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39)

교회와 국가의 마찰

본지는 한신대 이장식 명예교수의 교회 역사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교수는 얼마 전 본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예수는 평신도였고, 초대교회 예수 운동을 이끈 무리들 역시 평신도들이었다"며 교회사에 큰 기여를 한 무명의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을 조명했습니다. 앞으로 연재되는 글이 평신도들의 신앙 생활 함에 있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제6장 교회와 국가의 마찰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하고 교회의 내정에 깊이 간여하여 니케야 신조와 같은 교리적이고 신학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그 신조의 최후적인 재가와 함께 불복하는 감독들을 처벌하는 일까지 하였다. 이것은 당시 교회가 그를 가이사 교황처럼 모셨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는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도나투스파가 정통교회를 상대로 심각한 논쟁 끝에 폭력으로 파괴 행위를 저질렀을 때 콘스탄티누스는 국가와 사회의 치안과 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부득이 군대의 힘으로 그들을 제압하였다.

이 논쟁과 사건을 겪으면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견해의 차이가 생겼는데, 도나투스파는 교회는 국가 밖에 있으며 황제는 교회 일에 간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반대편에서는 교회는 국가 안에 있으므로 국가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어거스틴은 410년에 야만족의 침략으로 로마가 함락하는 큰 비극으로 교회도 큰 타격을 받고 힘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도성」을 저술하면서 세상의 도성은 그 자체 정의가 없으므로 하나님의 도성의 정의를 빌려야만 제대로 존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것을 교회와 국가의 관계이론으로 해석한 교회 지도자들이 있었다. 밀라노의 유능한 감독 암브로즈는 영혼과 육신의 관계를 미루어서 교회가 국가보다 우위에 있으므로 황제는 교회 감독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아리우스 이단파를 지지하던 황제는 물론 정통교리를 믿던 황제까지도 대항하여 맞섰다.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크리소스톰은 비잔틴제국의 황후의 미움을 사서 살해되었다. 이러한 일들이 초대교회 시대에 동서 그리스도교 제국에서 있었던 교회와 국가 사이의 충돌이었다.

중세에 들어와서 샬망 대제가 프랑크족과 이태리인들의 황제로 추대되고 교황청과 유대 및 협력 관계를 수립했다. 황제는 이태리와 함께 교황청의 영지를 방어하는 동시에 교황청은 황제의 통치를 정신적, 도덕적으로 지원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샬망이 796년에 교황 리오 3세에게 보낸 서신에서 자기는 교회에 대하여 물질적 지원만이 아니고 가톨릭 신앙의 강화를 도모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밝힘으로써 ‘가이사 감독’적인 야심을 피력하였고, 그 후로 그의 교황청 보호는 교회에 대한 정치적 간섭으로 발전해갔다. 샬망은 교황과 고급 성직자들의 선거와 임명이 황제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하여 감시하거나 참견하려 하였다.

824년에 교황 파스칼리스(Paschalis) 1세가 교황청 안에 프랑크 정권 지지자 수 명을 살해하도록 획책한 일이 황제 로타르(Lothar)에게 알려져 로타르는 ‘로마 헌장’을 발표하고 전 로마인이 교황을 선출한다는 옛 관례를 회복시키고 바티칸 교황청을 황제와 교황이 공동 지배할 것을 천명하였다.

프랑크제국은 샬망 대제 이후 여러 지방으로 나뉘어져 분할통치 되다가 962년에 독일 출신의 왕 오토(Otto) 1세가 통치하게 되면서 ‘신성로마제국’이라고 정식 호칭되게 되었다. 오토의 이 새 제국에서 앞으로 일어날 교황과 황제 사이의 충돌은 황제나 지방 귀족, 즉 평신도가 교회의 감독이나 수도원 원장 등의 성직자를 임명하거나 면직시키는 일에 대한 교황청의 반발로 시작되었다.

중세기 유럽은 봉건주의 사회여서 귀족들이 큰 토지를 가진 영주들이었는데, 자기들의 영토 안에 사는 주민들과 교회와 수도원을 포함한 모든 기관이 영주의 권력에 속해있었다. 그리하여 교회와 수도원이 소유한 땅도 영주의 소유였고 교회와 수도원의 운영도 영주의 권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교회의 감독과 수도원장을 임명하거나 면직시키는 인사권을 왕과 영주들이 쥐고 있었고, 감독들과 수도원장들은 영주의 세속적 권력에 협력하여 교황과 수도원이 소유한 토지에 따른 세금을 영주에게 내고 자기들의 지위와 권한을 보장받으려 하였다. 영주가 감독을 선출하고 감독에게 가락지를 끼워주고 목자의 상징인 긴 지팡이를 주면서 파송하였다. 과거에는 이런 파송 의식을 교황이 관장하였다.

