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정상회담과 대북인도적지원을 촉구하는 5대 종단 종교인들. 17일 기자회견을 주최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은 개신교 122명, 불교 108명, 원불교 81명, 천도교 150명, 천주교 67명의 종교인들이 서명했다고 밝혔다 ⓒ 김태양 기자 |
국제사회로 “집안싸움” 갖고 가지 말아야...남북 정상이 직접 만나 대화할 필요도
개신교 복음주의권 종교인들 미묘한 입장차 드러내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 천주교 5대 종단의 종교인들이 17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남북 정상회담과 대북 인도적 지원 허가를 정부에 촉구했다.
5개 종단 종교인들의 모임인 “민족의화해와평화를위한종교인모임”을 대표해 박경조 대주교(대한성공회 전 의장주교)는 "그 동안 종교인들이 대결국면으로 치달아가는 남북의 현실 와중에서 증오와 분노를 확대·재생산하는 일에 앞장서 왔다"고 회고하며 앞으로는 모든 종교인들이 "집안싸움"을 말리고 자비와 사랑, 평화가 구현되는 사회를 열어가는 일에 헌신해야 할 것이라는 권고로 인사말을 대신했다. 박 대주교는 향후 대통령 등 정부가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화해와 대북 식량지원을 촉구하는 순서에서 각 종단 대표들은 북한이 겪게 되리라 예상하는 대량 아사 사태에 대해 깊은 우려를 전달하며 무조건적인 대북 지원을 강조했다.
평양에 국수 공장을 세웠던 법타 스님(동국대 정각원장,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회장)은 "통일은 밥"이라고 요약했고, 세계복음주의협의회 의장 김상복 목사(할렐루야 담임)는 대북 식량지원은 정치나 군사, 외교를 초월하는 인류애이며 더 높은 차원의 "사랑의 복수"를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훈일 신부(천주교 민족화해위원회 대북담당)는 정부가 북한의 취약계층을 지원하고 있다고 해명하리라 예상되며 진보적 기독교인들이 엉뚱한 소리를 한다고 여길 것으로 보인다며 비관적 견해를 드러냈다. 그는 정부의 대북 강경 자세 뿐 아니라 북한의 호전적인 태도에도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면 북한의 경제문제와 식량문제가 해결되나? 북한 주민의 생명을 담보로 남북문제를 풀어가서는 안 된다. 이는 죽음의 문화를 한반도에 고착화시키는 것이고, 남북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김 신부는 인도적 지원에 정부가 관여해서는 안 되며, 인도적 지원 없이 북한과의 평화는 어려울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 국제사회에까지 민족 문제를 가져가서 싸우지 말고 남북의 정상이 직접 만나 대화하며 평화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불교를 제외한 4대 종단의 성명에서도 해당 종단의 대표들은 자비와 사랑을 더 나누지 못했던 스스로의 모습을 참회하며 남북 대립의 종결과 대북 인도적 지원 중단의 즉각 철회를 촉구했다.
성명 발표에 이어 진행된 퍼포먼스는 한반도 모양이 새겨진 대형 아크릴 통에 각 종단 대표들이 쌀을 채워 넣는 참여형 행사였다. 남한 부근까지 쌀이 채워져 있는 아크릴 통에 참석한 대표들이 주어진 분량을 모두 부어넣었으나 끝까지 채워지지 않아 일반 참석자들도 퍼포먼스에 참여했다.
이에 대해 사회를 맡은 법륜 스님(정토회 지도법사, 평화재단 이사장)은 "종교인들로만은 부족하다. 모든 국민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뜻 아니겠는가"라고 권유해 이목을 끌었다.
그런데 법륜 스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크릴 통이 터졌고, 그는 다시 "이렇게 넘칠 만큼 북한을 지원해야 할 텐데..."라고 말해 참석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기자회견에서 "정부 방침은 변화가 없을 듯 한데 이에 대한 추가 대응도 논의 되었나"는 질문이 제기되자 갈릴리 교회 인명진 목사는 민간 차원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촉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며 그동안 큰 틀에서 정부의 대북정책에 협력해 왔지만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정부 방침을 따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한국복음주의협의회 김명혁 목사는 상이한 답변을 내놓았다. 김 목사는 인 목사의 답변에 공감을 표현하면서도 오늘의 모임은 친북도 강경도 아닌 중도적인 입장이고 정부를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며 다소 완화된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인도적 지원 등에 대해 호소할 것을 약속하며 종교인들의 사명은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신명을 바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발표한 성명에서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 담임)도 남북 대결구도가 낳을 결과에 대한 우려와 지방선거 결과로 나타난 정부의 대북 강경책에 대한 국민의 거부를 언급하면서,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와 국군포로 송환을 덧붙여 무조건적 대북지원을 호소하는 여타 종교인들과 달리 일부 입장 차를 드러냈다.
세계복음주의협의회 의장 김상복 목사는 남북화해와 대북식량지원 촉구 발언에서 형제·자매인 북한 동포들에 대한 시급한 식량 지원과 아울러 "마음의 통일"을 강조했지만, 개신교 복음주의권 종교인들이 타 종단 뿐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미묘한 입장 차를 보이며 뿌리 깊은 보수적 대북관을 노출시킨 게 아니냐는 지적이 새어나오고 있다.
반면, 정치와 무관할 수는 없으나 기본적으로 접근 방향이 다른 부문인 인도적 지원 분야에서 진보와 보수의 구체적 협력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란 평가도 나오며, 대북 인도적 지원이라는 공통의 경험이 낳을 결과에 기대를 걸어보리라는 결과론적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평화재단은 전날인 16일 평화연구원(원장 윤여준) 주최로 <북한의 식량난과 대중국 의존>에 관한 41차 전문가포럼을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