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박종화] 여해 강원용 목사를 추모하며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담임목사)


1. 자화상
 “당신은 정치가요?
  아니요
 당신은 사회운동가요?
  아니요
 당신은 성직자요?
  아니요
 그러면 당신은 누구요?
  나는 빈들에서 외치는 소리요.”

“나는 정당에 가입한 일도, 정권을 얻기 위해 일한 사실도 없으니 정치가는 아니다. 사회운동단체를 조직하여 전국적으로 사회운동을 편일도 없으니 사회 운동가라 할 수도 없다. 교회 목사는 했지만 그것은 내가 활동해온 일부에 불과하고, 또 성속(聖俗)을 구별하며 살아오지 않았기에 나를 성직자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내가 살아온 한국의 70년은 ‘빈들’이었다. 이 빈들은 성서에도 나오듯 ‘돌로 떡을 만들라’는 물질만능, 경제제일주의, 악마에 절하고라도 권력만 잡으면 된다는 권력숭배사조,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비합리적이고 광신적인 기복종교에 지배되는 공간이었다…….
그간 한국사회에 역사에 전환도 시도되었으나 나의 관심인 이 악의 영(물질만능, 권력숭배, 광신적인 종교)의 세력은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이 세 가지 세력의 유혹을 되풀이 받아오면서 그 유혹에 빠지지 않고 살아 있다고 자부하며 자위한다…….”

위에서 “빈들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자부하며 스스로를 빈들에서의 소리로 생각하며 살아온 강원용 목사의 본인 이야기를 소개했다. 1993년에 출간한 「빈들에서」의 저자 서문 중에 나온 이야기다. 강원용 목사는 1985년에 경동교회에서 50년간의 목회를 은퇴하신바 있다. 따라서 위의 이야기는 자신의 목회생활까지도 포함한 자기고백으로 받아 들여도 될 것이다.

강 목사님과 비슷한 세대의 인물들이 다 그러하듯이 한국역사의 급격한 정치적, 사회적, 민족적 전환기에 그리스도인으로 결단한 삶을 살았다. 함경남도 이원 출신인 강 목사는 15세 때 유교가정을 박차고 나와 그리스도를 영접했고, 그 후 그의 가정은 기독교 가정으로 변화된다. 젊은 시절 그는 만주 용정으로 배움의 길을 떠난다. 용문교와 해란강의 마을인 용정의 「은진중학」에서 그의 미래의 삶의 이정표가 잡힌다. 그의 고백 속에 두 분의 스승이 등장한다. 한분은 은진중학의 이사장으로 있던 김약연 목사로부터 민족독립의 긍지를 터득할 수 있었단다. 또 한분의 스승은 김재준 목사이다. 말주변도 없고 항상 수줍은 스승은 학생들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천정과 노트만 보며 강의했지만 그분의 고매한 인격과, 자유지성적인 신앙, 그리고 성 프란시스를 존경하면서 몸에 익힌 성빈생활이 너무도 마음에 들어 인생의 스승으로 삼고 지내왔다는 고백이다.
일본 동경의 명치학원을 거쳐 조선신학교를 마치고 미국의 유니온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강 목사는 평생을 좌우하는 신학스승을 만나게 된다. 한분은 폴 틸리히라는 신 정통 신학자이고, 다른 한분은 기독교 현실주의 윤리의 대가인 라인홀드 니버 교수이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두 분 교수의 신학과 윤리는 강 목사의 목회와 사회참여의 신학적 윤리적 바탕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빈들에서」의 서문에 간접적으로 고백이 되었듯이 그의 신학은「성육신 신학」이었다고 본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자체가 강 목사의 성육신적 “세상참여 목회”를 가능케 하고 뒷받침해온 신학적 기저이다.

본인의 솔직한 고백처럼 “목사 강원용”은 목회 목사이었다. 하지만 이 부분의 핵심은 설교 목사 역할이 주류였고, 그것은 “빈들에서 외치는 설교”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이 강 목사님이 시작하고 평생을 바쳐 헌신한 경동교회의 자화상의 큰 부분이다. 필자가 1999년 말에 경동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하고 심방도 열심히 했었는데, 강 목사님이 몇 번인가 이런 말씀을 묻기도 하신 일이 있다. 나는 심방 안했는데, 왜 그리 박목사는 심방을 좋아하느냐고 말이다. 사람을 만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앙의 교류 중에 심방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고 했더니 그분이 정색하고 하신 대답이 이것이었다. “그래 그동안 경동교인들은 나 한테서는 정에 많이 굶주렸지. 이제는 정이 필요할거야, 사랑의 나눔 말일세.”

강 목사님은 경동교회 목회를 여러 종류의 목회의 중요한 하나로 생각하셨다. 그는 대화의 철학을 늘 삶의 기본요소로 생각하면서 이것을 사회전반에서 실현할 목장을 달리 찾아나셨다. 그것이 그가 설립한「크리스찬 아카데미」이다. 경동교회와 크리스찬 아카데미는 강 목사님의 두 목회 목장이었다고 말함이 옳을 것이다.

