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성한]참 진리의 맛을 본 사람들!(2)

공동체를 위한 한국교회사 읽기(8-2)

"어이할고!"-해방과 분단 상황 : 다시 잃어버린 자유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누가복음 15장 18~20절)

20세기의 거의 전반부를 우리 민족은 외세 일본의 식민지 침략으로 자유를 억압당하였습니다. 그러다 되찾은 자유였으니 그 해방의 날(1945.8.15)이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웠겠습니까. 그러나 해방의 날은 또 다른 외세에 의해 곧 분단의 날이 되었고, 여기에 덩달아 이제는 같은 민족끼리 형제와 자매의 자유를 억압하는 더 비극적인 역사가 전개되었습니다. 당연히 한국교회는 민족의 이 역사적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분단 상황에서 현실의 정치투쟁에 적극 개입하기도 하고, 철저한 정치와 종교의 분리원칙에 입각하여 교회의 일에만 전념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이리저리 이념에 따라 갈리었어도 한국교회는 잃어버린 자유를 찾아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소리들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먼저 잡지 <새나라> 1946년 4월호에 실린 전영택의 기도문이 있습니다.

"오! 주여, 아직도 아직도 저희에게는 자유가 없으니 한 사슬이 풀리매 또 어떤 새 사슬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오니, 오 주여, 눈물이 나와 말을 못하겠습니다. 밖으로 오는 사슬도 있는데 저희끼리 갈리고 합하지 못하는 것도 건국을 방해하는 큰 사슬이 아니오리까. 주여, 이미 큰 은혜를 내리시어 놀라운 섭리로 원수의 칼에서 저희들을 구해주신 이는 아버지시오매, 부디 이 백성을 버리지 마옵소서. 저희는 하나님밖에 믿을 데가 없고 호소할 곳이 없습니다. 부디 이 백성을 버리지 마시고 내내 돌아보시옵소서."

이런 하늘을 향한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이 민족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말았습니다. 이 전쟁에서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들은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한 끼 양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전쟁 상황이 악화될수록 신앙인들은 과거에 의지했던 그 믿음을 끝까지 지켜내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이 모습을 못내 지켜보며 안타까워하던 석진영 여사는 절망가운데 동요하는 한국교회에 대하여 1952년에 "어이할고"라는 찬송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1.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곳곳마다 상항 영의 탄식소리 들려온다
   빛을 잃은 많은 사람 길을 잃고 헤매이며
   탕자처럼 기진하니 믿는 자여 어이할고

2.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두워진 세상 중에
   외치는 자 많건마는 생명수는 말랐어라
   죄를 대속하신 주님 선한 일꾼 찾으시나
   대답할 이 어디있나 믿는 자여 어이할고

3.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살아계신 주 하나님
   약한 자를 부르시어 하늘 뜻을 전하셨다
   생명수는 홀로 예수 처음이요 나중이라
   주님 너를 부르신다 믿는 자여 어이할고

4. 눈을 들어 하늘 보라 다시 사신 그리스도
   만백성을 사랑하사 오래 참고 기다리셔
   인애하신 우리 구주 의의심판 하시는 날
   곧 가까이 임하는데 믿는 자여 어이할고

그 역시 당시 부산으로 피난 가 힘든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 절망을 '어이해야' 할지, '어이해야' 자신을 비롯한 한국교회 온 교인들이 다시 믿음을 회복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얻을 수 있을지 마음의 탄식이 아려있는 가사입니다.

"우리도 사람입니다!"-독재 시기 : 정의를 향한 외침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아모스 5장 24절)

한국전쟁을 거치며 우리민족은 남과 북으로 허리가 갈린 분단의 상황이 완전히 고착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의 한국 현대사는 남과 북 똑같이 독재철권 통치의 그늘 아래서 민중들의 삶이 철저히 짓밟히고 소외되고 왜곡되는 과정을 밟아 왔습니다. 특히 1960년에서 1980년대로 이어지는 30여년의 소위 한국의 '근현대화 과정'은 노동자 농민들의 삶을 죽음으로 내모는 상황과도 같았습니다. 그 역사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인 1970년 11월 13일, 22살의 서울 청계천 노동자 전태일의 죽음은 그런 노동자 농민들의 집단적 죽음현상을 미리 막아내기 위한 '자기몸 저항'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지켜보는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할려던 일, 내가 죽고 나서라도 꼭 이루어 주게. 아무리 어렵더라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네. 쉽다면 누군들 안 하겠나? 어려울 때 어려운 일 하는 것이 진짜 사람일세. 내 말 분명히 듣고 잊지 말게.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창현교회 주일학교 교사이기도 했던 청년 전태일의 이 '자기몸 저항'을 통해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의 비극적인 모순을 뚜렷이 인식하고, 노동자 농민들의 삶을 한국교회의 삶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1974년 10월 11일 한국기독교학생총연맹(KSCF)은 정의를 부르짖다 구속된 사람들의 석방을 위해 기도하면서, 독재 정치에 대한 투쟁을 계속할 것을 다짐하는 '십자가 선언'을 채택합니다. 그 선언문의 앞 내용은 이렇습니다.

"청년들이여! 항상 우리를 압도하시는 주님은 우리들이 그의 역사에 동참하시기를 원하신다. 인간을 그의 형상대로 지으신 하나님은 인간을 모든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시어 인간다운 생활을 하도록 힘쓰셨다. 허나 지금의 상황은 그의 뜻에 너무나도 어긋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절감한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더 이상 좌절하거나 방황할 수 없어 고난을 죽음으로 극복하여 부활로서 승리한 주님의 생활을 근본으로 삼는 우리 기독학생들은 억압에서 자유로, 절망에서 희망에로의 엄숙한 선언을 한다."

