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38)

중국 원조의 그리스도교

본지는 한신대 이장식 명예교수의 교회 역사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교수는 얼마 전 본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예수는 평신도였고, 초대교회 예수 운동을 이끈 무리들 역시 평신도들이었다"며 교회사에 큰 기여를 한 무명의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을 조명했습니다. 앞으로 연재되는 글이 평신도들의 신앙 생활 함에 있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중국 원조의 그리스도교

몽고제국의 제4대 황제 망가가 사망한 후 쿠빌라이 칸(Kubilai Khan, 忽必烈, 재위 1260-1294)이 즉위하여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칸발리크(Kan-Balig, 北京)에 수도를 정하고 1272년에 원(元)나라를 세웠다. 쿠빌라이 자신의 종교는 라마(Lama)교였으므로 국교를 라마교로 정하고 티베트 출신의 불교 승려 마티(Mati)를 국사(國師)로 세우고 그에게 티베트 통치권까지 주었다.

쿠빌라이는 몽고 왕족들 중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많았으므로 그리스도교와도 좋은 관계를 갖기를 원하였다. 그의 원나라 영토 안에는 당대의 경교도 그리스도인들이 지하교회를 만들어서 신앙을 지킨 경우가 있었을 수도 있고, 중국 동북지방으로 흩어진 신도들이 칸발리크 지방에 살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다가 몽고제국에서 그리스도교 선교가 자유로워지고 교회와 수도원이 서게 되었을 때 중국 동북지방에 네스토리우스파의 동양교회의 선교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중세기 서양의 동양 여행자들이 쓴 여행기 중에 중국(Cathay)의 그리스도교 교회에 대한 기록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다 관광여행자들의 단편적 기록이다. 중국 그리스도교에 대한 공식적 기록은 중국인 수도사 사우마(Sawma)의 시리아어로 쓴 기록이다. 사우마는 칸발리크에 살았던 한 명문가 그리스도인 쉬반(Shinan)의 아들이다. 사우마는 20세 때 수도원에 들어가서 칸발리크의 동양교회 대주교 기와르기스(Giwargis)로부터 삭발을 받고 수도승이 되었다. 이 수도원에 다른 한 청년 마르코스(Marcos, 馬古思)가 들어와서 사우마와 친구가 되었다.

사우마와 마르코스가 예루살렘 성지순례의 길을 떠나서 도중에 카우상(Kawshang)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은 쿠빌라이 칸 즉 원나라 세조(世祖)가 주재하던 곳이었다. 쿠빌라이가 이 두 수도사의 성지순례를 알게 되어 그들을 접견하고 그들의 염원과 계획을 듣고 여비와 장비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서쪽으로 가는 길에 수도원들과 교회들이 있어서 필요한 물품들을 제공받았다. 도주으이 여러 도시를 지나서 드디어 이루칸 왕국을 세운 훌라구가 주재하던 마라가하시에 도착하였다. 훌라구는 쿠빌라이의 동생이었다. 사우마와 마르코스는 훌라구와도 만나서 후대를 받았다.

사우마와 마르코스는 1280년에 바그다드에 도착하여 그곳 동양교회 본부를 방문했는데 총대주교 덴하(Denha)가 마르코스를 카다이 곧 중국의 교회의 대주교로 임명하였다. 덴하는 마르코스에게 야발라하(Yahbu-Allaha)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후 덴하가 사망하자 교회 최고회의에서 마르코스 즉 야발라하를 바그다드 동양교회의 총대주교로 임명하였다. 그의 총대주교 임직식에는 24명의 대도시 주교들이 참석하였는데 그 중에는 예루살렘의 대주교 아브라함도 있었다.

이루칸 왕국의 이때의 왕 아르곤은 사우마를 로마 교황에게 특사로 보냈다. 사우마는 교황과 서방의 나라의 왕들과 만날 준비로서 많은 선물과 노자와 준마 30마리를 가지고 1287년에 바그다드를 떠났다. 그는 콘스탄티노플에 와서 황제 안드로니쿠스(Andronicus)의 환대를 받고 로마에 도착하였다.

