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성공회대학교 신학연구원 주최로 ‘통일신학 학술세미나’가 성공회대 새천년관에서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는 감리교신학, 기장신학, 성공회신학 등 다양한 신학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참석, 통일신학에 큰 관심을 보였다.
발제자로 나선 이재정 교수(성공회대 신학과)는 ‘통일 신학의 과제와 연구방법론’이란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한국교회의 통일 운동사를 간략하게 짚었다.
▲ 이재정 교수는 1988년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의 선언’을 높게 평가했다 ⓒ베리타스 |
이재정 교수는 1988년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의 선언’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회가 공식적으로 채택한 것에 대해 “1988년 선언은 한국교회가 통일시대를 열어 가는데 필수적인 과제와 해법을 담은 신학문서일 뿐만 아니라 통일을 위한 가장 선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통일장전과 같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또 1989년에 발표된 ‘김일성-문익환 공동선언’에 대해서도 “당시 교착상태에 있던 남북관계를 새롭게 열어 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재정 교수는 통일신학을 함에 있어서 북측과 공동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재정 교수는 “통일신학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그것이 북측과의 공동 작업이 이루어질 수 없고 우리가 거의 일방적으로 추구하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지만 그동안 이루어 온 남북의 협력관계에서 상당한 부분 공감대를 이루어 갈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 이재정 교수는 향후 통일신학의 과제와 연구방법론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통일신학을 논의하려면 몇가지 명제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그 첫째는 통일의 주체가 누군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정 교수는 “통일의 주체는 민족이며 통일의 방법도 목적도 민족이어야 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나라의 통일의 경우와 전혀 다른 요소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재정 교수는 또 “그러나 이 민족을 좁은 의미의 혈연적, 혈통적 개념으로 볼 것이 아니라 과거 일제식민통치의 고난의 역사를 함께 이겨온 역사적인 과정과 한국전쟁의 상처에 대한 화해를 그 요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민족에 대한 개념 정의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아울러 이재정 교수는 “결국 민족의 과제는 ‘통일’이며 ‘통일’을 전제로 하는 민족만이 민족일 수 있는 것”이라며 “성서는 이런 관점에서 민족이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며 어떤 방법으로 하나의 민족이 될 수 있는 길인가를 밝혀주고 있다”고 했다.
또 하나의 명제로 ‘평화’를 꼽았다. 이재정 교수는 “평화는 대결과 대립, 불의와 원한, 굴종과 항복 또는 힘에 의한 통합과 통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라며 “평화는 평등, 자유, 다양성의 존중과 공존의 가치, 그리고 정의와 진리 더 나아가 차이를 장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통일신학이 평화의 과제를 다룰 때 전쟁 상황의 종식(종전선언)이나 휴전협정을 대치하는 평화협정 또는 냉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는 소극적인 과제가 아니라 민족내부를 통합해 갈 수 있는 평화의 가치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즉 정의와 평등과 자유와 주체적인 역사의식을 가지는 적극적인 과제를 풀어 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끝으로 통일의 목표와 통일신학에 관해선 ▲통일의 목표는 현상유지를 하거나 체제경쟁에 따른 적절한 타협이 아니라는 것 ▲통일신학은 어떤 중도주의나 적당한 타협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는 것 등을 주장했다.
▲ 성공회대 양권석 총장이 이재정 교수에게 질의하고 있다 ⓒ베리타스 |
이재정 교수의 발표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특히 성공회대 양권석 총장은 ‘우리민족끼리’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요구했다. 양권석 총장은 “분단 국가 현실 속에서 민족이란 개념을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며 “우리민족끼리에서 ‘민족’은 분단의 아픔을 겪은 민중들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이 외세를 배제한 민중들의 네트웍을 말해야 하는지 분명한 정의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이재정 교수는 “민족이란 개념을 (혈연, 지연을 강조하는)종전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역사적 과정에서 생성된 하나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면서도 한국교회 차원에서 민족에 대한 개념화 작업이 이뤄져야 함을 역설했다.
그는 이어 ‘민족’의 개념 정의부터 해야 할 한국교회의 통일신학 논의가 개교회, 개신학교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킹을 통해 한국교회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함을 재차 강조했다.
한편 남북관계에 대한 전망을 묻는 질문엔 “암담하다”고 예측했다. 그는 ▲ 미국의 대북정책엔 큰 변화가 없을 것이고 ▲ 우리나라의 대북 정책은 유명무실 하기에 대북 경색관계엔 진전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밖에도 통일신학의 방향성에 관한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으나 이재정 교수는 “아직도 통일신학은 좀 더 논의되고 구체화 되어야 할 것들이 많다”며 역사적, 신학적, 철학적, 인문 사회적 관점 등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분석돼야 한다고 주장, 통일신학에 대한 참석자들의 관심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