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목자의 바보스러움과 ‘거룩한 분노’
김수환추기경은 격동하던 광기의 시대인 한국의 20세기 후반기에 지도력을 발휘하셨던, 본래적 의미에서 한국사회의 유일한 ‘목자’였다는 김형석교수의 총체적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목자’는 ‘신부’나 ‘목사’와도 다르고 예언자나 고승과도 다르다. 같은 시대에 종교사상계만을 두고 볼지라도 타계하신 불교계의 성철스님, 개신교계 강원룡목사, 재야의 함석헌선생이 대중에게 잘 알려진 정신적 지도자였지만, 김추기경만이 ‘목자상’을 지닌 지도자였다. 예수의 선한목자비유(요한복음 10:7-18)에서 언급한 목자의 특징은 네가지다. 첫째,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분별하여 알고 따른다. 둘째, 선한 목자는 위기가 닥칠 때 양들을 위하여 자기목숨을 버린다. 셋째, 양우리에서 자기가 돌보는 양들이 드나드는 안전한 문이다. 넷째, 우리에 속하지않는 다른 양들도 항상 생각한다.
김추기경이 선종했을 때, 추운 겨울거리에서 명동성당 빈소에 조의를 표하려고 길게 줄서서 오랜시간을 침묵 속에서 기다리는 보통사람들 속에서 나는 강하게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민중이 그를 사랑하는 참 이유는 두가지였다고 느껴졌다. 첫째는 우리사회가 겪어야만 했던 산업화와 민주화의 몸부림 속에서 영악하고 힘 있어야 사람대접받는 ‘동물적 정글의 왕국’에서 ‘사람다움’을 포기하고 출세성공하라는 세상의 풍조를 역류하여 “바보스러워도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고 몸으로 보여주신 ‘목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끝없는 줄을 지어 기다리고 추모했다. 영악스러움과 표독스러움이 각자의 인간성을 옥죄어오던 광기의 시대에, 바보스러움의 질박한 그분의 인간품성이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둘째, ‘전체사회와 국가발전’의 이름으로 양심 ․ 정의 ․ 약자인권 따위는 무시하고 소홀히 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 ‘거룩한 분노’를 발할 줄 아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으셨던 추기경이 존경스러워서 모인 것이다. 그 지도자의 ‘거룩한 분노’ 속에서는 비판하는 대상들에 대한 증오나 폭력이 느껴지지 않았고, 함께 회개하고 살려내자는 대동정신이 늘 살아있었기 때문에, 정파나 종파나 사회계층을 넘어선 조문행렬이 이어졌던 것이다.
한마디로 김추기경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유산은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선진화 등등 그 무슨 국가사회목표나 사회의 공동목표일지라도 “사람답게 사는 것, 사람답게 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 삼아서는 않된다는 가르침 곧 ‘인간존엄성과 삶의 질’을 2차적으로 삼아서는 않된다는 가르침이다. “산업화 ․ 민주화는 인간화의 형식이고, 인간화는 그것들의 실체이다”라고 명제화 할 수 있겠다.
민주화는 미완성단계이며 시민사회 출현은 산고의 진통중
우리사회가 직면한 시대적 상황규정을 민주화의 단계를 넘어서서 건강한 시민사회 형성단계로 파악하고, 시민사회의 ‘시민성’(civility)형성에 김추기경의 지도력의 면모와 그 분이 보여준 지혜를 되새김하자는 김우선 교수의 주제발표에 기본적으로 동감을 표하고 싶다. 그런데 두가지 점에서 토론자는 맘에 걸리는 점이 있다.
첫째, 1987년 소위말하는 시민민주주의 쟁취의 날 이후, 22년이 지난 지금 과연 한국 사회는 명실공히 ‘민주화된 사회’인가라는 물음이다. 둘째,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현실적 힘의 집단으로서 정치권력(국가권력), 시장권력(경재권력), 문화권력, 그리고 형성중인 시민권력(NGO권력)중에서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을 생산적으로 견제하고 창조적으로 선도해야할 책임을 지닌 문화권력의 무책임한 책임방기와 타락상에 대하여 비판적 분석이 미흡한 점이다. 문화권력의 3대구성 핵심집단은 언론, 대학지성, 그리고 종교이다, 문화권력이 정치권력에 아부하고, 시장권력에 매수당하여 오늘 한국사회가 이렇게 고통과 갈등을 겪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해서는 않된다고 본다.
국가의 번영은 국민들의 불행과 병행하여 커갈 수 있으며(칸트, 함석헌), ‘기업지배사회’(corpocracy)' 지배자로서 변신한 대기업의 번영은 매우 역설스럽게도 국민의 삶의 질과 인간격을 황폐화시키는 역기능을 동반한다. 기업규모나 산업체간의 양극화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시장권력 곧 기업의 기본철학 곧 무한경쟁, 적자생존, 능률지상, 맘몬숭배적 ‘기업의 실재관,가치관’이 삶의 전 영역을 오염시켜 간다는 점이다. 경제와 정치영역은 말 할 것도 없고, 그 현실을 교정하고 조정하고 창조적으로 승화시킬 사명을 지닌 문화영역 특히 언론․교육․종교 영역이 맘몬숭배로 타락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맘몬숭배는 고대종교사회에서 ‘황금송아지’로 상징되는데 ‘힘과 부’의 상징이며 현실사회 속에서 정치권력과 재벌권력의 통합적 혹은 야합적 표상이다.
