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성한]참 진리의 맛을 본 사람들!(1)

공동체를 위한 한국교회사 읽기(8-1)

복음과 사회 이야기

참 길을 찾는 사람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장 32절)

1945년 8월 15일은 한국근대사 속에서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지 통치로부터 해방 된 날입니다. 그러나 해방의 날은 곧 분단의 날이 되어 또 다른 올가미 속으로 우리 민족을 몰아넣었고, 그 비극과 모순의 쇠사슬에서 아직도 우리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때만 되면, 참된 자유가 무엇인지, 참된 해방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주제는 참된 해방과 자유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엮어 볼까 합니다.

1907년 신앙대부흥운동은, 마치 깊은 산속 이곳저곳 옹달샘에서 발원한 물줄기들이 하나로 합류해 거대한 폭포가 되어 떨어지듯, 한국교회 초기부터 이어 내려오던 두 흐름, 즉 성경공부운동과 회개기도 운동이 합류하여 이루어낸 위대한 ‘삶 신앙’ 운동입니다. 참된 ‘삶 신앙’은 거대한 진리의 폭포수를 마주 대면하지 않고는 살아낼 수 없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사가인 김인수 교수는 1907년의 신앙대부흥운동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운동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진정한 기독교의 진리를 터득하게 하였으며 기독교 진리가 한국 기독교인들 마음에 뿌리내리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인들이 기독교 신앙을 여러 가지 동기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나 참 기독교 진리를 터득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부흥운동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참된 회개와 성신의 감동, 그리고 새로운 피조물로 결단하는 삶, 즉 전형적인 그리스도인 됨의 과정을 통과하게 되었다.”

물론 한국인들이 ‘진정한 기독교의 진리’를 1907년의 사건을 통해 비로소 처음 터득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쪽복음서’ 하나에 의지해 신앙공동체를 일구고 교회를 세웠던 ‘자생적 신앙공동체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우리 민족이 나라 안팎으로 극심한 고난과 좌절을 겪게 되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민족의 새 길을 찾기 위해 신흥종교인 교회에 몰려 왔습니다. 이들 모두가 본래 자신들이 안고 있는 고민들을 ‘복음’ 안에서 해결해 보려 했던 사람들은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가 일본 제국주의보다 더 큰 서양 세력을 배후에 가지고 있다고 보았고, 그 배후의 든든한 ‘빽’에 기대고 싶어 했던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왕의 토착 지도자들이나 선교사들은 갑자기 수적 몸집이 부풀어진 한국 교회를 어찌하기 참 버거워 했다는 흔적들도 많이 보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1903년에서 1907년에 걸친 기간에 한국교회에 신앙대부흥운동이 일어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사실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하듯,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나라 가난한 백성들에게 진리 안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오랫동안 이 땅의 선비들이 그 어떤 어려움에도 자세를 흩뜨리지 않고 바른 삶을 살아낸 안빈낙도(安貧樂道, 가난한 생활 가운데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김)의 정신과 한가지로 통하는 것이 아닐까요? 분명 우리가 진리를 알면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우리는 이 불변의 진리를 한국교회의 역사 안에서 ‘사실’들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이런 거대한 진리의 폭포수를 만나 참 신앙의 삶을 살아낸 선배 신앙인들을 만나 봅시다.

“당신은 나의 형제요!” - 개화기 : 신분철폐 운동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오네시모)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빌레몬서 1장 16~18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들을 형제요 자매로 부릅니다. 이런 부름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우리는 모두 그분의 지체들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이 신앙고백은 진리인데, 이 진리를 깨달은 한국 교회 초기 성도들은 당시 사회의 신분질서를 타파하고, 가장 천한 계층이라고 일컬어졌던 백정들까지도 형제라 불렀습니다. 그래서 당시 수도 한양에 세워진 교회들 안에는 백정출신 교인들이 제법 있었고, 교회의 지도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사회적 인식은 교회를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회를 향해 그 참된 진리의 가치를 전하게 되는데, 여기에 백정출신 교인들이 앞장을 서게 됩니다. 1895년 당시 서울 공단골 교회(현재 승동교회)의 교인이었던 백정출신 백백정은 왕에게 상소를 올려 백정도 사람으로 대접받을 수 있게 해 달라는 청원을 하게 됩니다. 물론 그는 글을 배우지 못했기에 남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가 보낸 청원서의 내용을 오늘의 말체로 옮겨 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삽니다. 심지어는 관가에서 심부름 잘하는 하치들까지 우리를 업신여기고 가끔 우리의 재산을 노략질해 갑니다. 만약 우리가 그것을 거절하는 날이면 벼락이 떨어집니다. 그네들은 우리 뺨을 갈기고 옷을 찢고 온갖 악담과 욕설을 퍼붓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그 자들은 우리를 잡아다가 강제로 일을 부려먹으며 엽전 한 푼 안주면서 천대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제일 참기 어려운 것은 삼척동자 아이들이 우리에게 하대 말을 쓰는 일이옵니다. 이 세상에 어디서 이런 불쌍하고 가련한 인생들을 찾아볼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당하는 천대와 멸시란 이루 형언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백정보다 더 천한 광대들은 갓도 쓰고 망건도 쓰고 소매 옷도 입고 다니는데 당신의 비천한 충복 우리 백정들만이 그렇게 할 수가 없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며 뼈에 사무치도록 아프지 아니하겠습니까?”

