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rée 특집: 건강권 논란 뛰어넘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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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를 지원한다는 발상은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이곳 형편이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농촌에서는 임신부 25명 중 한 명이 출산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약 30%의 산모가 친척의 도움으로 아기를 낳고 7%는 그나마도 도와주는 이가 없다. 또 신생아 1천 명이 태어나면 약 70명은 만 5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 한두 살 되는 아기 중 절반가량만 예방접종을 받을 정도니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며칠 동안 몇몇 지역을 돌아보았다. 참담한 실상에 대상이 분명하지 않은 분노와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답답함을 이기기 어렵다. 누구나 산전진찰을 제대로 받고 안전하게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때가 오기는 할까,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권리로서의 건강: 산모와 어린이
산모와 아기가 부당하게 목숨을 잃는 것이 정의에 어긋난다는 판단은 직관적이고 보편적이다. 여기에 복잡한 논리와 토론이 필요하다면, 수많은 사람과 단체, 국가,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자고 나서는 것을 설명할 도리가 없다. ‘새천년개발목표’(MDG·Millenium Development Goal)라는 것을 세워놓고 온갖 국제기구가 임신부와 아기의 사망을 줄여보자는 노력을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를 정의라 하는 것은 이들의 생명과 건강이 권리이자 이를 보장하는 것이 누군가의 책임임을 의미한다. 한국 상황으로 돌아오면, 다행스럽게도 이제는 산모나 막 태어난 아기가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일은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이 산전진찰이나 예방주사는 기초적인 권리로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지금 이런 정도의 기본권도 누릴 형편이 못 된다면, 우리 사회 구성원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각 개인이 일부러 선택한 결과가 아니라면 이유와 관계없이 공분을 느낄 것이다.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정부는 도대체 뭘 한 거야?” 이 정도가 가장 흔한 반응이 아닐까. 기본권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산모나 아기의 건강에 대해서는 판단이 쉽고 시비도 적다. 지금 기준으로 아주 기본적인 것이어서 그렇다. 그러나 논의를 넓혀 산모와 아기의 기본적인 건강을 넘어가면 문제가 단순하지 않다. 현실감을 가지기 위해 앞의 상황으로 되돌아가 실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보자. 전염병은 후진국에서 어린이의 생명을 위협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그러나 치명적인 전염병이 누구나 알 수 있게 꼬리표를 달고 나타나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가벼운 증상으로 시작하고, 흔히 감기처럼 가벼운 병과 구분하기도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면 진단과 치료 어디부터가 기본적인 권리가 될까. 생명에 직접 연관되는 것만 골라서 미리 알 수 있다면 모르지만, 이는 지나봐야 알 수 있는 것일 뿐 미리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다. 사정이 조금 다르지만, 겉으로는 가벼운 병으로 매일 병원을 찾아가는 한국의 노인들에게도 비슷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분명 이는 단순하고 단편적인 예다. 그러나 현실에서 건강과 질병이 간단하게 재단할 수 없는 다채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출산과 예방주사는 경과나 효과가 그리 복잡하지 않지만, 대체로 많은 질병은 경과를 쉽게 예상할 수 없고 불확실성이 크다. 의료·진료·치료 등으로 부르는 조치는 이런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한 인간과 사회의 노력이고 개입을 말한다. 따라서 의료도 직관적으로 권리다, 아니다 할 수 없기는 매한가지다. 생명이 중요하지만 건강이 삶의 유일한 가치는 아니다. 다양한 삶의 의미와 가치 중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건강에 부여하는 중요성은 달라진다. 노년에 건강 때문에 금연을 해야 했던 프로이드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것에 몹시 상심해 “건강은 비용을 치러야 한다. (중략) 나는 전보다 나아졌지만 더 행복하지는 않다”고 했다. 행복을 건강과 구별되는 가치로 본다면, 건강이 한 개인에게도 절대적 가치는 아닌 셈이다. 