로 보고 있다.) 다데오의 서신과 함께 아다이의 교리는 신약의 다른 사도들의 서신들처럼 시리아 지방의 교회에 널리 읽힌 책임에 틀림없다.

박해 시기에는 가정집이 그리스도인들의 집회소였으나 2세기 초 에뎃사에 정식 교회당 건물이 섰다. 이 교회당이 땅 속에 묻혔다가 발굴된 곳이 유프라테스강변의 두라(Dura)에서였는데 현재 이 교회당의 유물은 미국으로 이송돼 예일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에뎃사 교회가 시리아어로 희랍어 신약성서를 번역하여 발간한 것은 AD 200년 이전이었는데 이것이 최초의 신약 번역이 되었다. 구약의 시리아어 번역은 2세기 전부터 되어서 사용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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