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4·19 학생혁명 50주년의 역사신학적 의미(Ⅰ)

<4.19와 기독교>(2) 감신대 이덕주 교수 발제문 기고

연재 중인 <4.19와 기독교> 2탄으로는 4.19 학생운동을 역사 신학적으로 조명한 감신대 이덕주 교수(감신대 교수/ 한국교회사) 발제문을 기고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본 발제문은 얼마 전 한국복음주의협의회에서 발표된 내용으로, 4.19를 전후로 한 기독교의 반성과 회개를 촉구해 참석자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덕주 교수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차례로 싣는다. - 편집자주

제목: 두 눈 부릅뜨고 다물지 못한 입- 4·19 학생혁명 50주년의 역사신학적 의미


들어가는 말

“근형[아들]은 눈을 부릅뜬 채 입을 벌리고 그 무엇을 부르짖다가 그 무엇을 노려보다가 쓰러졌음이 분명했다. 내가 근형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 볼 때 옆에 있던 의사 한진섭씨는 근형의 부릅뜬 눈을 감기면서 기도를 올렸다. ‘당신의 거룩한 피는 역사에 길이 빛날 것이며 민족의 가슴에 오래 살 것입니다. 고이고이 잠드소서’ ‘민주주의 만세! 이근형군 만세!’라고. 그러나 나는 울지 않았다. 거룩한 내 아들 아니 대한의 아들이 과감히 죽어 가는데 왜 울어야 하는가! 장하다. 내 아들. 어미는 울지 않으련다.”

데모한다고 나간 삼대독자 외아들을 찾아 경찰서마다 찾아 헤매다 사흘 만에서 어느 병원 차디찬 시체실에서 “눈을 부릅뜬 채 입을 벌리고 그 무엇을 부르짖다가, 그 무엇을 노려보다가 쓰러진” 아들. 그런 아들의 시체를 발견한 어머니의 “장하다. 내 아들! 어미는 울지 않으련다.”는 절규. 그 앞에서 교회는 머리를 숙이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독재정권의 폭력과 총알에 수 없이 스러진 젊은 청년 학생들의 죽음에 일정부분 책임이 있었던 한국교회는 4.19에 대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교회는‘입이 있으나 할 말이 없었지만’(有口無言), 반면 희생자들은 한국교회에 대해 ‘입은 없으나 할 말이 많았다.’(無口多言)  기독학생 이근형이 길거리에서 총을 맞고 쓰러지면서 다물지 못한 입으로 살아남은 자들에게 하고자 했던 말은 무엇일까?

4·19 학생혁명은 해방직후 수립되어 12년 동안 통치하면서 ‘독재와 부패’혐의를 쓰게 된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의 붕괴를 가져왔고 그와 함께 이승만 ‘장로’ 대통령의 중요 지지기반이었던 기독교계의 지도력과 권위도 함께 붕괴되는 수치와 아픔을 경험하였다. 19세기 말 선교를 시작한 기독교는 한말 일제의 침략으로 인한 위기 상황, 그리고 일제시대 일제의 식민통치로 인한 민족적 수난 상황에서 민족의 근대화와 자주독립이라는 민족적 과제에 나름대로 적극 부응하여‘민족과 함께 하는 교회’의 면모를 구축하였다. 그러나 해방직후 분단시대에 한국교회는 신학적,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한 교회 안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지속적인 분열을 연출하였으며 민족의 화해와 일치, 그리고 그것을 통한 평화정착이라는 민족적 과제에 충실하지 못했다. 오히려 해방 후 한국교회는 분단구조 속에서 배태된 1인, 혹은 1당 독재, 그리고 그로 인한 정치 사회적 부패구조와 현실에 침묵하거나 방조함으로 사회악을 고발하고 경계해야 할 ‘예언자적’ 기능을 상실한 종교집단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기독교는 자유당 정권의 부패와 타락에 상당부분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4·19는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권력에 대한 심판만은 아니었다. 그런 정치권력의 부패와 타락에 침묵하였을 뿐 아니라 동조 내지 방조한 교회에 대한 심판이기도 했다. 4·19는 정치권력에 밀착하여 이권과 편의를 추구하려는 종교단체의 집단 이기주의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4·19와 관련하여 회개와 반성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그러하지 못했다. 4·19 직후 회개와 번성이 뼈를 깎는 아픔처럼 철저했더라면 이후 한국교회는 달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오늘 한국교회는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사회적 비판과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다. 일반사회 언론, 특히 청년 학생계층이 주도하는 인터넷 언론에서 기독교는 비난을 넘어 혐오의 대상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런 반(反) 기독교 정서에 합리성과 객관성을 결여된 면이 없지 않지만 그런 비판과 비난의 빌미를 제공한 당사자가 바로 교회 지도자들과 기독교라는 점에서 변명과 항변대신 자기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반성적’관점에서 이 글에서는 4·19를 촉발시킨 자유당 정권과 유착되었던 당시 기독교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4·19 이전 자유당 정권과 밀착한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소개할 것이다. 