건강과 정의의 함수관계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이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2008년 한국종합사회조사에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한국인의 56.4%가 건강을 꼽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경향은 비슷하다. 우리 모두는 본능적으로 질병과 고통을 피하려 한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본능적인 추구 대상이 된다고 해서 건강이 권리일까. 인간 생활에서 중요할수록 권리가 될 가능성이 크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적 권리가 되려면 그 이상이 필요하다. 건강이 중요한 가치로 취급되는 직접적 이유는 아마 건강이 정상적인 혹은 더 나은 ‘기능’을 보장한다는 측면일 것이다. 여기에서 기능은 개인의 일상은 물론 가족, 사회, 직업 등 여러 층위에 걸쳐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특히 경제적·직업적 기능이 중요하게 취급된다. 낮은 건강 수준이 직업적 기능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명확하다. 주위에서 건강이 나빠져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거나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는 사람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병에 걸리면 수입이 줄어들고 있는 재산도 탕진하기 쉽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이 곧 ‘생명’인 한, 건강이 한 개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건강이 미치는 악영향이 잠시 있는 일로 끝나기보다 장기간에 걸쳐, 때로는 대를 이어 축적되고 전승된다는 것이다. 건강이 나빠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결과로 안 좋은 일자리를 얻게 되면 생활환경과 조건이 나빠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러면 자녀의 건강도 나쁠 가능성이 높고 그런 자녀의 일자리와 경제 수준도 나빠진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건강의 중요성을 인식한다. (한국의 노인들을 보라!) 이는 자본주의 체계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데 건강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상적으로 사는 데 필요하다는 것만으로는 건강이 권리라고 주장하기는 미진하고 흔쾌하지 않다. 상품화된 노동 혹은 비용 지출과 연관된 것이 아니면 건강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인가. 여기에서 기능을 좀더 넓게, 보편적으로 확장해보자. 이런 맥락에서 건강을 정의이자 권리로 볼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는 대표적인 주장이 건강을 개인의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기회는 직업이나 경제활동과 같은 실용적인 것에 머물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을 펴는 대표적인 사람이 정의론으로 유명한 존 롤스의 충실한 제자인 철학자 노먼 대니얼스다. 그는 “건강은 공정한 기회를 보장한다”면서 동등한 능력과 의욕과 동기를 가진 사람들이 동등한 삶의 전망을 가지려면 건강이 필수 조건이라고 했다. 바꿔 말하면 균등한 기회는 정의를 달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므로, 건강은 중요한 가치로 존중돼야 한다. 따라서 건강은 정의로운 사회에서 중요한 권리다. 대니얼스의 주장은 경제적 기능에서는 한참 나아갔지만 여전히 건강이 ‘도구적’인 것으로 비치는 건 어쩔 수 없다. 즉, 다른 중요한 무엇을 이루기 위해 건강이 필요하다는 식이다. 이러한 점에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의 주장은 건강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쪽으로 한발 더 다가선다. 그는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본질적 측면이라면서 적절한 영양 섭취, 건강을 유지하는 것, 피할 수 있는 병에 걸리지 않는 것, 또 피할 수 있는 이유로 일찍 죽지 않는 것 등이 핵심적인 삶의 기능이라고 했다. 아울러 그는 건강은 교육이나 정치적 자유와 같은 다른 핵심적 기능을 선택하고 성취할 수 있는 능력과 연관된 것으로 보았다. 건강이 나쁘면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고 공동체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어렵다. 따라서 건강은 그 자체로 추구해야 할 삶의 목표인 동시에 다른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기능’을 한다. 이렇게 보면 모든 이에게 건강은 필수적 가치고, 그것을 성취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대니얼스와 센이 말하는 논지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건강은 삶의 목표 그 자체이거나 핵심 목표를 성취하는 데 필수적 요소라는 것이다. 따라서 각 개인이 건강을 성취하는 것은 핵심적인 삶의 가치고, 모든 사람이 부당하게 생명에 위협을 받거나 건강을 훼손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결국 산모나 어린이의 생명과 건강만 기본적 인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건강은 보편적으로 보장돼야 할 인권이다. 