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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식] 몸살의 신학적 의미

길위의 신학


출처 : 차정식의 신약성서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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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째 혼곤하게 앓았다. 오한이 나고 몸이 지옥의 심연으로 가라앉는 듯 까마득한 감각의 사각지대를 통과해야 했다. 맨 처음 깔깔한 후두부의 이상증세로 시작된 몸살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2월의 환절기를 겨냥했다. 매년 이 맘 때면 거의 예외 없이 찾아드는 이 몸살의 증세는 아무리 그 상황 연계적 특수성을 분석해도 그 규칙성이 신기할 정도이다.

이번에도 사정은 있었다. 일주간 두 나라를 연속 여행하면서 빠듯한 일정을 보냈고 잘 정돈되었던 일상의 리듬이 이완되면서 낯선 외지의 분위기에 들떠 나사가 좀 풀린 탓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일주간의 노동 공백을 메우며 밀린 일을 부랴부랴 처리하느라 또 다른 일주간의 과도한 노동을 감당해야 했기에 무리가 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초기증세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찾은 동네 이비인후과 의사는 몸살은 초기에 약을 써도 잘 안 잡힌다며 약간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땀이 많이, 자주 났다. 열은 별로 없었는데 몸의 전체가 기묘한 통증으로 쑤셔댔다. 가래가 많이 들끓진 않았지만 목구멍 언저리가 불편했고 무엇보다 콧물이 빗물처럼 줄줄 흘러내렸다. 억센 재채기 한 번이면 콧구멍은 홍수가 나듯 물을 토해냈다. 수많은 화장지를 낭비하고 서너 개의 손수건이 축축이 젖을 정도로 이번 몸살에서 콧물의 득세는 뚜렷했다. 심야의 기침은 한 이틀간 불면의 시간을 만들었는데 누운 자세를 바꾸어 앉은 포즈로 지친 몸을 달래야 했다.

이 당혹스런 환경에 몸은 부산하게 대응해나갔다. 뜨거운 물을 마시고 동물적인 본능으로 따뜻한 국물과 함께 밥도 억척스레 먹어댔다. 감기몸살은 잘 먹어야 금세 넘어간다는 주변의 말이 무의식적으로 각인되어 즉각적인 순발력을 발휘한 셈이었다. 한 지인과 잡아둔 내장산 등산 계획은 아쉽게 며칠 뒤로 연기해야 했다. 그 와중에도 내 전투력은 기죽지 않았는지 나는 컴퓨터 앞에서 해야 할 일을 줄기차게 처리해나갔다. 연구 프로포즐을 세 건이나 완성하여 신청하였고, 회의 자리에 나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으며, 바지런히 인터넷 신문을 읽으면서 이메일 답신도 하고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에 나지막하게 대꾸했다. 아비의 고통에 아랑곳없이 난장판을 치는 아이들의 장난에도 종종 간섭하며 최대한 짧고 굵게 잔소리를 해댔다.

그렇게 몸살과 치고받으면서 대치한 지 나흘째, 콧물은 그치고 목구멍의 형편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이틀 전 따스한 대낮에는 여유 있게 아중천변을 따라 봄 햇살을 쐬며 산보도 했다. 몸살 후유증으로 몸의 몇 군데가 다시 결리고 쑤셔대며 기력이 쇠해진 것은 분명한데 이제 회복의 징후는 뚜렷하다. 슬슬 여유가 생기는지 나는 몸살과 신학의 상관관계에 골몰하여 샤워하는 중 상상력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이 세상이 병들었기에 나도 그 병든 세상과 잠시 한 몸으로 뒤엉켜 아파야 할 운명적인 궤적으로 이렇게 일 년에 한두 차례 몸살을 겪는 것일까. 이 세상에 잔뜩 낀 불길한 저주의 액운을 내 몸의 살(煞)로 전이시켜 더불어 앓으면서 그 살을 풀어내려는 공감각적 증상이었을까. 몸살의 신학적 의미는 이제 그 몸이 제정신을 차리기 시작하는 이 무렵 슬슬 그 내용을 증폭시켜간다.