하나는 모이는 교회로서의 「경동교회」였고, 다른 하나는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크리스찬 아카데미」이었다. 둘 다 강원용 목사의 분신이라 할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 강 목사님의 성육신 신학적 실천의 장으로서 역할을 더 크고 넓게 해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항상 성육신 신학의 출발은 목회하는 교회공동체 이어야 함을 믿고 그곳에서 선포되는 말씀은 흩어지는 교회에서 구현되고, 현장에서 용해되고 습득한 성육신적 프락시스는 다시금 주일 설교의 강단에서 신학 화되어야 한다는 상호교류의 틀을 아주 철저하게 지킨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에큐메니칼 운동에 선구자적 헌신을 해 오셨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본인이 속한 교단과 교회협의회를 넘어서 아시아와 세계를 넘나드는 글로벌 에큐메니즘의 선두주자가 되어 활동했다. 그것을 그는 “교회내적 대화”의 공동체라 여겼을 것이다.

WCC와 CCA와 NCC를 중심한 틀이 바로 그것이다.

나아가 그는 또 다른 대화적 삶의 틀을 만들어 내고 헌신했다. 「종교간의 대화」를 한국땅에서 창시한 목사이다. 한국의 6대종단의 대화로부터 시작하여 한국, 아시아, 세계 차원의 「종교인 평화회의」의 주도적 위치와 역할을 해온 것이다.

대화의 철학은 그에게 있어서 성육신 신학의 도구였다. 정치계, 노동계, 경제계등의 모든 사회 분야에서의 대화모임을 이끌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대화 모임의 대주제는 항상 “인간화”였다. 이제도 그때도 마찬가지이지만 강목사님의 “인간화” 주체는 기독교 신학이나 교회 현장에서 말하는 인간화냐 복음화냐의 틀에서 말하는 인간화가 아니라 세계 현장속에 임하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구체적 표현을 인간화라 했던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이 인간화 주제는 곧 종교간의 대화에서도 주축을 이룬다. 강목사님의 종교간의 대화는 구원론에 관한 대화담론이 아니다. 오히려 “종교인들”의 참된 “종교인 모습” 곧 “종교인들”의 세상구원을 위한 “인간화”를 말할려고 했고, 그것은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의 “평화”를 만들어 낸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본다.

잊지 않고 명기해 둘 것이 있다. 다혈질의 성격과 직선적인 성격이라 흔히들 “강핏대”라 별칭했고 본인도 그것을 기꺼이 인정하며 살았지만, 정작 본인은 “예술과 문화”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경동교회는 물론이려니와 사회각계각층과의 교류와 협력에서 가장 많은 동료들이 예술인이요 문화인이라는 점이다. 본인의 어릴적 꿈은 연극인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성육신 신앙을 연극으로 연기하고 연출하고 싶었던 것 같다. 문화예술에 대한 지독한 사랑과 정치 사회 현실에 대하 매서운 비판이 한사람의 성격형성에 강목사님처럼 “역설적 합일”로 잘 응축된 경우도 드물 것이다.

현실 참여의 대명사인 강원용 목사님은 하늘의 부름을 받기까지의 마지막 후반부 생애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고 가셨다. 특히 설교 강단은 거침없는 신앙적 의문제기, 삶의 아픔과 고통의 이야기, 그리고 인간의 역사속에서 이루어지는 성육신의 신비만이 아니라 오히려 창조세계 전체 곧 온 우주에 몸을 입고 오시는 우주적 그리스도의 성육을 소리 높여 외치고 설파하시고는 했다. ‘빈들’은 역사 현장만이 아니라 ‘온 우주’가 바로 빈들이고,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을 기다리는 선교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힘주어 강조하시고는 했다.

그리고는 성육신 신앙만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새 역사를 만드시는 하나님의 영광의 신학을 주창하셨다. 본인의 언어로 남겨놓은 신학적, 신앙적, 세상적 명제가 있다. ‘사이’(between)와 ‘넘어’(beyond)가 공존하는 신앙, 이웃사랑과 하나님 사랑이 합일되는 십자가 신앙, 보수와 진보가 결합하여 제 3의 길을 찾고자 하는 중간 매개 집단의 형성, 환경문제를 중심으로 기존세대와 다가오는 세대가 결속하고 책임을 공유하는 세대간의 대화와 연대의 틀 닦기 등을 통한 “하나됨”의 모색에 집중했다.

물론 말년에는 혼신을 다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준비와 길 닦기에 나섰던 점이 오래오래 우리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 글을 마치면서 추모하고픈 두 마디가 있다. 강원용 목사님의 성서적 좌우명이 그 하나이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마태 6:34), 그것이 강원용 “목사님”의 신학적, 신앙적 고백과 바탕한 점이다. 신앙인 모두가 지녀야할 삶의 근간이다.

또 하나는 앞서 말한 그의 삶의 철학이다. “사이”와 “넘어”의 조화를 추구하는 삶을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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