이것이 바로 ‘건강권’이라는 것으로, 유엔이 진작 인권선언과 사회권 규약을 통해 중요한 기본권이자 인권으로 규정해놓았다. 건강은 권리인가 건강권은 굳이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또 심오한 철학이나 윤리를 동원하지 않아도 설득력 있고 호소력 있는 가치이자 지향이다. 그러나 건강권을 ‘권리’로 보는 한, 현실에서 실제 구현될 수 있는지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 점에서 건강권은 많은 한계를 가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건강이 좋지 않은 가난한 청년이 있다고 할 때, 이 사람에게 건강권은 실제 권리를 주장하고 국가의 의무를 강제화할 수 있는 현실적 근거로 활용되지 못한다. 건강권이 추상적인 주장으로 들리고 현실에서 멀어 보이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작용한다. 가장 흔히 제기되는 비판은 사회권을 비롯한 다른 적극적인 권리와 마찬가지로 건강권도 권리(혹은 권리 수준)와 의무를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즉 권리는 곧 국가의 의무를 의미하는데, 국가가 개인의 건강을 위해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불명확하고, 어느 정도의 건강 수준이 권리에 해당하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이유 때문에 건강권은 성립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건강권의 한계를 짓는 건 타당하지 않다. 모든 사람에게 어떤 상태를 완전하게 보장하는 것이 권리의 필요조건이라면 어떤 권리도 제대로 성립할 수 없다. 한국의 경우 굳이 통신이나 전자우편의 감청 문제 혹은 국가보안법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통신의 자유나 의사표현의 자유(혹은 권리) 등이 이른바 ‘공익’이나 ‘사회질서’의 이름으로 얼마나 불확실한 상태에 있는지 말할 것도 없다. 사정이 그렇다고 해서 자유로운 통신의 권리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건강권을 인정하는 것은 어떤 바람직한 상태를 목표로 하면서 이것에 가까워지도록 실천해나가야 한다는 당위이자 사회윤리적 의무를 나타낸다고 보아야 한다. 자유권을 비롯한 다른 권리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성취의 도정에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보다 더 중요한 지적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다양하고 그중에는 국가가 책임질 수 없고 의무를 다하기 어려운 요인이 많다는 것이다. 실제 건강에는 타고난 체질을 비롯해 개인 습관, 소득이나 가정환경과 같은 사회적 요인, 질병 치료 여부 등이 골고루 영향을 미친다. 언뜻 생각하면 이 모든 요인에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것은 불가능하고, 따라서 개인도 이렇게 결정되는 건강을 권리로 주장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의료(혹은 치료)는 국가가 정책과 다른 수단을 통해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으므로 보편적 건강권에 비해 쉽게 인정할 만한 권리라 할 것이다. 이처럼 보장할 의무와 그 의무 주체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건강권이 성립하기 어렵다는 주장은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권리와 의무를 결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권리와 의무는 구분해야 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를 제대로 양육할 의무는 자녀가 그런 양육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 샌드라 프레드먼이 저서 <인권의 대전환>에서 주장했듯이, 권리를 충족하기 위한 의무가 아무리 어렵고 복잡하더라도 그것이 의무를 소홀하게 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건 아니다. 즉, 권리가 충족되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의무는 존재한다. 따라서 건강권은 국가가 그것을 충족하기 위한 의무가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에 성립할 수 없는 권리가 아니라, 권리의 충족 여부와 관계없이 국가가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 즉 실재하는 권리다. 건강권과 국가의 의무: 건강보험을 넘어 건강권이 의료에 대한 권리를 넘어 건강에 대한 권리라면, 그것이 구체화되는 경로는 다면적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적정한 의료 서비스를 보장해야 하는 것은 물론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직업이나 소득도 건강의 성취라는 관점에서 국가가 의무를 다해야 하는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건강권은 대부분 건강보장제도(한국에서는 건강보험과 의료급여)라는 범위와 구분되지 못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그나마 건강보험이나 의료급여에서도 권리가 아니라 ‘혜택’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다. 