이때 교황 호노리우스 4세가 서거하여 만나지 못하고 프랑스 파리에 가서 필립 4세 황제를 만나고 파리의 교회와 대학과 일반 문화시설을 둘러보고 그 다음에는 키소니아(Kisonia)에 가서 왕 알앙기타(Alanguita)를 만나서 환대를 받고 이루칸 왕의 친서와 선물을 전하였다. 그런데 그 왕은 영국의 왕 에드워드 1세였는데 그는 사우마에게 성찬식을 거행하도록 요청하고 사우마가 준 성찬 떡을 받아먹었다.

사우마는 새 교황 니콜라스의 즉위식에 참례하였고 교황은 사우마 일행을 부활절 때까지 머물게 하고 부활절 예배의식을 네스토리우스파 동양교회의 예배의식에 따라 거행하였다. 예배 용어는 달랐지만 의식은 로마교회와 동양교회의 의식이 비슷하였다. 사우마가 교황에게 동양교회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유물의 일부를 달라고 요구했더니 교황은 예수의 성의(聖衣)의 조각과 마리아의 면사포 일부와 성자들의 유물 일부를 주었고, 교황의 손가락에 끼고 있던 가락지를 빼서 주었다. 그 밖에도 여러 선물을 주었는데 교황의 이 같은 후대는 동양교회가 로마가톨릭교회와 유대관계를 맺은 것을 의미하였다. 네스토리우스파의 동양교회도 로마가톨릭교회와 같이 니케야 신앙고백을 믿고 있는데 다만 성모 마리아를 로마 교회는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반면 동양교회는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이 다를 뿐이다. 야곱파는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단성론자이지만 네스토리우스파는 신성과 인간성을 겸해 가지고 있다고 믿는 로마가톨릭교회와 일치하였다. 그러므로 로마가톨릭교회와 동양교회는 중요한 그리스도론에서 일치하였다.

사우나는 바그다드로 돌아와서 왕 아라곤에게 서방 순례와 방문을 보고하였다. 아라곤은 사우마와 총대주교 야발라하 3세가 오래 바그다드에 머물기를 원했으므로 야발라하 3세가 1317년에 죽을 때까지 바그다드에서 살았다. 이렇게 하여 원나라의 교회도 더 성장할 힘이 생겼고 서양 교회뿐 아니라 서양 나라들과의 유대도 더 두터워졌다.

이처럼 한동안 동양교회는 서양의 교회와 나라들과 친선을 도모하면서 원나라의 중국(Cathay)인 야발라하 3세가 동양교회의 마지막 총대주교가 되어 1281년에서 1317년까지 바그다드에서 교회를 다스렸다. 그리고 나서 이슬람이 페르샤를 통치하기 시작하였다.

수도원

네스토리우스파 동양교회는 많은 수도원을 세웠는데 9세기에 마르가(Marga)의 감독 토마스가 시리아어로 쓴 「The Book of Governors」라는 책은 수도원에 관한 기록이다. 이 책을 영국의 학자  Wallis Budge가 영역하였다.

토마스 자신이 수도사로 들어간 가장 유명한 곳은 베드아베(Beth-Abhe) 수도원인데 페르샤의 귀족들과 아랍의 상류가문 사람들이 금욕생활을 하던 곳이다. 이 수도원은 아르메니아, 쿠르티스탄, 바벨론, 아라비아 및 페르샤의 여러 나라의 먼 곳까지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네스토리우스파가 니스비스 근처의 산기슭에 세운 ‘위대한 수도원’(The Great Monastry)에서부터 많은 수도원들이 여러 곳으로 확장돼갔다. 650년경에 세워진 베드아베 수도원은 한때 300명의 수도사들이 있었다. 이 수도원들이 크고 웅장하였으므로 모슬렘 관청에서 175 파운드의 세금을 과세하였다. 수도원에는 교회당도 있어서 일반 신자들의 예배 장소가 되었다. 이처럼 네스토리우스파의 수도원은 이집트와 다른 지역의 수도원처럼 수도사만의 폐쇄적인 수도원이 아니었고 일반 신도들도 수도사와 비슷한 경건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수도원 교회당의 기도회는 일몰 기도회, 저녁 어두운 때, 심야, 새벽, 그리고 아침기도회 등이었다. 기도회 때는 신구약의 말씀을 읽고 찬송을 교창으로 불렀고 시편을 읽고 어떤 시편은 찬송으로 불렀다. 이 수도원에는 음악지식이 있는 수도사들이 많아서 찬송 부르기를 좋아했다.

