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새로운 민중신학, ‘민중’ 아닌 ‘민중의 꿈’ 붙들어야”

‘민중신학, 유효한 신학인가’ 조직신학자대회서 강연 예정

▲이재정 박사(성공회대 석좌교수, 전 통일부장관) ⓒ베리타스 DB
이재정 박사(성공회대 석좌교수, 전 통일부장관)가 민중신학이 방법론 차원에서 놓고 볼 때 오늘날의 한국신학으로 여전히 유효하다는 주장을 폈다. 오는 20일 제8회 한국 조직신학자 전국대회 주제강연에 나설 예정인 이 교수는 미리 배포된 강연문에서 이 같이 밝히며, 차세대 신학자들에게 민중신학의 열린 가능성을 보여줬다.

‘민중신학은 여전히 유효한 신학인가?’란 제목의 주제강연에서 이 박사는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담을 쌓은 서구신학과는 달리 민중신학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담을 허물고 하나님의 사건 속에 인간이 있고 인간의 사건 속에 하나님이 있음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자리를 초월적 개념의 세계가 아닌, 인간 역사의 한 복판에 옮겨놓는 시도를 했다는 것이다.

이 박사에 따르면 서구신학에서는 인간은 인간으로서 신의 구원의 대상일 뿐이며 하나님은 인간이 넘을 수 없는 전능한 존재이기에 여기에서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초월적 또는 추상적 만남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민중신학은 그 방법론에 있어서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어 인간의 사건과 하나님의 사건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것이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이 박사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현상적으로 구별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완벽한 연대(solidarity) 또는 완전한 통합을 이룬다"며 "민중신학은 ‘신의 언어’를 ‘민중의 언어’에서 ‘신의 행동’을 ‘민중의 행동’에서 찾으려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는 "성서의 언어와 사건을 ‘하나님의 틀’ 즉 하나님의 초월적인 계시로서만 보지 않고 인간의 언어와 사건 속에서 읽고 해석하자는 것"이라며 "성서의 사건을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계시가 안에서가 아니라 역사 안에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그리고 극히 자연스러운 사건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란 설명도 보탰다.

그러면서 이 박사는 일반적으로 신학이 말하고 있는 형이상학적 개념과 방법 때문에 가려진 현장을 드러내기 위해 "민중신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민중신학의 ‘아래로부터의 신앙’ 또는 ‘행동으로 나타난 신앙’을 신학화하는 것은 오늘 신학의 성찰에도 "유효한 방법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위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신학인 민중신학 여전히 유효

이 같이 사건 현장, 즉 아래로부터의 신학 방법론을 전개하는 민중신학은 신학화의 출발지점인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이 박사는 민중신학의 발생 초기 한국의 신학자들이 현장에 뛰어들어 새로운 신학운동을 벌이게 된 이유로 "우리 역사에 대한 성찰과 함께 부패하고 무자비한 독재정치와 사회경제적인 구조의 문제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이어 "한국전쟁 이후 한국교회는 과거 역사에 대한 성찰의 과정도 제대로 가지지 못한 채 독재와 싸워야했으며 냉전구도 안에서 이념적 갈등으로 분열의 길을 걸었다"며 "이러한 과정에서 민중신학자들은 신학서적에서 또는 강의실에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민중’을 인식하게 되었고 ‘민중사건’의 가치와 신학적 의미를 찾게 되었다. 그것은 신학혁명이었으며 신학운동이었다"고 설명했다.

사건이긴 사건인데 민중의 사건이어야 함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국가권력이 폭력으로 변질되었던 비정상의 사회에서의 ‘민중’의 실체 혹은 ‘민중의 사건’과는 엄연히 다른 오늘의 현실에서 여전히 민중신학이 전통적인 신학 규범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교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될 수 있을까? 이 박사는 민중의 신학이나 민중을 위한 신학이 아닌 민중의 담론으로 민중의 전기로 민중의 사건으로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을 신화화한 것이 민중신학이라는 관점에서 해답을 찾았다.

그는 민중신학에 있어서 민중을 중심으로 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민중이 누구냐 또는 민중의 동력이 어떻게 역사변화에 작용하느냐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서 변수가 대단히 크다"고 말했다. 때문에 민중을 실체적 개념으로 보고, 이를 섣부르게 일반화하여 이론화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또 불가능한 일일 것"이라고 못박았다.

