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역사 안 출·퇴근 길이면 어김없이 마주치는 이들이 있다. 노 숙 자. 일자리가 없는 이들은 보통 역사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밥 시간이 되면 역 근처 무료배급소를 찾아 끼니를 해결하는 식으로 하루를 보낸다. 이런 ‘길거리 노숙자’와는 달리 쉼터 혹은 보호센터에 머무는 노숙자들도 있다. 이들도 역시 당장 일자리가 없어 쉼터에서 제공하는 밥으로 끼니를 떼우기는 매한가지다.
지난해(2009년도 기준) 한국교회의 어느 봉사기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국에는 67개 쉼터와 11개 상담보호센터, 10개의 쪽방 상담소 그리고 교회의 무료급식 시설 22곳 등이 있다. 쉼터 혹은 보호 센터에 머무는 3,875명, 거리에서 노숙하는 1,588명 등을 합산하면 모두 5,463명에 이른다. 늘어나는 노숙자를 이대로 방치만 해야할까?
노숙인 쉼터를 운영하는 교회 관계자들은 "노숙자들에게 무료 배급을 실시해 끼니를 해결하는 것 이상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 같은 공감대 때문인지 쉼터 혹은 보호센터들은 요즘 노숙인들의 자활을 돕는 프로그램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쉽지 만은 않다.
모 교회 복지사는 "노숙자들은 대게 간섭을 받는 것을 싫어 한다"며 "프로그램상 통제가 필요할 때도 있는데 이것을 싫어하는 노숙자들은 자활을 돕는 쉼터나 혹은 센터로부터 나와 다시 길거리 노숙자로 되돌아 가곤 한다"고 말했다. 노숙자들의 이런 독립적인 태도로 인해 쉼터나 보호센터에서 진행 중인 프로그램이 잘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구세군과 휘슬러가 후원하는 ‘빨강 마차’가 점주들을 만났다. 구세군 서대문 사랑방은 ‘빨강 마차’의 운영으로 노숙자들에게 새로운 자활의 길을 제시했다. ⓒ구세군 제공 |
노숙자들의 독립적인 태도를 역 이용해 그들을 사회로부터 환멸 혹은 동정의 대상이 아닌,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일으킬 방법은 없을까? 구세군대한본영 서대문 사랑방(노숙인자활센터)을 10년 째 운영해 온 김도진 사무국장은 그 방법을 ‘창업’에서 찾았다. 자활의지가 있는 노숙자들의 신청을 받아 심사를 한 뒤 노점상의 일종인 빨강 마차를 후원해 이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자는 것이었다.
지난 9월부터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긴 구세군 서대문 사랑방은 총 9명의 지원자를 받아 9개의 빨강 마차 주인을 찾았다. 어제 13일에는 구세군과 이 사업을 후원하는 휘슬러가 함께 빨강 마차 발대식을 갖기도 했다.
김 사무국장은 "독립적 성격이 강한 노숙자들 중에는 창업으로 다시 일어서려는 이들도 많다"며 "그러나 문제는 창업 자금이 없거나 부족하다는 데 있다"고 했다. 이런 어려움에 있는 이들에게 구세군 서대문 사랑방은 비교적 비용(약 250만원 소요)을 최소화해 창엽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노점상을 권하게 된 것이다.
구세군 서대문 사랑방은 빨강 마차의 운영으로 노숙자들의 자활을 돕는 것과 함께 길거리 음식 문화 개선에도 기여하겠다는 각오도 나타냈다. 김 사무국장에 따르면, 9명의 빨강 마차 점주들은 수주에 걸쳐 요리, 위생, 예절 등의 교육을 받았으며 또 구세군에서 엄선한 좋은 재료를 공급 받아 좋은 질의 뿡어빵, 풀빵 등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자릿세도 걱정할 일이 없다. 구세군에서 운영하는 사무실이나 빌딩 인근에서 빨강 마차를 운영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김 사무국장은 "현재 서울 지역에서만 빨강 마차가 운영되고 있지만 향후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되길 바란다"며 "빨강 마차와 함께 노숙자들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다시금 사회로 진출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