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이케나가 준 대주교(오사카 대교구장)가 ‘한일합병’ 조약 체결 100주년과 관련해 자국의 책임을 묻는 입장을 발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케나가 준 대주교는 "올해 8월 22일은 일본이 한국을 병합해 조선반도를 식민지로 삼았던 ‘한일합병’ 조약체결 100주년이 되는 날"이라며 "이처럼 역사적으로 중대한 시기에 우리 가톨릭교회의 책임을 포함해 일본의 식민지 정책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는지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2010년 평화 주간 담화문에서 밝혔다.
이케나가 준 대주교는 한일합병과 관련한 일본 주교단의 입장도 전달했다. 일본 주교단은 ‘전후 60년 평화 메시지’에서 "우리들은 과거의 식민지 지배와 무력침략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반성하며, 그에 대한 역사인식의 공유를 요청받고 있다. 그것은 두 번 다시 동일한 비극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하는 맹세인 동시에, 미래에 대해서도 책임지는 일임을 확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케나가 준 대주교는 이어 한일합병과 관련해 일본 가톨릭 신자들에게 진심을 담아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청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는 "하느님 앞에서 용기를 갖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청하는 일은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참된 인간의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라고 했다.
한편, 이 담화문에는 미국의 원폭에 있어서는 피해국인 일본 가톨릭교회의 입장도 담았다. 이케나가 준 대주교는 "지난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프라하 선언을 통해 핵무기가 없는 세계를 실현하고자 주장했다"며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사죄는 없었지만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원자폭탄을 투하시킨 미국의 '도의적 책임'이 언급되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는 단순히 핵 폐기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이상만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말처럼 과거의 잘못에 눈을 돌림으로써 얻어진 결의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원폭으로 폐허가 된 우리카미에서 발견된 ‘피폭 성모상’에 관한 언급도 있었다. 이케나가 준 대주교는 "두려워해야 할 원폭의 증언자로서 ‘피폭 성모상’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원폭 피해자와 모든 전쟁 피해자의 절규를 불타 녹아내린 형상 안에 고스란히 담아 드러내고 있으며,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의 소중함을 지속적으로 호소하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들은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먼저 이러한 피해자들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일본 가톨릭교회는 매년 8월 6일부터 15일까지를 평화 주간으로 삼고 있으며 이 10일간 일본 가톨릭 신자들은 특별히 평화에 대해 배우고, 평화를 위해 기도하며 행동하는 시간을 갖는다.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 전 교황이 일본을 방문, 원폭 피해 지역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평화를 위한 의지를 표명한 것을 계기로 이 평화 주간이 시작됐다.
극우 성향의 일본인들이 ‘식민지 근대화론’ 등을 근거로 계속해서 식민지 정책이 타당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때에 이번 평화주간 담화문이 일본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인들 나아가 일본인들로 하여금 ‘식민지 정책’의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