새로운 민중신학은 ‘민중’ 아닌 ‘민중이 꿈꾸는 새로운 세계’ 붙들어야

그러면서 새로운 민중신학에서는 ‘민중’이 아닌 민중의 사건이 담보된 ‘민중이 꿈꾸는 새로운 세계’를 붙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가령 마가복음에서도 예수 주변에 모여들었던 민중들(ochlos)의 존재나 그들의 정체성이 문제가 아니고 그들의 변화를 통하여 만들어지는 ‘새로운 세계’ 즉 하나님의 나라 또는 삶의 공동체라는 구체적인 모형이 있었고 그것이 어떻게 서로 관계성을 만들어가면서 새로운 질서나 새로운 가치를 형성해 가는가를 보여주고 있다"며 "민중신학은 민중의 신학이라기보다 민중이 꿈꾸던 새로운 세계, 민중이 투쟁하며 이루어 내려던 세계를 그 신학의 컨텐츠로 신학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민중이 꿈꾸는 새로운 세계’는 민중이 겪는 억압받는 삶으로부터의 해방을 전제한다. 오늘날의 한국사회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민주주의 발전 정도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과는 비교 불가하다. 그러나 이 박사는 "비록 과거의 형태와는 다르다할지라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억압받는 사람, 소외된 사람, 업신여김을 받는 사람 또는 가난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존재한다"면서 "비록 소수라 하더라도 그들이 공공의 가치, 공공의 소유를 기득권의 세력들이 불법이나 폭력으로 개인의 소유로 강제한다든가 국가의 공권력이 여전히 개인의 인권과 존엄성을 짓밟는 폭력으로 국민위에 군림하거나 부정하거나 불의한 세력에 의해 반칙으로 사회가 이끌어 간다면 이에 대한 부단한 투쟁과 외침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죽은 사회이며 생명력을 잃은 사회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비인간화를 조장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심화가 민중신학을 요구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우리사회 양극화 현상은 사회적 대립현상으로 격화되어 가고 있다. 이웃이 사라진 사회에는 핏발선 경쟁과 이기기 위한 투쟁이 자리하고 있고, 나눔이나 협동의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또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수 없는 낙오자를 양산하고 있으나 사회는 그들을 돌보지 않는다. 이 박사는 "이런 상황에서 민중신학의 관점에서 출애굽의 해방이나 희년의 신학을 다시 꺼내들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오늘날 민중신학의 과제…‘죽은 역사’ ‘죽음의 사회’ 다시 살려내야

이 박사는 마지막으로 민중신학의 주요 과제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민중신학의 과제를 "새로운 생명의 문맥, 공존의 문맥, 화해의 문맥, 협동의 문맥, 평화의 문맥을 통해 ‘죽은 역사’와 ‘죽음의 사회’를 다시 살려내는 책임"이라고 했으며, 이를 위해 안병무가 제시한 "성서의 텍스트와 오늘의 역사현장에서의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동질성을 밝히는 것은 오늘 유효한 신학적 방법"이라고 했다.

이러한 민중신학의 방법론을 바탕으로 그는 비극적인 ‘죽음 사건’들인 ‘용산참사’ ‘천안함 사건’ 등에서 "죽은 자의 죽음을 다시 살려내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으며, "조직신학은 살아있는 생명의 신학으로 교회를 살리고 사회를 살리고 역사를 살려내는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죽음을 직시하고 그들을 살려 새 역사를 만드는 것이 오늘의 신학의 과제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조직신학회(회장 김흡영 교수)는 오는 20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교회에서 ‘한국신학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제8회 한국 조직신학자 전국대회를 개최한다. 주제 강연자로는 이재정 박사와 더불어 대전신학대학교 허호익 교수도 나선다. 허 교수는 ‘한국 신학의 새로운 모색’이란 주제의 강연에서 <천지인 신학>을 제안한다. 

이 밖에 금번 대회에서는 모두 15개의 주제를 담은 다양한 주제의 논문들을 포함해 30여개의 논문과 논찬이 새롭게 선보이고 발표된다. 한국조직신학회는 전국 200여명의 조직신학자 정회원과 260여 명의 준회원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학술활동을 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신학 학술 학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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