교황 니콜라스 2세는 1059년에 평신도들이 행사하는 성직자 서임권을 교황이 도로 찾기 위하여 교서를 발표하여 평신도의 성직 수여권을 금하고, 교황의 선출은 감독들이 추기경들의 의견을 참작하여 선출한 후에 시민들의 동의를 얻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감독들과 수도원장을 교황이 임명하여 교황청에 충성하게 하는 동시에 교황청에 납부할 헌금을 확보하려 한 것이다. 이러한 조치가 실시되면 감독들이 자기 감독구를 다른 감독에게 사사롭게 돈 받고 팔아넘기는 성직매매의 폐단이 없어질 것이었다. 감독들은 자기들의 교구에서 들어오는 수입을 챙기고 있었다.

하인리히 4세와 그레고리 7세의 충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가 임명한 독일의 교회 감독들과 수도원장들을 교황 그레고리 7세(재위 1073~1085)가 해임시켰다. 그레고리는 1075년 로마 회의에서 평신도의 성직 임명권을 금지하고 성직자의 결혼도 금지하기로 결의한 데 따른 것이었다. 하인리히 4세는 그레고리 7세의 처사에 반항하여 그레고리 7세가 파면한 감독들을 이태리의 교구로 파송하였다. 그레고리는 하인리히 4세를 파면하였다.

이에 하인리히 4세는 1076년 1월에 보름스(Worms)에서 회의를 열고 교황의 처사에 불만을 품은 감독들과 합세하여 교황을 규탄하는 결의문을 발표하였다. 하인리히는 예수가 칼 두 자루면 족하다고 말한 것은 그가 국가를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레고리는 하인리히를 위협하는 편지에서 말하기를, 로마 교황만이 감독을 파면시키거나 임명할 수 있다, 교황만이 새 법을 만들고 새 교구를 세우며 수도원 법도 교황이 만들게 되어있다, 교황만이 교황의 기장을 사용할 수 있고 모든 군주는 교황에게만 입맞추어야 한다, 교황의 선고는 아무도 무효화할 수 없고 교황만이 모든 사람의 선고를 무효화할 수 있다, 교황은 누구의 재판도 받을 수 없고 아무도 그를 정죄할 수 없다, 로마교회(교황)는 과오를 범한 적이 없고 또 성서가 말하는 대로 앞으로도 과오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하인리히 4세는 보름스 회의에서 발송한 편지에서 그레고리를 교황으로 인정하지 않고 신랄하게 폄하하였고, 그레고리는 그를 파문하는 동시에 그를 왕으로 받들지 못하게 국민에게 요청하였다. 교황으로부터 파문 받는 사람은 1년 내로 해벌되지 않는 경우 국가나 사회에서 어떠한 직업이나 지위에도 머물 수 없게 되어 있었으므로, 하인리히는 이러한 처사를 두려워하였다. 그의 정치적 적수들이 새 황제를 옹립하고 나올 경우 감당할 수 없는 정치적 곤경에 빠지게 될 것이었다.

하인리히는 할 수 없이 그레고리의 용서를 비는 길을 택하여 깊은 산 속에 있던 카노사(Canossa) 산성에 들어가 있던 교황을 찾아가게 되었다. 교황은 황제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이 산 속에 은거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인리히는 흰 눈이 두껍게 덮여 있던 카노나 산성의 성문에서 주야 3일 동안 맨발로 서서 교황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레고리는 성직자이므로 평신도가 뉘우치고 사죄하면 용서해야만 하기도 했지만 용서를 거절할 경우 하인리히의 반격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무튼 그레고리는 하인리히를 용서해주었다. 하인리히는 해방감보다는 승리감을 품고 하산하였으나 그의 정적들이 새 황제를 세우고 하인리히를 배척하여, 두 황제 사이에 치열한 정쟁이 시작되어 나라가 혼란에 빠져들어 갔다.

독일의 삭소니주 귀족들이 세운 새 황제와 하인리히 사이의 치열한 싸움에 그레고리가 개입했다. 그는 새 황제를 지지하고 하인리히의 후퇴를 종용하였으나 하인리히가 불복하자 그를 다시 1084년에 파문하였다. 하인리히는 분노하여 반격하기 시작하였고 삭소니주의 귀족들을 타도하였다. 그레고리는 로마의 한 산성에 숨어서 하인리히가 쳐들어올 것을 두려워하여 로버트 기스가드(Robert Guisgard)에게 원군을 요청하였다. 기스가드는 로마에 입성하여 두 황제를 모두 추방하고 그레고리는 살레노(Saleno)에 유배시켰는데 그는 비참하게 되어 이듬해에 거기서 죽었다.

그레고리의 사후에도 교회와 황제의 충돌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1222년에 ‘보름스의 합의’가 하인리히 5세와 교황 칼릭스투스(Calixtus) 사이에 만들어졌다. 그 합의의 요점은 독일에서는 감독과 수도원장은 황제의 임석 하에 교회법을 따라 선출한다는 것이었다. 감독에게 반지를 끼워주고 지팡이를 주는 것은 교회가 맡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태리에서의 성직 임명 때 황제의 임석에 관한 언급이 없다. 이 보름스 합의 후에도 교회와 황제 사이의 충돌이 없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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