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붓 놀림속에서 창조 세계와 복음의 실존을 깨닫다”

풍류신학자 소금(素琴) 유동식 박사 인터뷰

 ▲풍류신학자 유동식 박사를 그의 전시회에서 만났다. 하나님을 최초의, 최대의 예술가라고 표현한 유 박사는 인간 존재 이유를 아름다움의 드러냄에서 찾았다. ⓒ김진한 기자
붓 끝에서 복음의 실존을 깨닫는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지난 3일 어느 전시회에서 만난 한 원로 신학자는 감히 "그렇다"고 답했고, 오가는 대화 속에 반신반의(半信半疑)하고 있는 기자의 고개를 끄덕이게까지 했다.

풍류신학으로 이름을 떨친 신학자 소금(素琴) 유동식 박사(연세대 명예교수). 그가 오랜 세월 교편을 잡은 학원에 평생 공들인 작품들을 무상으로 기증했다. 작품은 스케치북에 그린 <나그네 수첩>을 비롯해 민족과 개인사를 담은 <역사와 사람>, 도상과 관상화 작품들을 모은 <신학과 예술의 만남>, 4방의 세계를 표현한 <동·서·남·북>, 풍경을 그린 <한국의 바람과 빛> 등으로 분류됐다.

라틴 문화가 틀이 되어 복음을 수용한 것이 서방교회 흐름이었다면 비잔틴 문화가 틀이 되어 복음을 수용한 것이 동방정교회의 전개였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아시아교회의 정체성은 라틴도 비잔틴도 아닌 아시아 문화를 바탕으로 형성되어야 한다는게 유 박사의 생각이었다.

아시아 문화의 실체로 기성 종교들인 유교·불교·도교를 연구하던 끝에 유 박사는 이 삼교의 종지를 모두 포함해 한국인의 영성을 천명한 신라의 석학 최치원의 ‘풍류도’와 신학의 접목을 시도, 한국적 신학인 ‘풍류신학’을 창안하기에 이른다. ‘풍류도’를 멋으로 개념화 한 그는 이때부터 예술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유 박사에 따르면, ‘풍류도’란 "풍류"라는 말이 뜻하는 예술적 개념과 "도"가 뜻하는 종교적 개념의 합성어다. 말하자면, ‘풍류도’란 종교-예술적 영성이라는 것이다.

예술에 눈 뜬 신학자가 화폭에 담은 첫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대자연이었다. 전시장에도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풍경화들이 여타 그림들에 비해 그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 풍경화가 많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것을 보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곧 아름답다고 말씀하셨다. 엿새에 걸쳐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되 하루가 지날 때마다 그가 창조하신 것을 보시고 아름답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특히 마지막 날에는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신 다음 "그가 창조하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다.(창1: 31) 하나님이 천지창조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를 미(美)로 표현하셨다는 말이다.

최초의, 최대의 예술가이신 하나님이 만든 이 아름다운 세계를 함께 보고 듣고 느끼고 또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 인간 존재의 이유가 아닌 듯 싶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존재양식은 그의 삶을 통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예술가가 되는 데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는 일도 그런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 태극 무늬의 그림들이 눈에 띈다.

“이것은 내 신학적 관상화이다. 종교적 신앙의 내용을 시각적인 그림으로써 표현한 것을 종교화라고 한다면, 그 전형적인 것이 동방교회의 이콘(Icon)과 밀교의 만다라(Mandala)일 것이다.

이콘에서 초월적인 하나님의 세계와 이 세상이 만나게 된다. 가시적인 육의 세계와 초월적인 영의 세계는 둘이면서 하나를 이루는 것이며 또한 하나이면서 둘인 것이다. 동방교회에서 이 이콘은 예술작품으로서의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기도와 관상(觀想)의 대상이다.

만다라는 모든 수행자들의 명상의 대상이요, 자신이 그 대상에 몰입함으로써 성속일치의 득도체험을 하게 된다. 만다라 역시 이콘과 마찬가지로 예술적 감상용이 아니라 종교적 관상의 대상이다.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신학적 내용을 한 폭에 그림에 압축적으로 전달하고자 신학적 관상화를 시도한 것이다.”