리비아의 그 이름도 지랄 같은 카다피란 작자가 저지르고 있는 살기등등한 폭력사태와 ‘크라이스트처리’라는 이름의 후광만으로도 전혀 살기와 무관할 듯한 곳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한 우발적인 떼죽음의 현장, 무엇보다 340만 마리의 소 돼지들이 비명횡사하듯 송두리째 죽어간 이 땅의 구제역 파동에서, 내 몸은 그 공포스런 살의와 살기를 풀어내는 진통을 좁쌀만큼이라도 감당하려 무의식의 구멍을 만들고 의식의 틈새를 낸 것일까. 검증하지 않아도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아무리 적어도 이번 몸살이 게걸스레 먹어대며 몸에 불필요한 무게를 부풀린 비곗덩어리 살[肉]의 일부를 제거해주었으리라는 것이다.

2월 말의 시간적 위치는 몸살의 발생 기미에 적절히 감응하면서 순환하는 생명이 거쳐야 할 정신적 통과의례의 의미를 깨우쳐주기도 한다. 한해의 고된 노동이 그 막바지인 12월까지도 마무리되지 못한 채 부분적인 과욕과 부분적인 결핍으로 겨울의 끝자락으로 몰려난 지점이 바로 2월 말이기 때문이다. 그 시점은 또한 겨울과 봄이 분수령을 이루는 계절의 전환점이고, 긴 겨울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갱신의 접점이다. 교회력으로는 주현절의 환상적인 만남이 스며들면서 머잖아 사순절의 고난을 준비해야 할 근신의 점이지대이기도 하다. 거기서 내 몸의 온갖 사연과 곡절은 그 이야기의 마디마디를 밖으로 돌려 조분하게 표현하지 못한 채 한꺼번에 밀려 압사당할 듯한 기세로 그 눌린 살의 기운을(그것이 煞이든, 殺이든, 肉이든) 그 치열한 앓음의 몸짓으로 풀어내고야 마는 것이다.

몸살의 가장 절박한 신학적 의미는 이 세상의 총체적인 타락을 몸의 감각으로 앓아내는 일이다. 사람살이의 타락과 병증이 심각함을 제 몸의 가장 깊은 고통으로 체현하는 자리에 불현듯 몸살이 찾아온다. 제 몸의 탐욕이 제어되지 못한 채, 이 사회의 체계에 순치된 기계처럼 살아온 자의 불가피한 반성의 끝자락에 꾸역꾸역 몸살은 그 살기를 풍기며 밀려온다. 또한 교회역사를 통틀어 가장 타락했다는 이즈음의 한국교회가 탄식과 신음으로 개차반의 몰골을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의 징후들이 신자와 교인이란 명패를 붙인 생명의 불우한 얼굴 속으로 스미어 몸의 살(煞)을 조성하는 것이리라. 이제는 유행처럼 되어버린 죽음과 죽임의 시대에 그 살의와 살기를 제 한 몸에 되먹여 죽은 이들을 애도하라는 하나님의 지엄한 명령이 익명의 몸살기운으로 이 순환하는 계절의 구석구석에 번성할 법도 하다.

‘이 세상이 온통 병들었는데 내 어찌 이 병든 세상과 함께 아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유마경에 나오는 유마힐거사의 이 한 마디 전언은 이기적인 욕망의 숙주일 수밖에 없는 개체로서의 생명이 떠올려야 할 공감의 윤리적 마지노선이다. 이런 견지에서 욥의 고난은 그 숱한 후일담과 함께 개인의 실존적 심연을 넘어 시대의 고통을 품고 거기서 공동의 운명을 내다보는 신학적 안목으로 승화되어야 했다.

나는 이번 몸살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영문도 모른 채 졸지에 죽어간 이 땅의 수많은 생명들의 분노와 한을 내 몸살의 통증 한 틈새로 진혼하고자 한 것일까. 하여 그들과 함께 그 모순의 한구석이라도 함께 앓고 싶어 한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흘린 땀과 콧물, 내가 부대낀 내 몸의 각종 살들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계되어 우리가 철저히 개인이면서도 결국 함께 짐 져야 할 이 공명의 세상살이에 서푼어치의 이타심을 부활시켜보려는 생래적인 안간힘의 발로는 아니었을까. 그것은 혹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의 제각각 푼수대로 이 세대에 만연한 고통의 불감증을 치유하려는 악다구니의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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