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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선 칼럼] 8월이 오면…

▲본지 논설주간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신학)

올해 8월에는 유난히 가슴이 답답하고 숨도 막히고 말도 하기 싫어집니다. 올해 8월은 다른 해보다 더 심한 것 같습니다. 장마가 끝나가는 마당에 섭씨 30도를 웃도는 무더위 때문으로 핑계를 대봅니다. 냉방을 과도하게 오래 켜두고 방안에 틀어박혀 있어서 생긴, 여름철의 몸살감기 때문인가요? 우리 집 아이들이 자기네 아이들 끌고 한 차 가득히 먹을 것과 입을 것들을 챙겨 지고 바다로 여름휴가를 떠나고, 해수욕장 인파가 500만을 넘는다고 하는데 우리 할머니와 나는 텅 빈 아파트와 동네를 지켜야 하기 때문인가요? 인천 공항에서는 해외 피서 나들이 하는 여행객들이 올해에도 "사상 최대"의 통계 숫자를 자랑하고 있어서인가요?

아닙니다. 올해 8월은 29일,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15일은 8.15 해방절 혹은 광복절이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해방된지 어연 65년이 되는 해입니다. 1945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벌써 환갑 잔치를 차려 먹은 지 5년이 되어서, 웬만한 직장에서는 "정년 퇴임"을 하고 연금 타고 백수생활 하면서 "노령화"되는 세상에서 앞으로 30년을 무엇하며 살아갈지 아이들 눈치 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해방이 된 지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우리는 우리 땅 동쪽 바다는 "동해"라고 마음 놓고 말하지 못하고 세계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 눈치 보며 같은 바다를 "일본해"라고 세계지도에 박아 놓고 있습니다. 우리 동쪽 섬 "독도"는 엄연히 우리 땅이라고 학자들과 역사가들과 우리 정부가 때만 되면 소리 지르고 있는데도, 아직 일본 사람들은 묘한 냉소를 지으면서 "다께시마 다요(죽도야요)"하고 있습니다. 20만명에 가까운 우리 땅의 딸들이 그 10대의 나이에 일본 장사꾼들에게 속아서 끌려가 중국과 동남아와 남태평양에서 "정신대"라는 미명하에 집단 성폭행을 당하며 생을 저주해 온 할머니들이 나이 들어 죽기만 기다리면서 역사적 죄악을 밝히지도 않고 배상을 하려고도 하지 않고 있어서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평화헌법"으로 참회했다고 하는 일본정부의 정식적이고 공식적인 진정한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들어 보지 못해서입니다. 그래서 우울합니다.

우리는 100년 동안 일본제국주의에 빌붙어서 친일하고 영화를 누리고 식민지 백성으로 제소리 못 내보고 착취와 억압만 당한 한국 민족을 무시하고 살아온 사람들이 다시 권좌에 올라서 "보수"의 이름과 "반공"의 이름으로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해방과 통일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입니다. 우리는 "일제 36년"이라고 입 발린 소리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조선 근대화 36년"이라고 속으로는 식민지시대를 찬양하고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서 감사해야 한다는 지식인과 역사학자들이 역사책을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제 36년"이라고 하지만, "해방 65년" 동안의 일을 생각하면 해방절을 맞이하는 8월이 부끄러워지고 우울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민족과 우리 땅이 일본제국으로 부터 해방이 되었고, 독립을 하게 되었다는 같은 해 1945년 8월, 우리 민족과 우리 땅은 북위 38도 선을 따라 두 갈래로 분단되었습니다. 그로부터 그 해 태어난 아이들이 백발이 성성하게 된 오늘까지, 아직도 우리 민족과 우리 땅은 휴전선의 허리띠가 우리를 숨 막히게 졸라 매고 있습니다. 질식하고 숨 막힐 지경입니다. 우리는 "일제하 36년"이라고 하지만, 여태까지 해방군이라는 이름으로, 6.25 참전 전우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한미동맹의 이름으로 "미군과 함께" 65년을 살아 왔습니다. 이제 얼마나 더 오래 함께해야 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직도 일본 제국주의로 부터 완전히 해방된 것도 아니며 독립을 쟁취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 한반도에 통일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진정한 해방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1950년의 6.25 한국전쟁이 휴전이 아니라 "종전"이 되고, 남과 북이 평화협정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기 전에는 한반도에 전쟁이 끝났다고 할 수 없습니다. 1953년 휴전협정에 서명한 미국과 중국과 북조선이 다시 모여 앉아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종전을 선포하기 전에는 우리 한반도에는 전쟁의 위험이 완전히 철거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북조선이 미국의 공격의 위협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할 수밖에 없다고 강변하지만, 핵무기를 포기하고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성사시키고 경제적 자립과 번영을 위해서 개방정책을 쓰도록 한국정부와 미국정부가 적극적인 대화의 노력을 펼치기 전에는 평화의 비둘기가 우리 땅에 날아들기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8월이 열리는 일요일 아침, 답답한 마음으로 1919년 3.1 운동 당시 우리 조상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초한 [독립선언문]을 다시 읽었습니다. 경술국치 10년 만에 한겨레가 한마음 한뜻으로 독립 만세를 외치던 그 때의 해방과 자주독립의 비전이 무엇이었나 다시금 음미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독립선언문]은 일본제국주의의 동양 침략의 야욕을 꿰뚫어 보면서, 우리네 독립만세 운동은 "동양의 영원한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일갈했습니다.