수도원 내 도서관에는 책이 많아서 서가에서 누구나 수시로 빼어 볼 수 있었다. 성서를 해석한 책과 철학 주석과 신앙교양 서적들이 있었다. 가죽 표지로 된 책들도 있었지만 더 값짐 표지로 만든 책도 있었는데 그 중 「황금복음」(Golden Evangeliarium)이란 책은 황금으로 포장하여 보석과 함께 비치되어 있었다.

이 수도원의 계율은 첫째 정숙을 배우는 계율이다. 둘째는 금식이다. 마태복음 9:15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하라’. 셋째는 기도와 독서다. 누가복음 21:36 ‘항상 깨어서 기도하라’. 넷째는 말을 삼가고 온유한 말을 쓰고 침묵을 지키는 미덕이다. 예레미야애가 3:27, 28 ‘혼자 앉아서 잠잠하라’. 다섯째는 40일간 금식할 때는 금식하는 곳에서 밖으로 나가지 말라, 여섯째는 수도원장의 허가 없이 수도원 밖으로 외출하지 말라, 일곱째는 현재에 대한 불평, 거짓말, 비방을 하지 말 것, 여덟째는 주일날 교회에 와서 성서를 읽고 명상하면서 예배 시간을 기다리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세상 일을 가지고 이야기하지 말 것, 아홉째는 금식 중에 병고나 육체노동 이외의 이유로 금식을 단축시키지 말 것, 열 번째는 수도원 임소지원자는 3년 동안의 시험기간을 둘 것이다.

이상의 열 가지 수도원의 계율은 네스토리우스 교회 모든 수도원의 계율이었다. 이 수도원들은 다른 수도원들과는 달리 수도원 안에 교회당을 지어서 일반 신자들의 신앙지도를 하고 함께 주일예배 드리는 것이 특색인데, 박해를 받고 피해 다니는 신자들이 수도원에 와서 피신도 하고 예배도 드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였다. 수도원 원장의 명칭을 마(Mar)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교회의 감독의 명칭이다. 수도원장이 일반 신도들의 목회자도 된다는 말이다. 

남은 자들

사산왕조 때부터 박해를 받은 동양교회 신도들이 동부 쪽 산간벽지로 피난 가기도 하였고 단순한 피난이 아니고 선교의 목적으로 가기도 하였다. 이루칸 왕국의 말기에 그리스도인들이 박해 받다가 결국 이슬람 세계가 되어버린 후, 동양교회 교인들 중에 처음부터 네스토리우스주의를 견지한 신도들이 한 부족처럼 뭉쳐서 피난지로 떠나기도 하였다. 이들은 동양교회 흡수된 다른 성분의 신도들과는 달리 자신들을 ‘동양교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다. 페르샤 지방에는 야곱파 갈데아인 그리스도인이니 하는 명칭이 있었는데 갈데아인을 유니아테(Uniate)라고도 불렀다. 이들은 서양의 로마가톨릭교회와 유대를 가진 교파였다.

동양의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한 네스토리우스파 신도들은 이루칸 왕국과 바그다드의 패망 이후 중심지를 잃고 몇 군데 새 중심지를 만들었는데 쿠르디스탄 고산 벽지도 그 중 하나였다. 이들은 네스토리우스파의 남은 자들의 공동체를 만들어서 거기서 살아가게 되었다.

쿠르디스탄은 열왕기서에 나오는 고잔(Gozan)이라는 곳인데 사방이 높고 험준한 산악지대로서 외부와 차단되어 알렉산드리아 대왕도 점령을 포기한 곳이었다. 후대에 와서 이슬람 정권의 터어키 장군들도 이곳을 점령하지 못하였다. 이곳에 피난 온 네스토리우스파 그리스도인들은 작은 독립적인 나라를 만들고 스스로를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열 지파’라고 불렀다. 이 지역의 존재는 서양에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다가 19세기 초에 서양인들이 발견하면서 알려졌다.

