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2010 감리교 에큐메니컬 정책협의회 개최
예장통합에 상대적 위기감 표출...새 연회감독 선출과 2013년 WCC 총회에 대한 기대
역시 감리교는 에큐메니컬 정신의 본산(本山)이었다.
2008년의 이른바 '감리교 사태' 이후 현재까지 힘겨운 상황에 내몰리고 있지만 24일 일영연수원에서 개최된 '2010 감리교 에큐메니컬 정책협의회'는 감리교가 얼마나 풍부한 에큐메니컬 인적 자원과 제도, 영적·물질적 자산, 전문적 이해와 견해를 갖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드러난 자리였다.
영국에서 존 웨슬리 등에 의해 시작된 감리교는 강력한 중앙기관과 그것을 정점으로 하는 계급조직의 유기적 결합으로 인해 영국과 특히 미국에서 비약적 성장을 이뤄냈고 열정적 선교활동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19세기에 영국과 미국 감리교가 모두 수차례의 분열을 겪지만, 20세기에 들어서 다시 재연합이 추진되었고 그러한 이유로 감리교는 범세계적인 에큐메니컬 운동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어왔다.
이러한 연합적 성격은 한국 감리교의 특징으로도 자리 잡았다. 한국 감리교는 출발부터 미국 남감리회와 북감리회의 통합으로 형성되었고, 통합의 정신은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데로 이어졌다.
해방 이후 몇 차례의 교회분열 위기가 있었지만 한국 감리교는 특유의 연합정신으로 이를 극복해왔고 이것이 유례없는 분열을 거듭해온 한국의 다른 개신교와 뚜렷이 구별되는 점으로 주목받아왔다. 한국 감리교의 이러한 연합 정신은 교회 외적으로도 대화와 포용적 태도로 나타나고 있고, 실제로도 국내외 에큐메니컬 운동의 선구적·실질적 구심점이 되어왔다.
감리교의 풍부한 에큐메니컬 인적 자원은 이번 정책세미나의 면면에 여실히 나타났다. 주제강연을 담당한 감신대 심광섭 박사는 NCCK 신앙과직제위원회 위원으로 2013년 부산에서 10차 총회를 갖는 WCC에 한국측 주제 제안을 위한 초안 작성을 담당하고 있고, 진행보고를 담당한 정해선 국장은 WCC 중앙위원이자 제10차 총회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감리교의 탄탄한 에큐메니컬 기반은 일선 목회자를 통해서도 손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심광섭 박사에 이어 주제강연을 맡은 아현교회 조경열 목사는 '제10차 WCC 총회 준비를 통한 감리교회 에큐메니컬 운동의 활성화 방안'에 대해 대단히 구체적인 제안을 해 WCC 총회준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실무진인 정해선 국장을 비롯해 참석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또 에큐메니컬 운동에 헌신해오고 있는 여성 목사(한국교회여성연합회 총무 최소영 목사)와 청년(감리교청년전국연합회 총무 이은영 청년)도 패널토의에 참석해 한국의 여타 개신교와 토양이 다름을 과시했다.
▲ 주제강연을 맡은 심광섭 교수(감신대)와 조경열 목사(아현교회)가 참석자들의 질의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김태양 기자 |
첫 주제강연에서 심광섭 교수는 올해 1월부터 한국측 주제 제안을 위해 NCCK 신앙과직제위원회에서 15명의 위원들과 에큐메니컬 원로들을 비롯해 비에큐메니컬 신학자들까지 다양한 인사들과 토론과 검토를 거듭하며 초안을 작성해 온 내역을 전했다. 그는 초안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평화·치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이는 본지가 국내외 언론 중 최초로 보도하는 내용으로, NCCK가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엠바고를 요청해 추가적 언급은 생략한다).
