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서남아시아에서 난데 없이 들이닥친 쓰나미로 수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도 그리고 얼마 전 일본을 강타한 대지진이 역시 수만명의 생명을 앗아갔을 때도 보수 교회 지도자들은 잠자코 있는 대신 저마다 침묵을 깨며 심판의 메시지를 부르짖었다.
이들은 마치 공식이라도 외는 듯 자연재해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했으며 심판의 대상자로는, 아니 악의 저자로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한 희생자들을 지목했다. 이 희생자들은 영락 없이 악의 원인으로 작용했고, 자연재해는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으로 미화됐다.
현존하는 악의 문제에 직면해 하나님의 선하심과 전능하심을 변호하려는 이런 시도는 나름 짜임새 있게 전개되는 진술로서 보수교회 지도자들 사이에 어느새 정설로 굳혀지고 있는 상황이다. 악을 목도하는 현실 앞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움을 변증하는 이 같은 정통적 신정론(神正論)에 한 신학자가 반기를 들고 나서 관심을 모은다.
▲손호현 교수(연합신학대학원)가 31일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이 주최한 제42회 공개학술강좌에서 ‘지진은 하나님의 심판인가?’란 제목의 강연을 하고 있다. ⓒ김진한 기자 |
31일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이 주최하는 제42회 공개학술강좌에서 손호현 교수(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문화신학)는 ‘지진은 하나님의 심판인가?’란 제목의 강연에서 손 교수는 몇몇 보수 교회 지도자들을 겨냥한 듯 "차라리 침묵하는게 낫지 않을까?"라는 질책 아닌 질책을 했다.
이어 손 교수는 "고통과 악의 문제에 대해 침묵 대신에 말의 가능성을 선택한 몇몇 기독교인들은 자연재해와 지진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해석을 제시한다"며 "본인은 이러한 하나님 심판론은 한편으로는 비성서적일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재해에 대한 유일한 기독교적 대답이 아니라고 주장하려 한다"고 운을 뗐다.
악의 문제에 대한 기독교인이 가지는 고민이 △하나님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신학적 설명의 궁극적 끝’이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선하심으로 ‘악의 근원’(the source of evil)이 될 수 없다는 두 가지 근본적인 믿음의 충돌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한 손 교수는 "사실 지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론은 위의 두 원칙들을 손쉽게 중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듯 보인다"며 그 이유로 "곧 지진의 경우 인간 희생자들을 악의 저자로 규정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지진을 일으킬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라는 하나님의 형이상학적 궁극성 혹은 주권적 통치의 첫째 원칙을 만족할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무고성과 전적 선하심이라는 둘째 원칙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손 교수는 이내 "이러한 지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론이 다른 모든 신정론 논의들과 마찬가지로 한계를 가진다고 생각한다"며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자연재해를 인간의 악행이나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희생되어진 (유아들과 동물들을 포함한)모든 생명들이 범죄한 죄인이라는 거의 불가능해보이는 논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손 교수는 "이처럼 하나님 심판론이 제기하는 하나님의 초상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8)는 성서의 가장 깊고 고결한 신학적 통찰을 거스르며 거의 새드스트 하나님에 가까운 잔혹한 신론을 제시한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며 "본인은 성서 자체가 바로 자연재해라는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견해를 거부하고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요한복음(9:1-7), 누가복음(13:1-5), 욥기 등 신약에서 구약에 이르기까지 자연재해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살펴본 손 교수는 "사실 ‘도덕적 범죄’-‘자연재해의 심판’이라는 연결고리에 대한 저항은 단지 신약성서 뿐 아니라 이미 구약성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하며 화이트헤드의 욥기 해석을 인용했다. 세계의 고통에 대해 깊은 시적 통찰을 했던 화이트헤드는 "욥기는 운좋은 사람들에 의해 그렇게 애용되어졌던 손쉬운 해결책, 곧 ‘고난받는 자는 악한 자이다’라는 해결책에 대한 항거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또 성서학자 서중석 교수(연세대 신과대, 신약학)가 욥기의 결말을 ‘행복한 결말’이 아닌 ‘침묵의 항거’로 지적한 데에 "곧 욥기는 민족적 고난에 대한 손쉬운 대답을 거부하는 책일 뿐만 아니라 죄와 벌 사이의 ‘인과율’을 거부하는 책이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31일 오후 4시 연세대 신학관 예배실에서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이 주최하는 제42회 공개학술강좌가 열렸다. ⓒ김진한 기자 |
손 교수는 이를 토대로 "자연재해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는 것은 잠재적으로나 비성서적 관점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자연재해에 대한 기독교적 대답의 유일한 형태도 아니다"라며 "하나님이 지진을 허용하거나 일으킬 도덕적으로 충분한 이유가 존재할 수 있다는 논리적 대응이다. 하나님의 이유는 우리의 인식 너머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인과율’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하나님 상을 그린 것이다.
이에 덧붙여, 손 교수는 ▲하나님은 주권적 섭리를 통해 우주를 아름답게 만드는 과정에서 지진을 도구적으로 허용하거나 사용한다는 입장 ▲둘째의 입장과 동일하지만 우주의 궁극적 아름다움을 완성하기 위해 영원한 지옥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삭제한 수정된 어거스틴의 미학적 신정론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어거스틴의 초기저작부터 후기저작까지 미학적 변증이 깊이 녹아있다고 설명한 손 교수는 "(어거스틴에게)섭리를 통한 하나님의 우주 만들기는 그 안에서 미학적 대조의 효과를 위해 아름다움과는 반대되는 추함, 악, 고통, 비극, 죽음 등의 요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영원한 지옥을 배제하며 어거스틴의 미학적 신정론에 수정을 가한 손 교수는 "죄와 벌의 공정한 비례 원칙에 기초한 어거스틴의 정의 개념은 그 내적인 논리의 전개로 인해 형벌의 장소로서 영원한 지옥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며 "어떠한 처벌도 그 방식, 강도, 기간에 있어 유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전현식 교수(연합신학대학원 부원장 및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공개학술강좌에는 ‘포스트식민주의 담론과 신학의 과제’란 제목의 방연상 교수의 강연도 있었다. 축도는 서중석 교수(연세대 신과대)가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