"[우리] 이천만 국민을, 힘으로 붙잡아 묶어둔다는 것은 다만 동양의 영원한 평화를 보장하는 노릇이 아닐 뿐 아니라, 이것이 동양의 평안함과 위태함을 좌우하는 사억 중국 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두려움과 새암을 갈수록 짙어지게 하여, 그 결과로 동양 전체가 함께 쓰러져 망하는 비운을 초래할 것이 뻔한터에,...일본으로 하여금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버티고 나갈 나라로서의 무거운 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꿈에도 벗어나지 못할  불안과 공포로부터 떠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의 평화가 중요한 일부가 되는 세계평화와 인류복지에 꼭 있어야 할 단계가 되게 하는 것이라...
([독립선언문], 김동길 한글판, 2010년3월1일)."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우리의 8월, 815 해방과 분단 65년이 되는 우리의 8월, 그리고 6.25 한국전쟁 60 돌이 되는 2010년에 1919년 3월, 독립만세 운동을 펼친 우리 조상들의 비전은 해방과 자주 독립, 그리고 동양의 평화였던 것을 새삼 되새기게 합니다. 지난 3월 말, 우리 천안함이 서해 앞바다에서 침몰하고 우리 해군의 젊은 아들들이 죽어 돌아오는 것을 가슴 아프게 지켜보면서, 우리는 분단의 아픔과 동족 상잔과 상호 증오의 분노와 보복의 역사에서 헤어나오지 못함을 절감하였습니다. 7월 말에는 미국의 핵 항공모함을 선두로 한 동해상에서의 대대적인 한미 합동 해군 대잠수함 훈련으로 수많은 포탄과 미사일을 바다 속에 퍼 붓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런가하면 중국은 이에 질세라, 우리 서해 (중국의 황해) 멀리에서 함포사격 등 실탄 전쟁연습을 감행했습니다. 이어서 우리 해군은 8월이 가기 전에 다시 서해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한다고 합니다.

8월의 더위 속에서 전쟁의 뜨거운 소문이 그치지 않습니다. 평화를 위한 기도 소리는 전쟁의 폭풍우 속에 사라진 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무더운 8월입니다. 혹시 가을 바람을 타고, 추석이 되기 전에, 북녘에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에게 하루 세끼 제대로 된 밥을 먹일 수 있게 쌀 가마니를 실은 배를 인천항에서 띄워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남아 도는 쌀을, 막걸리도 좋고 우리 소 돼지 배부르게 먹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선 우리 장래의 통일된 조국의 아들 딸들을 굶주림과 영양실조에서 구원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까요? 그것마저도 희망이 없는 것 같아 우리의 8월은 안타깝게 무덥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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