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학제간 연구 통한 녹색신학서 지구생명공동체 비전 찾다

에코페미니스트 전현식 교수 ‘에콜로지와 신학’ 강연

▲강연과 논찬을 마친 (왼쪽부터)논찬자 구미정 교수(숭실대 기독교학과), 강연자 전현식 교수(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소장, 연세대 조직신학), 사회자 김선정 교수(연세대 학부대학) 등이 어느 참석자의 질문을 유심히 듣고 있다. ⓒ김진한 기자

"솔직히 여성들로부터는 진정성을 의심받고, 남성들로부터는 배신자라는 소릴 들었어요. 제 자신도 이 길 말고 다른 길은 없을까 고민도 많이 하고, 실제로 그런 길을 찾기도 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더군요. 이 길만이 유일했습니다."

"어째서 에코페미니즘에 ‘귀의’하게 되었느냐"는 논찬자의 질문에 한 남성 신학자가 답했다. 질문을 던진 여성신학자이자 에코페미니스트인 논찬자 구미정 교수(숭실대)가 "낯설고 이질적인 것들을 끊임없이 차별하고 배제해온 ‘동일성의 정치’(politics of identity)가 판치는 학계와 교계에서 이 남성 신학자의 선택은 어찌 보면 ‘위험한’ 것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인간중심, 남성중심, 영혼중심, 초월중심의 정통 신학의 패러다임 속에 있던 사람이 지구중심, 여성중심, 몸중심, 내재중심의 에코페미니스트 신학으로 넘어가는 ‘사건’은 쉽지 않은 일일터, 답을 한 남성 신학자의 대답은 사뭇 진지했다.

지난 25일 오후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서 열린 생태세미나 마지막 강연자로 나선 전현식 교수(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소장)는 이날 ‘에콜로지와 신학’이란 주제로 강연하며 에코페미니스트 신학이 지구적 생태 위기를 극복해 나가기 위한 인류의 새 패러다임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남성신학자이면서 에코페미니스트인 전 교수는 에코페미니즘을 가리켜 "다양한 지배형태, 특히 여성억압과 자연착취의 상호 연결을 분석하는 비판담론인 동시에 이런 지배관계를 상호관계로 치유하기 위하여 지구생명공동체의 대안적 비전을 제시하는 구원담론"이라고 설명했다.

또 "구원담론으로서의 에코페미니즘은 전통적 기독교신학이 모든 인간의 경험과 가치를 반영하는 보편적 신학이라고 주장해 왔지만 사실은 여성의 경험과 가치가 배제된 남성중심의 신학이었음을 지적한다"며 "지금까지 서구 기독교 신학의 여러 주제들 안에 드러난 여성의 침묵과 부재를 밝히면서 남성과 여성의 구원 뿐만 아니라 창조셰계전체의 구원을 반영할 수 있는 기독교 신학의 재구성을 요청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어원상 생태학(ecology)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경제학(economy)에 대한 전 교수의 영적 통찰력은 빛났다. 그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지구화 경제체제의 본성인 ‘기업세계화’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며 "가부장적 근본주의는 여성신분을 약화시키며 메시아적 국가주의는 미국식 민주주의(시장자유)를 세계에 이식하려는 메시아적 임무를 방해하는 모든 악의 세력을 군사적 힘으로 정복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이어 에코페미니즘에 근거한 녹색신학이 방법론, 창조론, 인간론, 기독론, 교회론, 구원론, 종말론의 생태여성학적 재구성을 통해 여성, 자연, 약자에 대한 지배관계를 모든 생명의 상생관계로 치유할 수 있는 구원의 비전과 영성을 제시했다.

그는 ▲하나님의 ‘선한창조’를 믿고 ‘충만한 삶’의 의미를 새로이 되새기는 것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을 도구적 관점 내지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만물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하는 것 ▲하나님께서 피조물 중의 한 종인 인간, 그것도 남성, 그것도 백인, 그것도 엘리트만 사랑하신다는 사이비 복음에 의심을 품으며 ‘저항의 영성’을 살아내는 것 ▲저항의 영성의 한 표현으로써 자연세계에 대해 ‘청지기적 책임’을 실천하는 것 등을 설명하며 녹색영성이 우리의 삶에 던져주는 실천적인 메시지를 전해줬다.

"인간이 지구 생명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는 충분한 과학적 기술과 힘이 있음을 상기할 때, 창조세계를 양육하고 돌보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청지기적 책임의 역할은 그 어느때 보다 중요하다"고 말한 전 교수는 끝으로 참석자들을 향해 신앙적 결단을 요구했다. 하나님의 마지막 부르심에 책임적으로 응답하느냐 파괴적 삶을 지속하느냐 양단 간에 결정을 내리라는 것이었다.

▲강연이 끝난 뒤 질문하는 한 참석자. ⓒ김진한 기자

강연과 논평이 끝나자 참석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 중에서도 어느 참석자의 ‘생태 정의’에 관한 물음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이 참석자는 "온실가스 배출 기준 등으로 선진과 개발도상국 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며 "개발의 수혜를 입은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에 온실 가스 감축을 강요하고 있는 반면, 개발도상국들은 개발 논리를 앞세워 선진국들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 않느냐? 개발 문제에 있어 정의란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생태 정의에 관한 문제"라고 답한 전 교수는 "무엇보다 개발이라는 것이 어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지를 주시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생태 정의는 ‘빈부격차 해소’가 그 열쇠를 쥐고 있다"며 "어떠한 개발이든 그것이 부한 자를 부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면 그것은 생태 정의라 볼 수 없고,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결과를 가져올 때라야 생태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보는게 알맞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날 전 교수의 강연을 끝으로 지난달 28일부터 총 5차례(과학, 경제학, 심리학, 여성학, 신학)에 걸쳐 강행군을 한 기문연의 2학기 연속강좌  ‘대학, 생태를 말하다: 에콜로지와 학문의 새 패러다임: 학제간 연구를 향하여’가 막을 내렸다.

이번 강좌는 에콜로지를 신학 뿐 아니라 과학, 경제학, 심리학, 여성학 등에 접목해 학제 간 연구를 발전시키고, 동시에 생태적 사고에 근거한 학문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촉구했다는 면에서 신학자들은 물론, 타 분야 학자들로부터도 호평을 얻었다.

강좌를 성공적으로 마친 전현식 기문연 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학제 간 연구가 갖는 의미를 되짚었다. 그는 먼저 "종교적 경험이 주관적, 고백적 상징적이라면 과학적 지식은 객관적, 보편적, 사실적"이라며 "초월의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에게 어떻게 알려질 수 있는가라는 신학의 인식론적 질문과 주장은 유한한 실재들에 대해 연구하는 다른 학문들(과학, 경제학, 심리학 및 여성학)과 어떤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동시에 매우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런데 이런 주관과 객관, 가치와 사실의 영역은 이원론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연결되어 있다"며 "따라서 모든 학문이 자기 학문과 타학문의 인식론적 구조를 잘 이해하고 존중한다면 학문들 간의 대화 및 소통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녹색신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녹색신학은 신학의 컨텍스트를 개인적, 사회적 차원을 넘어 생태적 차원으로 확장시켜 개인구원, 사회구원을 넘어 창조세계를 치유하기 위해 성서와 전통으로부터 하나님의 창조적, 구원적, 변혁적 사랑의 상징적 의미를 발견해 기독교적 상징(교리)들을 녹색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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