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신학과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입장에서 성서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
‘상호 텍스트 연구’란 급진적 시도…성서의 정전성에 대한 도전
‘성서 읽기’ 독서 행위로 그쳐선 안돼…진정한 독서와 대화 필요
성서의 정전성을 뒤흔드는 책 『인물로 보는 성서 뒤집어 읽기』(삼인)가 10년이 넘는 연구와 수정 그리고 보완 작업을 거쳐 세상의 빛을 봤다. 5일 이 책의 저자인 김진호 목사(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인물로 보는 성서 뒤집어 읽기』 저자 김진호 목사(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
먼저 출간 배경을 물으니 99년도 성서의 인물이란 테마로 시작된 강의가 이 책을 출간하게 된 발단이 되었다고 김 목사는 설명했다. '위대한 남자' '위대한 여자' '소외된 남자' '소외된 여자' '라이벌' 등 5개 아이템으로 총 8강씩을 진행하니 총 40강으로 1년간 강의를 했고, 그 중에 19개 강의를 골라내 원고를 작성한 연구자들과 함께 계속적인 대화와 토론을 했다.
성서를 읽는 새로운 코드로 ‘인물’을 택한 김 목사는 연구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도 알렸다. 성서에는 ‘인물’ 특히 소외된 인물에 관한 정보가 부실한게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김 목사는 ‘상호 텍스트 연구’라는 급진적인 시도를 했다.
"위대한 남자나 위대한 여자들은 성서에서 미화되어 표현되는 경우가 많고, 소외된 남자, 소외된 여자는 때로는 성서 속에서 이름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야박하게 평가되기도 한다. 숨겨진 소리를 찾아보자는 의도로 시작을 한 것인데 성서의 정보가 많지 않았다. 이것을 보충하기 위해 비교자료를 찾아내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다시 말해 문학적으로 찾는 것을 말한다. 소설이나 영화나 이런 문학 작품에서 생각의 실마리를 발견해 성서 테스트를 다시 읽는 것이다. 상호 텍스트 읽기라 하는데 이런 방식이 성서를 읽는데 있어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김 목사는 창세기의 하갈과 사라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 ‘씨받이’에서 생각의 실마리를 얻었다는 김 목사는 하갈이란 여인이 아브람의 씨받이 노릇을 하고, 아브람의 아내 사라로부터 학대를 받은 뒤 쓸쓸히 쫓겨나는 모습을 진솔하게 그렸다고 했다.
김 목사는 이런 연구 방식이 성서의 정전성에 대한 도전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봤다. "처음에는 성서를 어떻게 읽을지 막막했는데 이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단서, 실마리 등을 찾게 되면 생각의 여지가 열리게 되고, 사람들은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하게 된다. 즉, 성서읽기에 우리 스스로가 개입해서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성서에 대한 성찰도 하게 되는데 이런 읽기 방식은 정전성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성서의 정전성이란 성서의 커다른 의미의 폐쇄적인 구조를 뜻한다. 보다 자세히 말하면 성서에 포장된 의미망을 말하는 것으로 수많은 성서 애독자들은 알게 모르게 이 의미망을 따라 성서를 읽게끔 강요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이 같은 풍토 위에 진정한 독서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성서를 폐쇄적으로 읽는 것이 외부로부터 성서 읽기를 닫아버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성서를 중요시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성서를 독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답이 있으니까 자기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독서가 아니다. 독서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독서가 부재하기에 독서 행위만 남게 된다고도 했다. "신앙인들은 성서를 독서해야 한다는 중요한 욕구가 있지만 독서가 불가능하도록 장치가 되어 있기 때문에 독서 행위만 있고 독서가 없어진 것이다"라고 말한 김 목사는 독서 행위는 일종의 과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냉철하게 평가했다. 성서를 몇 독 했다든지 성서를 읽지는 않지만 옆구리에 항상 끼고 다닌다든지 도시락 위에 올려놓고 식탁기도를 드린다든지 하는 등의 자기 과시 행위만 남게 됐다는 것이고, 이것이 신앙의 큰 위기라는 지적도 곁들였다.
그는 특히 성서를 읽을 수 없는 책으로 만드는 이 ‘성서의 정전성’을 두고 "성서를 모독하는 행위"라는 강력한 비판도 아끼지 않았는데 그 이유로 신의 대화 의지를 꼽았다.