‘박마리아의 명함’: 정치권력과 결탁한 교회

한국 감리교회는 해방직후(1946년) 역사청산 문제로 재건파·복흥파 분열을 이루었다가 3년 만에 통합한 경험이 있고 전쟁직후 교권과 지방색 분제로 2차 분열이 이루어져 1954년 (충청도 중심의) 호헌파 세력이 별도 총회를 조직해 나갔다. 2차 교단 분열 직후 감리교회 안에서는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면서 예배당과 재산을 차지하려는 무력충돌과 법정소송이 이어졌다. 그런 혼란기에 호헌·총리원 양측에서 정치권력의 힘을 빌려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시도들이 추진되었다. 그런 배경에서 ‘박마리아 명함’이야기가 나왔다.

1954년 3월 총회에서 호헌파가 분열해 떨어져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냉천동 감리교신학교 구내에 있던 총리원에 경찰이 들이닥쳐 회계 장부 일체를 압수해갔다. 이때부터 수개월에 걸쳐 유형기 감독을 비롯하여 총리원 관계자들이 ‘공금 횡령 및 유용 혐의’로 집중 조사를 받았다. 대략 세 가지 혐의였다. 첫째, 어느 감리교 평신도가 정부 공사에 입찰 신고를 하는데 필요한 예금잔고서를 마련하기 위해 총리원 회계 장부에서 빼내 사용하고 돌려준 일이 있었는데 비록 총리원 돈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총리원 돈이 개인 통장으로 나갔다 왔음으로 유형기 감독이나 회계 장기수 목사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둘째, 1952년 여름 교육국 주최로 신탄진에서 주일학교 지도자 강습회를 개최하였을 때 사용하고 남은 식량 40여 가마를 개인적으로 횡령했다는 혐의로 교육국 총무였던 김광우 목사가 집중 조사를 받았다. 셋째, 서소문에 있던 토지 임대권리 양도 계약금으로 15만원을 교육국 재정에서 지출한 일로 역시 김광우 목사가 조사를 받았다. 그 땅의 임대권 소유자는 중앙신학교로서 당시 중앙신학교 이사장이 야당(민주당)에서 활약하고 있던 정일형 목사여서 그의 명의로 계약금이 지출되었는데 이 때문에 “총리원을 통해 야당에 정치자금이 흘러 들어간다.”는 의혹을 받았고 그 때문에 더욱 집요한 조사를 받았다.

결국 유형기 감독은 ‘공금 유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되었다. 유형기 감독을 비롯한 총리원 관계자들은 조사받는 과정에서 사건은 감리교회의 내부 투서로 시작되었으며 ‘정치적인’ 배경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알았다. 총리원측은 사건 담당 검사로부터 사건 배후에 “정부 고위층이 있는 것 같다”는 언질을 받고 갈홍기 박사를 의심했다. 당시 공보처장으로 있던 갈홍기 박사는 1946년 재건파 분열 당시부터 유형기 목사나 김광우 목사와 반대편에 섰던 인물로 자유당 정권의 ‘실세’로 통하던 그가 ‘호헌파’와 결탁하여 사건을 정치적으로 확대시키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총리원측은 검찰총장을 움직일 수 있는 ‘보다 높은 윗선’을 찾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당시 총리원 실행위원이었던 박마리아의 명함을 얻게 된 것이다. 김광우 목사의 증언이다.