- 관상화 ‘복음계 만다라’(2008년도 作)에 눈길이 끌린다. 청색, 홍색, 황색으로 이뤄진 삼태극은 뭘 상징하는가.

“나는 복음적 실존을 3원색에 의한 3태극으로써 표현한다. 3원색은 모든 색깔의 원천이며, 그 창조적 배합으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세계를 창출한다.

청은 하늘과 함께 하나님을 상징하고, 홍은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며 황은 인간을 상징한다. 그뿐 아니라, 영혼과 이성과 감성을 상징할 수도 있고, 자유와 평화와 사랑의 삼현덕(三玄德)을 상징할수도 있다. 이러한 3원색의 3태극적 조화를 통해 하나님의 뜻인 아름다움의 세계가 전개되어 나가는 것이다.”

▲유동식 박사가 자신의 신학적 관상화 <장미와 연꽃 그리고 무궁화>(2009년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진한 기자

- 복음의 삼태극을 뒷받침하는 성서적 텍스트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목전에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또 너희들도 살아있겠기 때문이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는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들 안에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4:19.20)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성취하신 인류 구원의 실상은 그리스도를 매개로 하나님과 인간이 또한 상호 내재하는 삼태극적 관계구조의 형성에 있다. 이제 인간은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 안에 사는 새로운 존재가 된 것이다. 이것이 구원의 복음이다.

그리스도를 모심으로써 하나님 안에 살게 된 그리스도인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상은 하나님의 뜻인 아름다움을 창조적으로 실현하는 데 있다. 이것이 복음의 실존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 이 관상화들의 사상의 뿌리라 할 수 있는 풍류신학의 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풍류도의 양상을 포합삼교(包合三敎)한다고 했다. 이것은 포월적인 종교성을 말하는 것이며 나는 이것을 우리말로 "한"이라고 한다. "한"은 하나이면서 전체를 뜻하는 우리 특유의 종교적 개념이다.

이러한 "한 멋"을 지닌 인격의 "삶"을 추구해 온 것이 한국인의 문화사이다 이 "한 멋진 삶"이라는 풍류도가 해석의 틀이 되어 불교와 유교를 수용함으로써 우리의 문화사를 전개해 왔다. 그리고 이제는 기독교의 복음을 수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우리의 영성인 풍류도를 복음 해석과 수용의 틀로 함으로써 우리 교회가 단순한 서방 교회의 연장선상에 있는 모방교회가 아니라, 서방교회에서 배우면서 동시에 우주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음의 계시를 우리의 영적 틀에 의해 수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풍류신학이다. 앞으로 풍류신학은 아시아 제 3교회 형성을 위한 아시아 신학으로도 발돋움 할 수 있을 것이다.”

- 평생의 작품들을 연세대 신과대에 기증했다고 들었다. 어려운 결정이었을텐데...

“일부는 장학금으로, 일부는 신과대에서 보관한다고 들었다. 후학들 양성에 쓴다는데 아까울게 뭐가 있겠는가.”

팔십을 훌쩍 넘긴 이 노(老) 신학자는 여전히 그림 그리기에 열중해 곧 잘 화인삼매(畵人三昧)에 빠진다고 했다. 신학이 신앙 체험을 전제하듯 그에게 풍류신학은 예술 체험을 전제하기 때문이었고, 또 한편으로 풍류도와 복음과 아름다움이 삼태극을 이뤄 그의 생각을 지배하는 까닭이기도 했다.

유동식 박사는 그저 바람과 빛, 화판과 오가는 붓놀림 속에서 전체를 지배하는 '아름다움' 자체를 느끼며 ‘나’가 사라진 무아(無我)의 세계에서 영원과 하나가 되는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고 있었고, 그런 색다른 신앙 체험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그의 작품을 통해 초대장을 보내고 있었다.

한편, 지난 1일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소금 유동식 박사 작품 전시회는 10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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