이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을 ‘벤야 이스라엘’ 곧 이스라엘 자손이라 불렀고 네스토리우스파 그리스도인들 수천 명이 우르미아(Urmiah) 고원지대와 메데스(Medes) 마을에 흩어져 살았다. 그들은 극도로 가난하였고 주변의 쿠르드(Kurd)족과 같은 극히 사나운 족속들로부터 이따금 습격을 받아 가족과 가축을 잃고 부녀자들이 종으로 잡혀가는 일도 있었다. 반격하여 배가 넘는 배상을 받아오기도 했다. 이 고원지대의 기존의 족속들 중에는 네스토리우스족에게 흡수된 부족도 있었고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도 있었다. 이 유대인들은 한때 파르티아(Barthia, 바대) 왕국의 노예로 살았다고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가 기록하였다.

19세기에 미국과 영국의 선교사들이 선교하려 이 지방을 탐사하고 네스토리우스파 교회와 그들의 생활을 외부에 알렸다. 그들은 예수 당시 팔레스틴에서 쓰던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서 다른 지방의 유대인들의 말과는 달랐고 네스토리우스 부족도 같은 말을 사용하였다.

이 네스토리우스족의 ‘동양의 그리스도인’들은 니케야 신앙고백을 받아들였으나 성령은 성부에게서 나왔다고만 믿었고 성자에게서도 나왔다는 교리는 믿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두 성품이 불변하다고 믿었으며 성모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믿었다. 교회 안에는 어떤 형상도 없었으며, 모세의 의식 및 유대인의 습관과 비슷한 화목제 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속죄의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치병과 번영에 대한 감사로서 짐승의 피를 제단에 바쳤고, 모든 농작물과 가축 생산의 첫 열매를 바쳤고, 하나님께 서약하는 의식이 있어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처럼 자식을 하나님께 바치는 서약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안식일 엄수와 안식일 준비가 철저하여 토요일 해가 지기 3시간 전부터 안식일 준비를 하였다. 안식일 법을 어기는 신자는 처형하는 법을 지키다가 이제는 폐지하였다.

또 성전의 신성을 모독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며,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는 술이나 불결한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하며, 금식하고 기도를 드린 후에 성전에 들어가야 하고(미국 선교사가 성전에 바로 들어가려다가 저지 당했다), 자기들 교회가 자기들을 구해주었다고 고백하고, 네스토리우스족의 시체를 만지는 것은 불결하게 여기지 않지만 다른 사람의 시체에 손 댄 사람은 불결하게 여겨 결례를 받아 정결케 되도록 했다. 유아 세례는 생후 8일째 베풀었고, 할례는 세례로 대신했다.

성소 중앙에는 십자가 모양의 성물을 놓고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했고, 성소의 지성소 외 다른 곳은 예루살렘 성전의 예를 따라 이름을 붙여 불렀고, 돼지고기와 구약 레위기에서 금한 음식물을 금했고(최근에 와서 제한된 범위의 사람들에게만 허락), 매주 두 번 금식하고, 유대인의 유월절을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해석하여 양을 잡는 대신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유월절을 기념하고, 가톨릭교회의 연옥 교리를 믿지 않으며, 빵과 포도주가 성찬 때 그리스도의 진짜 살과 피가 된다는 화체설을 믿지 않아서 프로테스탄트 교리와 일치한다. 그리하여 네스토리우스파 교회를 ‘동양 프로테스탄트’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그리스도론도 현대 프로테스탄트 신학과 일치한다.

우르미야 지역의 네스토리우스파 동양교회의 존재가 서양 교계에 알려진 후 영국과 미국의 여러 선교단체가 그곳에 선교를 나가 그들을 여러가지로 도왔다. 그리고 많은 선교보고 서적이 발간되었고 그들도 많은 변화를 겪고 국제사회에서 정치적으로 혜택도 입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과 다른 나라로 이민하는 사람도 많아졌고 미국 시카고에는 네스토리안 교회사 생겼고, 이민자들끼리의 단합도 가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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