“당시 이사회 실행부 위원에는 김활란, 박마리아, 박현숙씨 등과 몇몇 목사들이 있었다. 이 분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진정서를 보이고 서명 날인을 청하였다. 그들은 다 교회를 위하여 순응을 하였다. 그 다음 박마리아씨의 명함을 얻었다. 검찰총장에게 나를 소개하는 명함이었다. 나는 그 명함을 가지고 진정서를 휴대하고 총장 비서실의 문을 노크했다. 총장이 진정서에 날인한 이름들을 훑어보더니 그 진정서를 비서실에 접수하라고 하며 모든 사정을 잘 알겠다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해주었다. 나는 재삼 관대히 선처해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때 검찰총장은 한격만씨였다. 전형적 법관의 모습이 얼굴에 박힌 깡마른 체구의 인물이었다. 당시 세도가 당당한 박마리아씨의 명함을 보았던 때문인지 퍽 친절하게 문밖에까지 나를 배웅하면서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한 마디 하는 말이 ‘책동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진정서가 유효했는지 검찰에서는 ‘기소유예’ 처분으로 이 사건을 일단락 지었다.”

곧바로 총리원측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총리원측은 호헌파로 나간 목사와 교회에 대한 법정 소송을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소송의 빌미는 호헌파에서 제공했다. 당시 총리원 유지재단에 속한 교회 재산은 대부분 대지만 등록되어 있고 예배당이나 사택 건물은 미등기인 상태가 많았는데 호헌파로 나간 교회에서 교인 대표 명의로 건물 등기를 한 것이다. 그 결과 토지는 총리원, 건물은 호헌파 소유가 되었다. 그러자 총리원측에서 ‘교회 건물 등기 말소 소송󰡑을 제기하였고 소송이 걸린 교회마다 예배당 쟁탈전이 벌어졌고 경찰이 동원되었다. 당시 호헌파를 이끌었던 박설봉 목사의 증언이다.

“드디어 보복의 회오리바람이 강력하게 일어났습니다. 즉 사회재판이 40여 건 걸려 온 것입니다. 고 조화철 목사는 ‘설교 가차압을 당했고 동대문교회는 ‘교인의 교회출입 가처분 신청에 걸렸으며 천안교회, 만리동교회, 중앙교회 등 25여 교회 및 주택 명도 소송이 걸렸고 또 고명균 목사의 경우는 교회 재판을 열어 호헌파라고 목사 파면 처분을 받았고 고목사는 돈암동교회에서 쫓겨났으며 그것도 부족해서 자유당 박마리아 명함을 가지고 경찰을 앞세워 종로 중앙교회에서 설교하고 있는 엄재희 목사와 정등운 목사를 강당에서 끌어내렸습니다. 또한 상이군인 30여 명을 방O신 목사와 박O번 목사가 끌고 와서 예배 보는 교인들을 전부 끌어냈으며 남양교회 장호원교회는 방O신 목사가 도끼로 예배당과 강단을 때려 부수고 야단법석을 쳤습니다. 이것도 다 박마리아의 명함에 의하여 경찰 입회 하에 행해졌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규탄한다고 해서 시경 강력계 형사들이 총동원되어 체포 선풍이 불어왔습니다.”

호헌파는 총리원측이 경찰의 비호를 받아가며 호헌파 목사와 교회를 탄압한 배경에 ‘박마리아의 명함’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총리원 회계 부정 사건을 ‘기소 유예’로 흐지부지 끝나게 만든 것도, 호헌파 교회에 경찰이 들이닥쳐 교인들을 몰아낸 것도 모두 ‘박마리아의 명함’ 때문이라 본 것이다. 하긴, 그 시기 ‘박마리아의 명함’은 교계 뿐 아리라 일반 정치 사회에서도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화여자대학 교수였던 박마리아의 명함이 이처럼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당시 자유당 실세였던 국회 부의장 이기붕의 부인이라는 사실 외에 개인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박마리아의 명함’을 둘러싸고 벌어진 호헌파와 총리원 사이의 힘겨루기는 분열시대를 사는 한국 감리교회의 부끄러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교회가 분열된 것만도 부끄러운 일이고, 목사와 교인 간에 토지와 건물을 둘러싸고 소유권 소송을 벌인 것은 더욱 부끄러운 일인데 상대편을 제압하기 위해 ‘윗선’을 찾아 세속 정치권력과 결탁한 것은 더더욱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교회는 점차 세속 정치권력과 ‘부정한 유착관계를 맺게 되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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