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교황이 서한에서 강조한 것은 과연 '한국'일까?

[미디어비평] 국내언론 G20 교황서한 보도 ‘한국’ ‘최초 친서’ ‘이 대통령’ 강조

‘근본원인 유념, 인간 존엄과 공동선 달성’ 교황 진짜 강조점은 어디로?

국내 언론들 교황 친서 다시 읽어 봐야

이명박 대통령 '실용주의' 빛을 발할 시점은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지금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G20 정상회의의 의장국을 맡은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왔다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10일 오후에 보도자료를 보내왔다.

같은 보도자료를 받았을 국내의 각 언론에서도 관련 소식을 앞 다퉈 보도했고, 본지도 속보로 전달했다.

흔치 않은 교황의 친서이기에 보도하는 본지만큼이나 다른 언론사들도 흥미가 있으리라고 판단해 국내 언론사들의 뉴스를 한 자리에서 공짜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괘씸한(?) 대형 포털과 유명 검색 엔진 뉴스 카테고리에서 '교황'을 검색해봤다. 수식어가 붙은 구나 절 단위의 검색 보다는 짤막한 핵심 단어를 통한 최소한의 검색이 오히려 언론사들의 다양한 접근을 부각시켜 주리라 기대했다.

▲ 국내 대표 포털 사이트 N사의 '교황' 뉴스 검색 결과

▲ 세계적 검색엔진 G사의 '교황' 뉴스 검색 결과

그러나 막상 검색해보니 ‘하나도 다양하지 않았다’. '교황' 검색어로 엮인 N사와 G사 웹사이트의 각 25개 기사들, 총 50개의 기사들이 모두 '교황이 G20 앞둔 의장국 국가 원수에 보낸 최초의 서한(이는 청와대의 해석임)' '한국을 세계가 인정한 것', '세계 이목이 이 대통령에게 집중' 이 3가지로 요약이 됐다. 어떤 언론은 이 서한이 ‘친필 서한’이라는 점까지 부각시키기도 했다.

더구나 이 3가지는 1가지로 요약하기 편리한 내용적 연관성을 갖고 있다. 'G20과 관련해 교황이 최초로 친서를 전달한 이명박 대통령과 한국을 세계가 인정했다'는 것.

좀 더 거칠게 말해, 이 친서가 G20이 아닌 한국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내가 일반 독자였다면, 아마 이를 보며 '한국이 대단한 나라가 됐구나. 교황도 인정한'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라는 식으로 받은 인상을 묘사하는 걸로는 좀 모자란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해보자. '나는 분명히 기잔데, 수십 개의 기사가 모두 '저렇게' 말하니 내가 보도자료를 잘못 읽은 줄 알았다'고 말하는 편이 차라리 필자가 받은 진짜 인상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다.

실시간으로 보도하는 인터넷 언론까지 등장한 시대에 기사쓰기란 분과 초를 다투는 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진부하다는 사실쯤은 이제 넘치는 기사들을 보며 짜증을 낼 정도에 이른 독자들이 더 잘 알리라고 본다.

그래도 주제에 기자인 필자는 최소한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아무리 속보성 기사라도 보도에는 원칙이 있고, 짧은 시간만 주어지더라도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내용 파악은 최대한 정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이 얼마나 학교에서도 선배들을 통해서도 귀가 따갑게 들어 온 강조점인가.

이런 필자가 놀랄 정도였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필자도 분명히 주교회의에서 보내 온 교황의 친서를 꽤 자세히 읽어봤고 또한 내용 파악을 위해 짦은 시간이나마 이리저리 요약까지 해봤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저와 같은 제목이 나올 수가 없었다. 부제가 되면 모를까. 최소한 제목이 핵심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볼 경우라면 말이다.

교황이 과연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물론 다름 아닌 교황이 친서까지 보내왔으니 어떤 의미에서 보면 참으로 경사스러운 일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교황이 이례적으로 친서까지 보내 온 그 진짜 이유를 다루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을까? 과연 이 같은 판단이 세상 물정 모르는 어느 이름 없는 기자의 판단일까?

