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한신대 이장식 명예교수의 교회 역사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교수는 얼마 전 본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예수는 평신도였고, 초대교회 예수 운동을 이끈 무리들 역시 평신도들이었다"며 교회사에 큰 기여를 한 무명의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을 조명했습니다. 앞으로 연재되는 글이 평신도들의 신앙 생활 함에 있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5. 교회 직제와 예배와 기강
직제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사도들이 예수의 가족과 함께 시작한 교회여서 자연히 사도들이 교회의 주역을 맡았으나 사도들은 주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교회 밖에서 하였기 때문에 교회 안의 교인들을 보살피고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들을 도와주는 일을 맡을 일곱 집사를 세웠다. 집사라는 헬라어 디아코노스는 ‘섬긴다’는 뜻이다.
신약성서에는 이 집사를 선출해서 세운 기록만 있을 뿐 장로는 언제부터 있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교회의 장로직은 유대교 회당의 장로직을 본받아 생긴 것이 분명하다. 장로의 헬라어 의미는 ‘원로’다. 사도 바울도 자기가 세운 교회에 장로들을 세우고 교회를 다스리게 하였다. 여러 지방으로 다니면서 전도하였기 때문에 한 교회에 머물며 교회를 지키거나 다스릴 수 없었다.
집사나 장로직분 외에 여러가지 다른 직분이 교회에 생기게 된 것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알 수 있다. 바울은 그 직분의 서열까지 매겼는데 사도, 예언자, 교사, 기적 행하는 사람, 병 고치는 사람, 남을 도와주는 사람, 관리하는 사람, 방언하는 사람 등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집사라는 직분이 없는데 관리하는 사람을 집사라고 하였는지 알 수 없다. 예언자는 예언하는 사람으로 생각되지만 다른 초대문서에는 예언자를 지방을 순회하면서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라고 한다. 이 많은 직분 중에 교회의 직분으로 존속된 것은 사도와 장로와 교사, 집사이다.
초기부터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헬라어 라오스, laos)의 회합(헬라어 에클레시아, ekklesia)이라고 불렸다. 직분의 유무나 고하를 막론하고 다 하나님의 평등한 백성이었고 직분들은 서열이나 위계를 말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전하는 직분이라고 생각하였다. 직분이라는 말은 분깃 또는 몫이란 뜻을 가진 헬라어 클리로스(klyros)로 표기되어 있는데 시편 119:57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나의 분깃이라고 한 말씀대로 교회 직분자는 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직분이며 이들을 가리키는 클러지(clergy·성직자)라는 영어명사가 여기서 생겼다. 즉 초대교회 시대는 사도와 장로 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 직분이 다 클러지 곧 성직자였다.
96년 로마 교회의 감독 클레멘트는 서신에서 장로와 집사를 일반 신도들과 구별하여 클레로스라고 불렀는데 이때쯤 해서 로마 교회가 감독과 장로와 집사를 전문적인 교회 직분(clergy)으로 간주하고 여타의 신도들을 평신도라는 말로 표현한 것 같다. 사도행전에서도 교회에 장로들이 여럿 있었고 그중 한 사람이 감독으로 선출된 것으로 말하고 있다. 감독은 교회를 대표하여 교회 안팎의 일을 관장하였고 한 교회에 감독을 한 사람만 두어서 교회의 통일과 일치를 도모하였다.
2세기 초반에 쓰인 시리아 지방 교회의 한 문서 「12사도의 교훈」에는 초기의 교회 직분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있다. 사도와 예언자와 교사는 지방을 순회하면서 전도하였는데 그들이 교회에 왔을 때는 주님을 맞듯이 환영하고 대접하라, 교회당 하루만 머물며 가르쳐야 하는데 부득이한 일이 생기면 하루만 더 머물게 허락하라, 그 이상 머물려 하면 거짓 예언자로 치부하라, 예언자가 떠날 때는 다음 전도할 곳까지 가는 데 필요한 음식만 제공하고 만일 돈을 요구하면 거짓 예언자로 치부하라고 기록하였다.
순회하는 예언자나 교사가 만일 한 교회에 정주하여 교회를 목회하겠다고 하면 그를 받아들이고 그의 생활비를 교회가 부담해야 하며, 옛날 제사장에게 바쳤듯이 농작물이나 가축의 첫 수확과 심지어 포도주의 첫 항아리도 목회자에게 바치라고 당부하였다. 그러나 예언자나 교사가 주님의 말씀에 어긋나게 가르치면 배척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만일 교회에 목회자가 없는 경우는 목회자에게 바칠 것을 가난한 이웃에게 주라고 가르쳤다.
또 예언자가 성령을 받아 황홀경에서 예언할 때 그 예언의 진위를 시험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될 것이나, 예언자가 주님이 행동하듯 행동하는지 않는지를 보아 예언자를 가려낼 것이며 만일 성령을 받고 예언한 뒤 돈을 요구하면 거짓 예언자로 치부하라고 기록하였다.