다시 반복하지만,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많고 국가의 책임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은, 국가가 의무를 소홀히 해도 된다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모든 사람이 건강하게 사는 것이 기본적 권리인 한, 그것을 충족하는 것이 아무리 복잡하고 어렵더라도 국가의 의무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현실에서 건강권은 ‘목표’로서의 권리이기 때문에 국가가 의무를 다했는지를 권리가 충족됐는지 여부로 판단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프레드먼은 국가가 적극적인 의무를 다했는지 판단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투입한 자원의 양과 조치의 종류에 상관없이 권리를 충족하겠다는 실질적인 목표를 가져야 하고(유효성), △권리를 실현하는 과정에 영향을 받는 당사자가 직접 참여해야 하며(참여성), △국가는 도출된 결과를 시민에게 설명하고 그것이 정당함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하고(책임성), △아울러 실질적 평등을 위해 노력하고 약자에게 더 많은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평등성). 한마디로 국가는 모든 국민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 (현재 여건에서) 가능한 노력을 다했음을 증명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에서 건강권을 충족하기 위한 국가의 의무는 분명히 건강보험이나 의료급여제도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다. 의료보장을 넘어서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인을 교정하는 데까지 확장돼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명확하다면, 비정규직을 줄이는 실질적인 정책을 마련하는 것도 건강권을 충족하기 위한 국가의 의무다. 의료보장으로 범위를 좁히더라도, 국가는 건강권이라는 권리를 충족하겠다는 실질적 목표를 지녀야 하고 직접 국민이 참여한 가운데 권리가 충족됐는지 판단을 받아야 한다. 또한 현재의 보장성 수준이 정당한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어디까지가 권리인가 하는 논란도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근거를 설명하고 정당성을 인정받으면서 해소될 수 있다. 계속되는 도전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해외 출장이 연속되는 바람에 나는 다시 폴란드에 있다. 짧은 일정에 직접 경험할 겨를은 없었으나 이곳에서도 국가가 운영하는 의료보험에 국민의 불만이 큰 모양이다. 공보험이 있다지만 재정이 부실해서 직접 부담하는 비용이 적지 않고, 공립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으려면 ‘촌지’ 비슷한 비공식 비용을 추가로 내야 하는 일도 흔하다고 한다. 40개가 넘은 지방 공공병원을 민영화한다는 소문도 들린다. 어려운 경제가 원인인가 했는데, 지난해 유럽연합(EU)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플러스 경제성장을 할 정도라니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10개가 넘는 경제특구를 지정하고 세금을 감면하면서까지 외국 기업을 유치하려 노력한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경제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이곳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 비치된 잡지에는 최고급 건강검진을 소개하는 광고가 버젓이 실려 있었다. 처음 온 나라이지만 이런저런 풍경이 어째 고루 익숙하다. 많은 나라에서 건강권은 둘째 치더라도 의료보장조차 경제에 부담이 되고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특히 여러 나라에서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건강보장은 곧 비용이라는 인식이 모든 상황을 압도하는 것이 현실이다. 폴란드가 그런지 아닌지 단편적인 관찰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곳곳의 대형 개인의원과 그 간판, 대형 상가의 화려한 체인 약국, 최고급 건강검진 광고, 이런 풍경들에서 동요하는 건강보장의 조짐을 본다면 너무 앞서간 것일까. 건강권은 하늘이 낸 당연한 권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허황된 이론의 창작물도 아니다. 인류가 지난한 투쟁 과정을 거쳐 쟁취한 인권의 하나이며, 지금도 곳곳의 장애물과 힘을 겨루면서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는 역사 발전의 성과물이다. 경제와 효율이라는 명분으로 세계 도처에서- 한국과 폴란드, 파푸아뉴기니를 막론하고- 건강을 도구화·물신화하는 경향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항해 삶의 본질적 가치를 성취하려는 요구로서 건강권을 온전히 충족하기 위한 투쟁도 더욱 거세질 것이다. 아니 그래야 한다. 글•김창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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