당시의 백정들은 자기 이름에 성을 붙일 수 없었고, 제대로 뜻이 담긴 이름 짓는 것도 허용이 안 된 사회였습니다. 그러므로 ‘백백정’이란 이름은, 성은 ‘백정’에서 따왔고, 이름은 그냥 자신의 신분을 그대로 사용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결국 그 이름은, ‘나는 조상대대로 백정이었던 사람이요’라는 ‘자기됨 선언’(소위 ‘커밍 아웃’)입니다. 진리 안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라면 결코 지을 수 없는 그런 이름입니다. 시대의 가장 낮은 자리에 있던 그는, 자기 속에 있는 진리의 힘으로 감히 왕에게 ‘옳은 삶’의 구체적인 내용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한국인의 것이외다!” - 일제하 : 자치교회 운동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부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사도행전 15장 8~9절)

한국의 기독교는 주체적인 복음 수용의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직 ‘쪽 복음서’에 의지해 형성된 ‘자생적 신앙공동체’의 전통이 그것입니다. 초기의 아직은 ‘어린’ 자생적 신앙공동체는 선교사들을 만나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며 조직을 갖추어 가게 됩니다. 그 체계적인 교육의 틀 가운데 하나가 이미 1890년부터 한국교회에 도입되어 적용되기 시작하는 ‘네비우스 선교방법’인데, 우리에게는 ‘자립, 자치, 자전’의 3자 정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교사들은 각기 다양한 교파적 전통을 배경으로 파송 받아 한국에 온 까닭에, 그들에 의해 성장해 가는 한국교회 역시 당연히 서구식 교파형 교회로 정착되어 갑니다. 그리고 이 정착의 과정에서 한국 교인들과 선교사들 사이에 많은 갈등을 겪게 됩니다. 그 원인은 경제적인 것, 정치적인 것, 신앙 혹은 신학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기에다가 동양의 작은 나라가 갖고 있는 문화에 대한 서양 선교사들의 몰이해까지 겹쳐 의식 있는 한국인과 선교사들 사이에 자연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었지요. 언제나 ‘선생 노릇’을 하려 했던 선교사들과, 그들로부터 독립해 주체적인 한국교회를 수립하려 했던 한국교회 지도자들 사이에는 많은 거리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한국교회에 토착 지도자들이 배출되기 시작하는 1900년대 들어서면서 서서히 그 갈등은 표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뜻있는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이 문제를 회피하려 하지 않고 당당하게 풀어가려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지도자가 한국 장로교 첫 목사들 가운데 한 분인 한석진 목사였습니다. 한석진 목사는, ‘자생적 신앙공동체’ 출신의 토착 기독교인으로서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선교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누구보다 가장 헌신적으로 도왔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지만, 그는 결코 한국교회가 서양교회의 축소판이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한석진 목사는 선교사들에 맞서서 시비와 오해를 들어가면서까지 믿음의 자주성과 기독교의 토착화를 날카롭게 내세우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한국인으로서 자주성 없는 신앙은 외국 사람인 선교사에게 노예노릇을 자청하는 것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던 토착 지도자였습니다. 한석진 목사가 생각하는 민족교회는 처음부터 자주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처음부터 외국 선교사들을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와왔지만, 그들의 의견을 무조건 따르려하지는 않았던 것이지요. 그렇게 한 까닭은 그가 선교사들이나 그들의 선교 사업들을 반대해서가 아니라, 한국 선교의 방침과 방향을 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한국교회가 자주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성년의 시기를 이미 지난 1910년대에 선교사와 한국교회와의 갈등은 보다 복잡한 양태로 발전합니다. 처음에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선교사 사이의 단순한 갈등이, 교회 안의 지역적 배경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 교회 정치를 둘러 싼 교권적 갈등 등 여러 가지 형태의 갈등들과 복잡하게 얽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갈등은 1920년대에 들어 반 선교사 운동으로 발전하면서 한국교회의 자유운동, 더 나아가 ‘조선적 교회’ 수립운동으로까지 표출됩니다. 이런 운동을 이끌던 분들 가운데 이만집 목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대구지방에서 3·1운동을 주도하고 옥고를 치르기까지 한 민족운동가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1920년대 초에 대구지방의 모교회인 남성정 교회(현 대구제일교회)를 시무하면서 한국교회 자치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자기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1923년 3월 18일 ‘자치선언’을 했습니다. 그 간략한 내용을 오늘의 말체로 바꾸어 옮깁니다.

“30 성상에 비롯 각오하였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려면 진리에 속하자. 교회는 신성한 것인데 불의의 구속을 어찌 당하리요. 이제 대구교회는 저 권리를 주장하는 선교사의 정신지배를 받는 경북노회를 탈퇴하고 자치를 선언함”

이런 자치 운동이 한국교회를 다양한 종파 분열로 연결시키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한국교회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자생적 신앙공동체’의 주체적 복음 수용전통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으로 평가하면 더 좋을 듯합니다. 특히 이만집 목사의 경우 그의 민족운동이 자치 교회운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다음편(8-2). "어이할꼬!" - 해방과 분단 상황 : 다시 잃어버린 자유...

*정성한 교수의 '공동체를 위한 한국교회사 읽기'는 분량이 길어 앞으로 한 회 분의 원고를 2회로 나누어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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