교회에 대한 박해가 심해감에 따라 교회는 목회와 관리 체제를 체계적으로 만들어서 안으로는 교회의 일치를 도모하고 밖으로는 교회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감독의 직권과 권위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장로들 가운데서 행정력과 통솔력이 있는 사람을 감독으로 세웠는데,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캅처럼 사도들이 선출하는 경우도 있었고 또는 장로들 중에서 교인들의 동의를 얻어 선출하였다. 그리하여 감독이 사도의 계승자로 인정받았다.
이그나티우스와 폴리캅과 클레멘트의 서신들은 한결같이 교인들이 감독을 마치 하나님처럼 또는 예수처럼 존경하고 따를 것을 말하면서 감독 없이는 유카리스트(eucharist·성찬식)를 집행하지 말도록 지시하였다. 감독이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교회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속사도시대에는 지방에 따라 교회 조직이 달라서 어떤 교회는 감독이 둘 이상 있었으나, 한 교회에 감독 한 사람만을 두는 단일감독제도로 발전해가면서 교회의 대내적 일치가 높아지게 되었다.
감독들이 교회들 사이의 협력과 친교를 위하여 지역적으로 모이기 시작한 것이 노회(synod) 조직의 시작이었다. 노회의 하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교회의 절기 지키는 일과 교인들의 이동에 따른 이명증서와 교회의 기강과 함께 로마제국의 박해에 대응하는 문제 등등이었다. 이렇듯 지역별로 교회간 협력과 조직이 확대되면서 아시아와 북아프리카와 유럽의 대표적인 도시에 있는 교회들이 각 지역의 중심 교회가 되어 그 지역 교회들 간의 협력을 도모했다. 그리하여 아시아에는 안디옥 교회, 북아프리카에는 알렉산드리아 교회, 그리고 유럽에는 로마 교회가 중심이 되어 교구(see)가 형성되어 갔다. 그리고 이 세 큰 도시가 중심된 교구를 수도교구(metropolitan see)라고 부르고 수도교구의 감독을 후대에 와서 대감독(archbishop)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수도는 국가의 수도가 아니고 대도시라는 말이다. 이 수도교구의 감독을 중심하여 교회의 제도와 신앙고백과 신학과 절기가 각각 다르게 발전해갔다.
예배
하나님을 예배하는 의식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경건의 최선의 표현이다. 초대교회는 유대인 회당의 말씀의 예배를 본받아 찬송하고 기도 드리고 성서 말씀을 읽고 설교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예수의 말씀과 사도들의 서신을 읽었고 구약은 예수가 장차 오실 것과 그의 구원의 사역을 미리 예언한 책으로 생각하고 읽었다. 그리하여 설교자는 반드시 구약과 신약의 본문을 함께 읽고 풀이하였다.
유대인 회당의 예배는 제사가 없는 것이었으나 초대교회는 매 주일예배 때 말씀의 예배를 제1부로 드리고 곧이어 성찬식을 행하였는데 이는 예수가 자기 몸을 친히 대속의 희생제물로 바치고 죽으신 것을 기념하는 신령한 제사의식으로서 그가 제자들과 나눈 최후의 만찬을 본뜬 것이었다. 그의 유언대로 그를 기념하는 것이었다.
예루살렘 교회의 초기 성찬식은 ‘떡 떼기’ 또는 ‘애찬(Agape)’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교인들이 주일날 교회에 예배 드리러 올 때 형편대로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말씀의 예배가 끝나면 그것을 하나님께 감사(축사)하고 서로 나누는 식사였다. 그리하여 이 성찬식을 감사라는 뜻의 헬라어 유카리스트라고 불렀다. 이것을 우리가 성만찬식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때의 애찬은 특별한 의식을 갖추지 않고 말씀의 예배가 끝난 직후 그 자리에서 감사기도 하고 나눈 공동식사였으므로 예배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리하여 나중에 유카리스트를 제2부 예배로 구분하여 의식을 갖추어 드리게 되었다.
유카리스트는 거룩한 성찬이어서 반드시 세례교인만이 참예할 수 있었고 교회의 벌을 받고 있는 사람은 유카리스트의 시작 시 반드시 퇴장하여 밖에서 기다리게 하였다. 이것이 후대 교회가 말하는 출교처분인데 성찬을 나누는 성도의 거룩한 교제에서 제외되는 것을 의미한다.
유카리스트는 엄숙하였다. 신자들이 공동기도를 드리고 평화의 키스를 하였다. 가져온 떡과 포도주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물이었고 집사가 포도주와 물을 섞은 잔 위에 감독과 장로가 손을 얹어 축사한 뒤 아름다운 의식문을 외고 기도를 드린 후 분배하였다.
이처럼 유카리스트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기념하면서 죄를 통회하고 영육이 성화되어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는 의식이었다. 그리고 성찬을 받을 때마다 그리스도와의 계약(언약)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유카리스트를 엄숙하게 집행할 때 떡과 포도주가 단순한 물질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진짜 살과 피로 신비하게 변한다고 믿는 민간신앙이 생겼다. 아무튼 초대교회 때부터 그리스도교의 예배는 말씀의 예배와 유카리스트(성찬 예배)를 합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