"성서는 정전이 되면 안된다. 그것에 대한 저항 의식이 이런 읽기 방식을 시도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됐다는 것은 사람들과 대화하겠다는 신의 표시인 것이다. 물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것이나 사람과 함께 무엇인가를 함께 해보겠다는 신의 대화 의지가 있었다. 그런 종교가 우리 신앙의 출발점인데 어느새 우리 종교가 이 신의 대화 의지를 하나 둘씩 없애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된 신마저 너무 숭고한 존재가 되어 우리로부터 너무 멀리 있다. 심지어는 그 분과 연관된 어떤 표상들도 권위적이게 됐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성서다"
때문에 김 목사에게서 성서의 정전성은 해체되어야 마땅했다. "성서를 통해 그 분(예수)을 알 수 있다고 하지만 성서를 통해 그 분을 알 수가 없다. 우리는 성서에 포장된 의미망을 통해서 그 분(예수)를 알 수 있는 것 뿐이다. 그 의미망에 둘러싸고 있는 자들만 그 의미에 개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교 신앙 체계에서 정전성이란 신앙적 의미는 신을 숭고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사실은 성서를 모독하는 행위다. 성서를 읽을 수 없는 책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진정한 독서는 하나님이 나에게 말을 걸었을 때 내가 대답하면서 서로 대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인물로 보는 성서 뒤집어 읽기』에서 이런 저자의 의도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성서 속 위대한 인물로 추앙만 받아온 다윗 그리고 에스더에게선 그에 얽힌 추문들을 조명했고, 성서 속 역사의 죄인이라 손가락질을 당하는 유다로부터는 다른 시각으로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
김 목사는 "복음서에서 처음부터 유다가 배신자로 특정화 되지는 않았다"며 "후대로 가면서 유다란 인물이 특정화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리스도교 형성 과정에서 일종의 악마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유다는 역사의 변명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고, 성찰할 여지마저 없는 인물로 낙인 찍혔다는 얘기였다.
그리스도교 형성 과정에서 왜 악마 같은 존재가 필요했을까? 김 목사는 "사실 예수를 배반한 사람들은 유다 만이 아니라 제자들 모두였다. 예수에 적대한 로마 총독이나 산헤드린의 유대 귀족들, 사제 귀족들의 문제 만이 아니라 예수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예수에게서 등을 돌렸다"면서 "모두가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것인데 복음서 후대로 가면서 그 모든 자기들의 죄의식을 한 특정 인물에게 전가를 시켜 버린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역사적)퇴행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렇듯 성서 속 인물을 둘러싼 은폐된 이야기, 억눌린 이야기를 코드로 김 목사는 성서를 읽는 독자들에게 ‘독서 행위’가 아닌 대화하는 ‘진정한 독서’를 권장하고 있다. 『인물로 보는 성서 뒤집어 읽기』는 저자가 오랜 세월 연구한 민중신학과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영향 아래 성서를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 보려 시도했으며 특히 성서라는 거룩한 언어로 자행된 폭력에 주목했다.
남성 권력자의 변덕에 자신의 명을 걸 수밖에 없는 밧세바와 에스더의 이야기, 그저 악마로만 표상되는 가룟 유다, 유아기로의 퇴행을 부추기는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 노예해방론자로 인식되는 바울의 적나라하면서 이중적인 진실 등을 분석하면서 정전화 된 성서가 어떻게 힘없는 사람, 여성에게 폭력을 휘둘렀는지를 파헤쳤다.
김진호 목사는
서강대 수학과를 졸업했으며,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민중신학자 안병무로부터 신학을 배웠다. 한국신학연구소에서 연구원, '당대비평' 편집주간을 거쳐, 안병무 선생이 설립한 '한백교회'의 담임 목사를 지냈다. 현재는 '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 연구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2004년 2월 '당대비평'이 펴내는 단행본 시리즈 '당비생각' 첫번째 권인 『우리 안의 이분법』에 '낯설음에 대한 은폐된 폭력'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한 바 있으며, 같은 해 9월에는 김선일씨의 죽음을 출발점으로 테러리즘과 평화에 대한 성찰들을 담아낸 '당대비평' 특별호 『아부 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에 '테러리즘, 복수의 정치학, 그리고 거래되는 고통'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저서로는 한국신학연구소에서 발간한 『함께 읽는 구약성서(공저)』와 『함께 읽는 신약성서』, 『실천적 그리스도교를 위하여』, 『예수 르네상스 : 역사의 예수 연구의 새로운 지평』, 『예수 역사학 : 예수로 예수를 넘기 위하여』, 『반신학의 미소』,『급진적 자유주의자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