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끄 엘륄(1912~1994) ⓒ대장간출판사 |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하나님이냐 돈이냐」와 같은 저작들로 국내에 잘 알려진 프랑스의 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고 자끄 엘륄(Ellul, 1912~1994)의 저서 「하나님은 불의한가?」(원제 Ce Dieu injuste?)가 번역 출간됐다. 기독교인과 유대인간의 올바른 관계를 모색했는데, 대체로 유대인을 옹호하는 데 초점이 맞춰있다.
엘륄의 '유대인 옹호론'은 이스라엘이 미국을 등에 업고 아랍권 국가들에 자행한 침략 전쟁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탄압을 생각할 때 그다지 힘을 얻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기독교인과 유대인의 앙숙관계를 풀어내는 것이야 말로 기독교인들의 사명이라고 엘륄은 목소리를 높인다.
엘륄에 의하면 유대인이 예수를 거부하는 데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기독교인에 있다. 만일 기독교인이 율법 준수에서 나오는 미덕보다 더 뛰어난 미덕을 유대인 앞에 나타냈다면 그런 삶을 보고 설득된 유대인이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 대신 기독교인은 경멸스러운 품성, 힘과 탐욕의 가치 추구, 그리스도인 사이의 증오를 드러냈으며 특히 유대인을 박해했다.
그가 기독교를 비판하면서까지 유대교를 옹호하는 까닭은 유대교가 궁극적으로는 기독교와 '하나의 종교'를 이뤄야 한다는 신념에 있다. "선민은 (영원히) 선민으로 남는다"는 그는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택함이 폐기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예수 안에 이루어진 은총을 유대인이 거부한다고 해서 선민으로서 택함이 취소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은총을 거부하기 때문에 은총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질 수밖에 없다. 그때부터 이교도가 은총을 받게 되므로 유대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예수 안에서 은총을 받아 선포한다. 그런 관점에서 유대 민족에 대한 내버림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대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은 민족이 아니라, 이교도와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전해지도록 '일시적으로' 버림받은 민족이다." 엘륄은 하나님의 은총을 사람이 거부한다고 해서 그 은총이 폐기된다면 하나님의 '권능'이 무효하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냐고도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에게로 회심한 이교도는 유대인에게 감사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언제까지나 유대인은 뿌리이고 유대인 아닌 기독교인은 거기서 돋아난 가지이기 때문이다.
엘륄은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택함이 아직 폐기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신실함과 약속의 영원함에 대한 증인이 되고", 유대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버림받음에 따라 비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되었으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보편성과 자유에 대한 증인이 된다"고 나름의 균형론을 펼친다.
유대인 선민론과 예수 메시아론 둘 다가 '영원히 유효하다'는 엘륄의 주장은 궤변처럼 들릴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유대인 못지않은 선민론에 빠져있는 듯한 현 기독교에는 작지 않은 울림이 될 것 같다. 엘륄의 말대로 유대인 선민론이 아직도 유효하다면 점점 타락해가고 있는 기독교는 그 미래를 통째로 유대인에게 넘겨줘야 할지 모르고, 유효하지 않다고 해도 유대인들이 교만한 댓가로 선민권을 잃었듯 자신들의 선민권 또한 영원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