김우선 교수가 지적한대로, ‘시민성’의 필수불가결한 공공성의 덕목으로서 다양성, 비폭력, 관용성, 포용성, 약자보호등이 중요함을 강조하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한 시민사회의 산파역을 김수환추기경이 보여준 선구자적 혜안과 지도력에 우리관심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 점 동의한다. 그런데 문제를 다시한번 원점에서 스스로 우리에게 묻는다. 한국사회가 많은 시행착오와 민중들의 희생을 ‘역사라는 밭의 퇴비’로 삼아 민주화가 완료되었다면, 왜 보다 바람직한 ‘시민사회’의 출현이 지연되고 있는가?
문제의 초점은 ‘민주화’가 달성되었다고 속단하거나 당연시하는 우리사회 역사의식 특히 지배계층의 현실파악에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 언론이 통제되거나 권력과 금력에 영향받아 진정한 국민의 ‘눈과 귀’가 되거나 ‘진실의 목탁’이 되지 못한 현실이 민주화된 사회인가?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표현의지유가 아직도 안보논리로 제한되는 사회가 민주화된 사회인가? 사법권이 대재벌의 비리나 정치거물들에게는 관대하고 힘없는 서민들에게는 단호하다고 느껴지는 국민정서가 대세를 이루는 사회가 과연 ‘민주화’된 사회인가? 국민여론의 70%가 ‘4대강사업’의 재고 및 협의추진을 요청하는데, 대통령의 국정신념이라고 강행하는 사회가 민주화된 사회인가? 우리사회는 아직도 ‘민주화’ 진행중이며, ‘시민사회’의 출현은 ‘산고의 진통중’ 임을 직시하고 싶은 것이다.
제2차바티칸 공의회 정신의 구현자 김추기경과 한국 보수적 개신교
김추기경의 리더쉽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가 교회안의 관계에서는 제2차바티칸 공의회(1962-65) 정신의 실현의 요청상황이었고, 교회밖의 맥락에서는 개발독재시대를 겪어온 시대의 민주화와 인권투쟁이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정신과 그 역사적 의미, 그리고 그 정신의 한국사회 속에서 구체적 실현이 김추기경의 신앙적 확신과 노력없이 관연 한국 가톨릭교회나 종교계 일반에 확산 되었을가 새삼스러게 되묻게된다. ‘공의회’의 놀라운 쇄신과 개방성의 정신이 여러 측면에서 있지만, 일반사회관련에서 이웃종교에 대한 기본태도 곧 ‘관용, 수용, 대화, 상호배움, 상호 협력’의 정신은 한국같은 종교다원사회 에서 특히 중요했다. 종교간 갈등대립의 가능성을 지닌 한국사회에서 김추기경과 강원룡목사를 비롯한 한국 불교계, 유교계, 천도교계, 원불교계 지도자들의 화해 협력정신은 우리사회의 안정에 큰 공헌을 하였고, 그 과정에서 대화문화아카데미(크리스챠챤아카데미‘와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의 공헌은 기억할 만한 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제2차바티칸 공의회는 20세기 후반기에 일어난 인류사적 사건중에 중요한 하나의 계기였다. 이러한 시대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한국 가톨릭교계와 한국종교계에 전달하고 구현한 공헌자가 김추기경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종파적 울타리를 넘어서, 종교의 유무를 넘어서 모든 한국님이 그 ‘공의회정신’을 환영하고 찬사와 격려를 보냈다.
세계상황과 한국종교계 및 지성인 사회가 이렇게 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유 유감스럽게도 한국 개신교 일부 보수적 기독교지도자들과 그들에게 잘못교육된 신도들은 종교적 불협화음, 갈등, 이웃종교 폄훼, 상식이하의 광신적 교조적 행위를 지금도 서슴치 않는다. 국가 통계청의 종교인구조사 통계자료에 의하면(한국의 사회지표, 통계청 2006), 한국 국민총수중 종교인은 53.1%이며, 그 종교인중 개신교는 34.5%(약 8,848000 명)이다. 한국 개신교도중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반대하거나 타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독선적이고 독단적 태도를 취하는 개신교도 인구중 과반수를 약 500만명이라고 추산 할 때, 한국 개신교는 심각한 문제집단으로 한국사회에 인식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은 한국사회가 성숙한 시민사회로 진입하는데 큰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개신교의 미래발전을 위해서도 백해무익한 일이다. 개신교의 교파중심적 교회조직과 개교회주의가 이러한 ‘개신교의 무지한 비관용성과 종교광신적 독단성’ 치유에 비효과적이고 걸림돌이 되고 있지만, 김수환추기경의 종교적 정신을 깊이 음미해야 할 최우선적 사회집단은 한국 개신교 보수집단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한국의 보편적 집단지성은 이러한 ‘종교심성 이하’의 반윤리적, 반사회적, 반상식적 행동을 ‘종교의 자유, 선교의 자유’라는 미명아래 발호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않되며 엄중한 질타와 견제가 요청된다고 생각한다. 성전정화(聖殿淨化)를 위해 회초리를 든 예수의 ‘거룩한 분노’의 정신이 요청된다.
출처: 숨밭 김경재의 신학아키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