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12)

신앙의 이설

본지는 한신대 이장식 명예교수의 교회 역사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교수는 얼마 전 본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예수는 평신도였고, 초대교회 예수 운동을 이끈 무리들 역시 평신도들이었다"며 교회사에 큰 기여를 한 무명의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을 조명했습니다. 앞으로 연재되는 글이 평신도들의 신앙 생활 함에 있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2. 신앙의 이설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자기가 가르친 것을 정하여 지키게 하라고 하시고, 또 성령이 오면 자기가 가르친 것을 기억나게 할 것이니 누구에게도 속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러므로 예수의 가르침을 올바로 가르쳐서 지키게 하는 것이 사도의 전승의 중요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AD 2세기에 접어들기도 전에 성경에 편입될 수 없는 문서들이 사도의 교훈에 어긋나는 이설(異說)들을 퍼뜨려서 신도들을 오도하는 일이 있었다.

영지주의

초대교회에 가장 위험스러운 사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을 부인하는 영지주의(Gnosticism)였다. 바울의 서신 여러 곳에 이 영지주의를 의식한 경고가 있다. 예수가 육신을 입고 왔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면서, 예수는 분명히 육신의 몸으로 우리와 화해하였고 온갖 충만한 신성(神性)이 육체로 거하였으니 누가 철학이나 헛된 속임수로 노략할까 주의하라고 골로새 교인들에게 말하였다. 그가 여기서 경고한 것이 곧 영지주의 철학이다.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와 서머나의 감독 폴리캅도 편지에서 바울과 같은 경고를 하였는데 이들은 영지주의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 에베소 지방에서 오래 설교한 사도 요한도 요한복음서를 쓰던 당시에 영지주의의 위험을 막기 위하여 요한복음 서두에서 하나님(말씀)이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고 기록하였다.

영지주의는 여러가지 이교사상과 철학이 혼합되어서 시리아 지방과 알렉산드리아 지방에서부터 퍼져나가서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혼란케 한 사상이다.

영지주의의 기본적인 사상의 하나는 물질과 정신을 엄격히 구별하는 소위 이원론을 가지고 정신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천지(물질의 세계)를 만든 신은 최고의 절대적 신이 아니고 이류에 속하는 신 즉 희랍의 신화에 나오는 데미어지(Demiurge)신이라는 것이다. 구약의 하나님도 이 데미어지 신이고, 절대적인 신은 물질계와는 관계 없이 순수한 정신계인 천상에 초월해 있으며 그 절대신은 사람이 될 수 없고 알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구원은 물질계와 물질적인 것에서 도피하여 해방을 받는 것이고 그 길은 엄격한 금욕생활에 있다, 사람이 영혼의 구원을 얻으려면 육신을 괴롭혀서 육적인 모든 욕망을 억제시켜야 한다, 결혼이나 성생활 등 육체를 즐겁게 하는 것은 다 피해야 한다, 종교생활에서 물질적인 요소는 아주 배제되어야 하므로 유대교의 제사에서 짐승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무의미하고 야만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또 그리스도인의 구원은 예수를 통하여 얻을 수 있으나 그를 육신을 가진 분으로 믿는 것은 잘못이다, 그는 죄스러운 육신을 입고 태어나지 않았으며 사람의 눈에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육체가 없었다고 말한다. 이것을 가현설(假現說)이라고 하는데 마르키온(Marcion)이라는 사람이 강조하며 구약을 배제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릴 몸이 없었으므로 육신의 고난을 당하지 않고 하늘로 회귀하였고 구약에서는 알지 못했던 사랑의 하나님을 예수가 계시해주었다고 말하였다.

이처럼 종교에서 물질적이고 형상을 가진 모든 것은 무의미한 것이므로 세례식의 물이나 성찬식의 떡이나 포도주가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 때문에 이그나티우스 감독이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성찬식을 강조한 것이었다.

또 영지주의자들은 성서책의 가치도 인정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고 문자도 물질적인 것이라는 이유였다. 구원에 필요한 지식은 영적이고 정신적이고 보이지 않는 신령한 지식이라고 하여 성서의 문자적 해석과 의미를 무시하고, 문자 배후에 숨어있는 의미를 찾아낸 것이 구원을 주는 신령한 지식이라고 하였다. 그 숨은 의미를 찾아내기 위하여 성서 말씀이나 사건을 신비적으로 또 우의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그러나 그것은 주관적인 해석이 되기 쉬웠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로는 영지주의 철학의 대가인데 구약을 우의적으로 해석하여 에덴동산에 흐르던 강의 네 지류를 희랍철학이 가르친 네 가지 덕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약성서를 희랍인들의 사상에 맞게 해석하기 위하여 우의적 해석을 즐겨 시도하였다. 이 해석법으로 성경을 해석한 신학자들이 없지 않았다.