또한 1978년 영등포 산업선교회관 준공예배시에 노동자 성가대가 부르기 위해 지어진 조지송 작사 작곡의 노래, '자유 찾아 가는 길'이 있습니다. 이 노래말에는 당시 노동자들의 삶과 절규가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1. 자유 찾아 가는 길이 멀고 험해도
   우리 모두 손을 잡고 그 길로 나가자
   정의 없이 평화 없다 큰 소리 외치며
   평화 위한 우리 주장 만방에 전하자

2. 자유 찾아 가는 길이 멀고 험해도
   우리 모두 주님 따라 그 길로 나가자
   사회정의 이룩하자 큰 소리 외치며
   정의 위한 우리 주장 만방에 전하자

3. 자유 찾아 가는 길이 멀고 험해도
   우리 모두 단결하여 그 길로 나가자
   노동인권 보장하라 큰 소리 외치며
   인권 위한 우리 주장 만방에 전하자

그러나 이런 절규와 자유를 향한 발걸음도 더 큰 폭력 앞에서는 늘 무참히 꺾이고 무기력할 뿐이었습니다. 1980년 5월에 한반도 남단 광주에서는 박정희 정권의 붕괴 이후 새로 등장한 전두환 군부 정권에 의해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동족상잔의 비극이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남과 북 사이의 이념에 따른 폭력이라면, '광주 민주화운동'은 권력을 거머쥔 자들이 힘없고 소외된 백성들을 향해 휘두른 일방적 폭력이었습니다. 그 폭력의 현장 한 가운데에서 구두닦이 청년 박용준은 이렇게 하나님께 절규했습니다.

"우리의 피를 원한다면 하나님, 이 조그만 한 몸의 희생으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희생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는 무엇입니까. 너무 갸날픈 존재올시다. 너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자올시다. 주님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위해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더 큰 고통과 번뇌와 시련을 듬뿍 주셔서 세상을 이겨 나갈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십시오... 하나님, 어찌해야 좋겠습니까. 양심이 그 무엇입니까. 왜 이토록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십니까. 이렇게 주께 갈급하게 구해야만 세상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하렵니다. 하나님, 도와주소서... 모든 것 용서하시고 세상에는 관용과 사랑을."

이 '광주 민주화운동'을 거쳐 간 어느 이름 없는 노동자는 후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절름발이 친구 앞에서는 뛰어 다니지 않게 하소서.
 허약한 동료에게는 함부로 힘자랑 하지 말게 하소서.
 찬밥을 꾸역꾸역 멀을 때에도 굶주리는 이웃을 생각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는 자와 함께 울고, 고통당하는 자와 함께 고통 받아
 서로를 부둥켜안고 함께 웃는 그날까지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여기에서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에게로 더욱 가까워지고 삶의 내용이 더욱 깊어진 참 자유로운 자의 영성을 맛보게 됩니다.

하나를 향하여(통일의 시대)

"주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원근 각처에 있는 열강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사람마다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 살 것이다. 이것은 만군의 주께서 약속하신 것이다."(미가 4장 3~4절, 표준새번역)

아무리 큰 폭력이 이 민족을 짓밟아도 참된 자유와 해방을 향한 길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요, 그 분이 그 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한국교회는 이 민족이 누려야할 참된 해방과 자유의 길을 평화통일운동에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남쪽의 그리스도인은 북을 향해 북쪽의 그리스도인은 남을 향해 힘들지만 의미 있는 걸음들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 걸음은 1981년 11월 3일에서 6일까지 스위스 빈에서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다른 나라 시민권을 가진 남한출신 그리스도인들과 북한의 그리스도인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아직은 시대적 한계가 그대로 드러나긴 했지만 중요한 한 걸음이었습니다. 그리고 1988년 2월 29일 한국교회협의회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 기독교회 선언"을 통해 이 길이 권력자들의 온갖 훼방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걸어가야 할 이 길이며, 이 시대에 주님께서 한국교회에게 주신 선교과제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백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아내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그렇게 살아버리는 선구자 아닌 희생자가 필요했습니다. 이 일에 선뜻 나선 이가 바로 문익환 목사였습니다. 그는 1989년 3월 25일 오후 평양을 방문하여 남한 사람들에 의해 '괴수'(魁首)로 불리던 김일성과 서로 품어 안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평양도착 성명을 남겼습니다.

"평양 땅을 밟으면서 민족의 분단을 막고 남북의 동족의 피로써 피를 씻는 참단한 비극을 방지해 보고자 모든 방해와 곤란을 무릅쓰고 김구 선생이 38선을 넘은 것은 1948년 4월의 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41년간 세월이 덧없이 흘러갔습니다. 저는 오늘 김구 선생이 걸으셨던 같은 길을 걸어 비록 판문점을 통과하지 못하고 북경을 거쳐서 오기는 했지만, 오늘 제가 평양 땅을 밟게 된 이 벅찬 감회를 무슨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김구 선생은 그 때 서울을 떠나 평양을 향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시 한 구절을 우리들에게 남겨 주셨습니다. '내가 밟고 가는 눈 덮인 들판길 조심하여 헛밟지 말지어다. 오늘 걷는 나의 발자취가 뒤에 오는 이의 표식이 될 것임에."

문익환 목사의 평양방문은, 우리가 그 동안 이 민족의 역사가 발전해 왔다고 믿었던 것이 얼마나 허상에 불과했던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는 41년 전 그 혼돈의 상황 속에 여전히 머물러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다시 1907년 신앙대부흥운동을 이야기하는 것은 애써 지금 우리 한국교회의 자리를 그 때 그 자리로 되돌리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리 안에서 참된 자유와 해방을 맛보았던 1907년의 신앙대부흥운동은 여전히 한국교회가 큰 의미를 부여할만한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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