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이전에 이동현 목사 사건에 대한 글을 기고하면서 그 사건에서 그 주어의 이름을 지우고 중성적으로 고민해보자고 주장한 바 있다. 그때 주장의 근거는 우리도 늘 그러한 가십거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있었다. 물론 우리 모두가 성범죄자가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언제든 성범죄자가 될 수 있으니 성범죄자를 욕하는 것을 조심하자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본문 중에서
트랜스 휴머니즘 시대 교회의 역할도 분화되고 다양화되고 있는데요. 요즘 선호되고 있는 소위 '팀 목회 운영방식'의 필요와 당위를 확인해 볼 수 있는 대담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팀 목회라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설교를 잘하고, 어떤 사람은 상담을 잘하고, 어떤 사람은 청년 사역을 잘 하겠지요. 그럼 한 사람이 팔방미인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목회협동조합 같은 것이 있다면 여럿이 하나의 팀을 이루어 하나의 목회를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러한 노력들이 우리 문제의 출구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면식도 전혀 없는, 그의 존재를 이제껏 알지도 못했던 필자는 성범죄자 목사를 그가 처한 어려움에서 구출해야만 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우리 대한민국 사회의 구조 자체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서 말이다. 참 힘든 일이지만 그래야만 한다. 이동현 목사 사건은 전국적 가십거리가 되어버렸다. 그 사건을 다시 곱씹지는 말자. 어차피 우리는 모두 그 사건에 대해 대충 알고 있으며 우리는 타인이 연루된 사건에 대해서는 언제나 대충 아는 것만으로 충분함을 느끼지 않았던가? 우리는 그 사건에 접속된 오만가지 원인들과 이유들에는 언제나 관심이 없지 않는가? 우리는 다만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내는 그 결과들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지 않은가? 그리고 사석에서 지인들에게 나의 짧은 고민 끝에 내린 판단들을 주저리 주저리 내뱉기 위하여 그 사건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난 시간에는 트랜스 휴머니즘에 대한 정의를 살펴 보았습니다. 이번 순서에는 트랜스 휴머니즘 시대의 윤리를 화두 삼아 이야기를 이어가 봅니다. 근대 주체의 해체를 도래한 (오늘날 사회의 또 다른 이름인)인공지능화된 시스템은 우리에게 새 시대에 걸맞는 윤리의 재정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박일준 박사와의 대담 두번째 편입니다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 박일준 박사를 만났습니다. 활발한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는 현대 신학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지점에서 학계의 주요 논의를 한국적 상황과 맥락에 맞게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요즘 그의 주된 관심사인 '트랜스 휴머니즘'을 놓고 이야기 꽃을 피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에 따르면, 트랜스 휴머니즘이 그저 단순한 용어가 아니라 근대 주체 이론을 비판하는 철학적 개념이었는데요. 박일준 박사가 전해주는 트랜스 휴머니즘의 이야기는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아주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먼저 박일준 박사에게 트랜스 휴머니즘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시와 묵상] 버팀목에 대하여"시인(1962- )은 부모와 이웃의 숨겨진 덕을 기리고 있다. 그들의 구체적인 덕행을 읊고 있지는 않으나 그들의 존재 자체가 현재를 "싹 틔우고 꽃 피우[게]" 했다는 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