그리스도교 영지주의를 대변하는 책으로 사도들의 행전(The Acts of the Apostles)이라는 것이 있고, 그리스도인 영지주의자로는 마르키온 외에 알렉산드리아의 바실리데스(Basilides)와 발렌티누스(Valentinus)가 알려져 있다.

에비온주의

예수의 부모와 형제를 잘 알고 있는 유대인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그가 유대교 지도자들로부터 미움을 받은 큰 이유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유대인 중에는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거나 하나님이 사람이 된 사람이라는 것은 믿지 않으면서도 그의 가르침을 듣고 또 행적을 보고 따른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에비온주의(Ebion)자라고 불렀다.

그들은 히브리인들이 많이 흩어져 살던 시리아 지바에서 그리스도교를 마치 유대교의 한 지파처럼 생각하고 공동체를 형성했다. 그들 중 더러는 예수가 동정녀로부터 났으며 그가 세례를 받을 때 비둘기의 형상으로 그리스도가 그의 머리 위에 내려와서 알 수 없는 아버지를 선포하였다고 믿었다. 이들의 신앙은 금욕적이었고 가난하게 살기를 택하였다. 그리하여 가난하다는 뜻의 말로 에비온주의자들이라고 불렸다. 에비온주의자들은 유대교와 모세의 율법을 비판한 사도 바울을 미워하였다.

몬타누스 운동

예수의 조속한 재림에 대한 기대가 빗나간 것으로 생각한 신도들의 신앙이 해이해져 갔을 때 소아시아지역의 프리지아(Phrygia)의 몬타누스(Montanus)라는 사람이 예수의 조속한 재림의 때와 장소까지 예언하여 많은 신도들을 미혹한 일이 있었다.

그는 요한복음서에서 약속한 성령이 오순절이 아니고 이제 자기를 통하여 오셔서 자기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역사하신다고 설교하였고, 곧 있으면 요한의 묵시록에서 예언된 신천신지가 하나님께로부터 땅 위에 내려온다고 예언하였다. 그는 방언으로 성령의 말을 직접 받아 옮기는 형식으로 예언을 일삼으면서 자기가 성령의 화신이라고 자부하였다.

몬타누스와 비슷하게 예언을 하는 프리스킬라와 막시밀라라는 두 여인이 그의 동역자가 되어서 신도들을 유혹하였다. 그들은 하늘에서 새 예루살렘이 이제 급하게 내려와서 유대나라의 예루살렘이 아니라 프리지아에 내릴 것이라고 말하고 페푸자라는 한적한 촌락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예수의 재림을 기다렸다. 이 마을에 들어간 사람들이 세상의 구속을 받지 못하게끔 친척과 가족과의 관계도 끊게 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엄격한 금욕생활을 하면서 신비경험을 체험하게 하여 신천신지의 새 시대를 준비한다고 말했다.

이 종말론적인 새 촌락의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이 몰려와서 서로 다투어 입주하여 바깥 여러 마을의 인구가 격감할 정도였다. 박해 아래 고난 받던 그리스도인이 먼 나라에서부터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몬타누스는 신약성서를 수정하거나 새 신약성서를 만들어가는 듯하였다. 성령도 자기를 통해 비로소 왔다고 주장하고 신약에 없는 신도들의 생활과 행위를 만들어 결혼은 인정하되 재혼은 허락지 않았고 교역자들에게 정기적으로 봉급을 지불하였으며 여자는 교회의 어떠한 직분도 가질 수 없게 하였다.

몬타누스가 예언한 재림의 때는 빗나가버렸다. 그러나 그들의 새 공동체에 이주한 신도들은 옛날 살던 고장으로 돌아가기 어렵게 되었다. 옛 집과 재산을 버렸고 가족과 친척도 흩어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재림의 기대에 실망한 그 단체는 결국 해체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몬타누스 운동의 영향은 남았다. 소극적으로는 성령운동이 그 후로 교회에서 위험시되어 재림의 강조가 약해지고 그 대신 교회의 제도가 강화되어 교회가 흔들리지 않게 되어갔다. 적극적으로는 몬타누스 운동의 엄격한 금욕생활의 실천과 도덕적 기강을 교회에서 본 따게 되어 멀리 북아프리카의 칼타고 교회의 감독 터툴리안(Tertullian)에게도 영향을 끼쳐 그가 가톨릭 교회에서 떨어져 나가 한 독립적인 교단을 만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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