Y, M, K, T...뉴스, 일보 등 내로라하는 언론들에 얼마나 훌륭한 기자 분들이 많은지 필자도 잘 알고 있다. 그 분들이 썼는지 안 썼는지는 필자가 모를 일이지만, 이 나라 언론의 보도가 무엇을 염두에 둬야 하는지, 아니 현재 어디에 초점을 두고 있는지 필자는 새삼 생각하게 됐다.

오매불망 그리는 님인 정부와 대통령이 관심을 갖는 사안이라서? 한민족이 드디어 교황을 비롯한 주류 서방 세계로부터 인정받았다는 감격스런 사실을 전하고 싶어서? 그런 식의 보도가 이 나라에서는 잘 먹히니까?

'축하'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앞서야 할 것을 '먼저' 말하는 보도를 바로 국민들이 보고 있다는 점을, 그 점을 언론들이 되새겨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본지는 종교지, 정확하게 말해 기독교 언론이다. 필자가 출입하는 한 진보적 개신교 교단의 총회 실무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같은 (진보적인) 일들을 많이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총회 소식이 잘 전달되지 않는 지방 목회자들은 근처에서 돈까지 주면서 보라고 하는 (보수적) C일보를 쉽게 접해 보며 그 시각에 젖어있는 경우가 꽤 많다."

진보냐 보수냐를 말하며 나누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진보와 보수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상기한 것처럼 언론이 갖고 있는 시각을 독자들은 그대로 따라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그것도 완전히 상반되는 시각을 가진 목회자(목회자는 보통 대단히 뚜렷한 자기 생각을 갖고 있다)가 그 대척점에 있는 시각을 가진 언론을 자연스레 따르게 된다는 사례를 들어서 말이다.

이것이 언론이다. 그냥 지나칠 소식도 난무하고 일희일비도 유발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을 좌우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도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언론이다.

언론으로서 어떤 의미의 바른 말만 늘 꼬장꼬장하게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앞서나감'에는 어느 정도 모종의 사익도 교묘히 반영되어 있을 것이고, 포퓰리즘 같은 면모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언론이 특정 사안에 대해 이 같이 천편일률적인 보도를 하는 작태만큼은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안이 어떤 사안인가? G20 정상회의라는 중요한 자리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기구의 수장이 하는 조언이 아닌가? 그런 교황 말이니까 들어야하지 않겠냐는 것을 필자가 말하려는 게 아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가 왜 서한을 보냈으며 과연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분석은 차치하고 강조점이라도 제대로 밝혀 놓아야 할 일 아니겠는가?

교황은 분명 한국에 대한 높은 평가와 이 대통령에 대한 존경의 뜻을 서한에서 밝혔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그가 말하고자 했던 주요 요지 혹은 강조점이었을까?

교황은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경제적 재정적 위기의 '더 근본적인 원인'들을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인간 존엄과 공동선이 달성돼야 할 것이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 같은 가치들이 '한국'과 이 나라의 '위상', ‘이 대통령의 탁월함’ 그 자체보다 더 강조돼야 하지 않을까?

그러한 강조점들은 필자도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 그러나 그러한 강조점이 교황의 진짜 강조점 보다 뒤에 오는 겸손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사의 맞춤법이나 클릭 수에 대한 고려보다 이 점이야말로 기자의 마음에 무엇보다도 먼저 떠올라야 하지 않을까?

본지가 기독 언론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적 목소리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본지의 필자라도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보도는 해당 인물의 뜻 자체를 잘못 전달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부분적으로만 발췌 전달할 때 그 뜻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가 한국의 발전과 높아진 위상을 체감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는 한국도 교황 서한도 아닌, G20 서울 정상회의가 도출해내는 결론에 보다 관심을 집중할 것이다. 의장인 이명박 대통령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실용주의’가 빛을 발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제 G20 정상회의가 개막됐다. ‘G20 의장국인 한국이 세계 최고, 교황까지 관심 갖네’라는 식으로 목소리 높여 보도한 국내의 많은 언론들은 이제 한국이 진짜 세계 최고라는 점을 보도를 통해 입증해내야 할 것이다. 귀가 따갑게 들어왔고 또 스스로도 열심히 선전하며 강조해 온 언론의 제 역할을 다 하면서 말이다. 물론 어느 나라 정상은 어떤 방탄차를 탄다더라 이런 식의 기사를 생산해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아,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이참에 교황이 보낸 친서를 다시 한 번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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