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들이 칼바르트 신학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박종배 기자 |
하지만 한국교회에서 바르트는 논외 대상이며, 구시대의 낡은 신학으로 취급받고 있는 실정이다. 보수적인 장로교에서는 바르트를 잘 다루지 않고 있고, 바르트 신학에 대한 포럼이나 세미나도 찾아보기 힘들다. 서거한 지 40년이 지났지만 바르트 신학은 아직까지 한국교회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다. 고심하던 한국교회의 칼 바르트 전문가들이 18일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댔다.
이날 서울 한국기독교장로회 신학연구소에서 열린 칼바르트 서거 40주년 기념 세미나에는 정미현 스위스 미션21 의장, 이신건·오성현·황덕현 서울신대 교수, 이재천 신학연구소 소장, 최영 연구소 실장, 김창주 한신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한국인 신학자이자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지난 2006년 ‘칼 바르트 상’을 수상한 정미현 교수의 귀국에 맞춰 열린 세미나다. 주제는 ‘바르트 신학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한국교회’였다. 한국교회에서 바라보는 바르트 신학에 대한 시선을 진단하고, 대중화시킬 방안을 고심했다. 이날 논의된 내용들을 정리하여 소개한다.
◆한국교회에서 바르트 신학의 위상=바르트 신학은 장로교 안에서 거의 이단 취급을 받고 있다. 바르트를 언급하는 것은 소수 영역에서만 가능하고, 진보적인 에큐메니컬 진영 안의 전유물처럼 돼 버렸다. 미국에서는 오히려 보수 교계가 바르트 신학을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교는 제2의 칼 바르트 아카이브를 세워서 연구할 정도다. 제1의 아카이브는 스위스 바젤대학교 안에 있다.
◆바르트 신학의 명맥은 어디에서=한국교회 안에서 바르트 신학을 연구하는 곳은 기장, 성결교, 예장통합이다. 기장에서는 고 김재준 목사가 일본에서 바르트 신학을 공부했고, 고 박봉랑 박사가 한국에서는 최초로 바르트 신학을 소개하고, 가르쳐 친숙하다. 성결교에서는 서울신대에 바르트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5명이다. 웨슬리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1명)보다 많다. 예장통합에서는 김명용 교수가 바르트 신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장로교 전통에 막혀 잘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다. 많은 목회자들이 바르트를 자유주의 신학자로 오해하고 있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 할 수 있다.
◆바르트 신학 연구의 어려움=바르트 신학에 대한 원문을 접할 수 있는 길이 많지 않으며, 인력과 재정적 지원이 부족해 연구의 활성화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한국교회에 바르트 신학을 보급하기 위해선 먼저 원문을 번역하고, 책을 집필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특히나 바르트의 방대하고 난해한 원문을 번역하는 작업은 꽤 긴 시간과 인적 자원이 요구된다.
◆바르트 효과 기대=한국교회에 바르트 신학을 잘만 보급한다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장측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바르트의 ‘화해론’을 소개했는데 굉장히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교회를 살리는 신학으로서 바르트 신학은 어떤 것이 있으며, 한국교회에 접목할 수 있는 점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자세히 소개해 주고, 이를 가르친다면 한국교회가 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바르트 신학의 신중심지=한국이 바르트 신학의 신중심지가 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다. 미국과 유럽에 비해 한국은 바르트 신학에 대한 이해가 협소하지만 환경적인 자산이 크고, 신학도 성숙해 있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와 전쟁, 분단을 겪으면서 제3세계 국가의 아픔을 이해하고, 미국과 유럽에서 일어나는 자본주의의 폐해도 겪으면서 진보와 보수로 갈려 있는 바르트 신학의 양측을 아우를 수 있다고 전망한다.
◆성결교가 한국의 바르트 신학을 부흥 시킬까=보수와 에큐메니컬이 적절히 조화돼 있는 성결교에서는 바르트 신학이 자주 언급됐고, 이단 시 된 적이 없다. 때문에 성결교의 서울신대가 바르트 신학의 새로운 메카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있다. 독일에서 위르겐 몰트만의 제자로서 직접 바르트 신학에 대해 가르침을 받은 이신건 교수는 “바르트 신학을 대중화 시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칼빈과 바르트의 접목=바르트 신학의 근원지인 유럽에서는 칼빈과 바르트를 연결시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바르트를 통해 칼빈을 새롭게 조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칼빈과 바르트의 신학은 전혀 별개의 것으로 논의되고 있다. 정미현 교수는 “내년은 칼빈 5백주년이다. 이를 기념해서 칼빈과 바르트를 연결시켜 바르트의 신학을 새롭게 조망해 보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