조경열 목사는 한국교회와 감리교회의 상황을 진단하고 감리교회의 에큐메니컬 선교 활성화 방안을 모색했다. 조 목사는 감리교회가 웨슬리 전통에 입각한 에큐메니컬 신학과 역사적 유산을 갖고 있음을 강점으로 내세우면서 교단 분열로 인한 사회적 신뢰 상실과 예언자적 역할의 약화, 에큐메니컬 선교에 대한 개체교회와 지역교회의 참여가 부족함을 약점으로 지적했다. 그러나 새 연회 감독이 2010년과 2012년에 선출되어 분위기가 일신될 것으로 예상하며 2013년에 부산에서 열릴 WCC 총회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또 핵심사업으로 '2020 KMC 프로젝트'(가칭)라는 감리교 브랜드 개선 사업계획과 연회별 에큐메니컬 선교위원회 조직, NCCK 부문별 전문위원회 조직 및 NGO 참여 연대를 밝히며 TF팀 가동과 WCC 지원 예산 수립, 교회학교에 WCC 주제를 다룬 교재 보급, 예배연구 등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했다.
▲ 주제강연 후 이어진 패널토의에 참석한 패널들 ⓒ김태양 기자 |
패널토론에서는 WCC에 대한 목회현장의 고심도 제기되었다. 창천교회 서호석 목사는 WCC가 신학적인 다름이 부각되어 있는 한국교회에 교회 일치의 정신을 일깨워주고 민주화가 진척되는 동안 영적·재정적으로도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었으나 다른 한편으로 한국교회에 분열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고 분석했다. 서 목사는 무엇보다도 WCC가 월드비전과 같은 NGO보다도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국제기구이며, WCC로부터 무언가를 배워보려고 해도 사실상 교회 현장과의 연대감을 느끼기가 힘들다는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협성대 이세형 박사는 감리교의 에큐메니컬 유산을 재확인하면서도 최근 예장 통합이 2013년 WCC 10차 총회에 대한 준비를 착실히 준비해나가고 있는 상황을 언급하며 감리교가 뒤지고 있다는 위기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평신도 전문가의 역할이 필요함을 역설하며 신학교육에도 에큐메닉스와 WCC 준비과정 등을 포함시키겠다고 다짐했다.
패널로 참석한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총무 김오성 목사는 에큐메니컬 선교를 하는 사람을 키워내는 일이 중요하며 현장 감각을 익히고 국제적인 연결망을 갖게 하기 위해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총무 최소영 목사는 여성의 지도력을 단지 '사용하거나' '끼워주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그 에너지가 건강하게 표출될 수 있도록 여성 지도력을 교회 안에만 가둬두지 말고 '밖으로 내돌려 주고 키워줄 것'을 주문했다. 특별히 최 목사는 최근의 출산 장려운동에 대한 여성들의 비관적 시선을 전하며 한국교회가 출산을 통한 경력 단절을 과연 용납할 수 있겠으며, 여성들이 갖고 있는 살림이나 돌봄의 가치를 평가절하하지 않을 수 있겠냐는 반문을 제기했다.
최 목사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특수선교'로 여기는 감리교 내외의 인식을 꼬집으며 사회선교를 주로 표방하는 에큐메니컬 현장과 교회 현장의 조화를 강조했다.
감리교청년전국연합회 총무 이은영 청년은 정책 결정과정에 청년을 '끼워넣기'가 아니라 처음부터 본격적으로 참여시켜줄 것을 주문하며, 교회교육이 천편일률적인 청년상을 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청년들을 국제적 감각이 있는 에큐메니컬 운동가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교회의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며, 현실적인 재정 지원을 당부했다.
역사적인 분열 위기 앞에서도 특유의 연합정신을 발휘해 통합을 지켜 온 감리교가 최근 감독 선출을 둘러싸고 심각한 분열 위기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에큐메니컬 정책세미나가 역사적 ‘유산’에 대한 회상에 머물거나 정치적 ‘중립’을 지켜낼 수 있겠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지만 이번 에큐메니컬 정책세미나는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그러한 ‘과거’나 ‘현실’보다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특별히 예장 통합 등의 발 빠른 행보에 대한 상대적 위기감은 에큐메니컬 장자(長子) 의식이 드러난 것으로 평가된다. 또 새 연회 감독 선출을 계기로 전열을 가다듬어 2013년 WCC 총회의 주역으로 다시 복귀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