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근대적 이원론 사고에 기초한 신인식론을 넘어서

오승성 교수, 탈근대적 신인식 가능성 탐구해

오승성 한신대 외래교수(조직신학)가 근대의 이원론적 사고에 기초한 신인식론을 극복하기 위한 작업으로, 탈근대적인 신 인식론의 가능성을 탐구하여 연구논문을 게재해 눈길을 끌고 있다.

2012년 겨울호 신학사상에 ’탈근대적신 신 인식론의 가능성 탐구: 칼 바르트의 실재론적 관점과 돈 큐핏의 반실재론적 관점을 넘어서’란 제목으로 논문을 실은 오 교수는 객체우위적 사고를 하는 실재론자(realist), 주체우위적 사고를 하는 반실재론자(antirealist)를 향하여 "실재론자들은 주체에, 반실재론자들은 객체에 인식론적인 폭력을 가했으니, 그들이 그런 폭력을 저지른 것은 근본적으로 그들의 사유가 주체와 객체를 완전하게 단절시킨 근대의 이분법적인 유산에 기초했기 때문"이라고 운을 뗐다.

그에 따르면, 실재론자에게 객체는 주체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로우며, 객체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있어 주체는 전적으로 무력하다고 본다. 반대로 반실재론자에게 객체는 전적으로 주체에 의존하며, 객체는 주체가 구상하는 표상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인식론적 폭력을 가한 셈이다.

객체 우위의 사고 칼 바르트와 주체 우위의 사고 돈 큐핏

신학의 장(場)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칼 바르트는 실재론적인 관점에서, 돈 큐핏은 반실재론적인 관점에서 저마다 신인식론을 전개했다. 오 교수는 그러나 이들이 신학의 내용은 각기 조금씩 다를찌언정 그 형식에 있어서는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이들 모두 주체와 객체를 분리시키는 근대 이원론적 인식 구조를 전제하고 출발한 신학이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칸트의 물자체 불가지론 전통 위에 선 바르트는 신과 인간의 무한한 질적 차이를 강조하고, 신을 전적 타자로 보는 등 신이 인간에게 물자체와 같다고 본다. 때문에 바르트는 인간은 이성을 사용하여 신을 알 수 없을 뿐더러 인간의 이성적인 범주로 신을 파악하려는 시도 자체가 우상숭배와 같다고 일갈한다.

이에 오 교수는 "바르트가 물자체로서 신을 인간에게는 전적인 타자로 규정함으로써 근대적인 인간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그 또한 칸트가 빠졌던 역설, 즉 이성의 한계 밖에서 신앙의 영역을 확보하고자 하였으나 도리어 이성의 한계 안에서 그 신앙을 가두는 역설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특히 코넬리우스 반틸의 『변증학』을 인용, "바르트의 절대 타자로서의 신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다고 인간에 의해 ‘가정’되는 신이기에, 다시 말해 인간에게는 절대 타자라고 인간에 의해 ‘요청’되는 신이기에, 결국 인간의 만들어낸 그 미지의 신비의 영역에 갇힌, 인간이 만들어 낸 신이 된다"고 역설했다.

반면, 외적인 우연성을 변증법적 운동을 통해 내적 필연성으로 전환시키는 헤겔을 따른 돈 큐핏은 우리 인간 주체의 인간적인 우연적 규정이 물자체인 신의 내적이고 필연적인 규정이 되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물자체인 신을 알 수 있고, 우리의 의식 범위 안에 신이 존재하게 된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므로 신은 우리의 의식을 넘어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에 대해(for), 우리의 의식 안에(in) 존재하게 된다.

오 교수는 "돈 큐핏의 신학적 반실재론은 바로 이런 신학적 사유의 극단"이라며 "큐핏은 이러한 반실재론적인 생각에 기초해서 신을 객체로 생각하는 신학적 실재론에 파산 선고를 내린다"고 했다. 큐핏과 같은 반열에 있는 반실재론자들은 결국 주체와는 독립적으로 객체(또는 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더 나아가서 주체가 객체(또는 신)을 구성한다고 생각하기에 주체의 의미부여가 인식과 존재의 시발점이란 점도 확인했다.

이에 오 교수는 "신이 나의 의식에 의존해서 존재한다는 반실재론의 입장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나의 의식이 신을 구성하게 된다"며 "그렇다면 신이라는 것이 나의 구성의 산물일텐데, 그 신이 전설적인 제우스나 할리우드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슈퍼맨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반문했다.

또 "신의 계시가 인간의 인식론적인 범주로부터 독립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찌 신의 계시라고 불릴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포이에르바흐처럼 신이라는 것이 인간의 경험의 투사라고 말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겠는가"라고도 했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반실재론은 주체에 독립적인 객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봄으로써 인식론적 유아론이나 회의론에 빠지는 것이 불가피했다.

하이데거의 실존에서 본 탈근대적 신인식론의 가능성

그러면서 오 교수는 근대적 이원론이라는 덫에 걸린 실재론과 반실재론의 입장에서의 신인식론을 넘어선 탈근대적 신인식론의 기초를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존재 이해에서 찾으려 했다. 오 교수는 특히 하이데거의 해석의 순환 구조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하이데거에게)전제 없는 해석은 가능하지 않기에 해석이 순환적인 구조를 갖는 것은 현존재가 존재론적인 선험성을 갖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렇게 해석의 순환 구조의 결과로서 전이해 없이 해석은 가능하지 않기에 객체(또는 신)와 아무런 관련을 맺지 않고 순수하게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생각되는 근대적인 주체 개념은 무너진다.

오 교수는 "이미 주체는 전이해의 형태로서 객체로 초월하여 객체에 존재론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며 "주체의 실존록적 개입을 통해 근대의 인식론이 상정한 주체-객체의 이분법적 분리는 종식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하이데거가 실존 범주를 심리학적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을 경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간의 내면적인 심리적 상태로 파악한 경우가 더러 있어 "주관의 진리성을 절대적으로 정립한다"(조가경) "성서의 고유한 세계를 인간의 실존성의 차원으로 환원시킨다"(김영한) "텍스트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인간의 가능성의 영역으로 축소하거 제한시킨다"(판넨베르크)는 비판이 있었음도 확인했다.

이에 오 교수는 (하이데거의)실존이 세계이해의 해석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조건이라는 점을 확인한 뒤 "인간의 존재론적 구조로서의 전이해는 신의 계시를 제한하는 그 어떠한 선험적인 법칙도 가지고 있지 않다"며 "그것은 계시의 내용에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계시를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론적인 조건에만 관계한다는 점에서 형식적(formal)이다"라고 강변했다.

에밀 부르너의 형식적인 형상을 인용, 끝으로 오 교수는 "자유나 책임, 언어의 능력 같은, 인간을 다른 피조물과 분리시키는 존재론적인 구조인 형식적인 형상은 바로 다름 아닌 인간의 실존론적인 선험적 구조"라며 "인간의 실존적 구조는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잘라내 버리는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의 침대가 아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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