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고인이 십수년간 교편을 잡았던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고 춘계 이종성 박사 장례예식’이 거행됐다. |
2011년 10월은 장로회신학대학교 동문들에겐 매우 슬프고 그리운 달로 기억될 것이다. 16년간 장신대를 이끌며 4천여명의 제자들을 길러 낸 이종성 박사의 지난 2일 별세 소식에 제자들은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훔쳐야 했다. 이 박사는 그들에게 위대한 스승이면서 아버지같은 존재였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그리움이 5일 장례예식에 참석한 동문들의 표정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날 오전 9시 장신대 한경직기념예배당에서 총회장으로 치러진 장례예식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증경총회장과 교단 목회자, 장신대 교수, 교직원, 학생, 고 이종성 박사의 유족 등 500여명이 참석해 애도의 물결을 이뤘다. 이들은 구슬픈 눈물 대신 긴 침묵과 애잔한 눈빛으로 슬픔과 그리운 마음을 대신했다.
“이 박사님은 권위적인 다른 교수님들과 달리 아버지 같은 따뜻함이 있었습니다. 신학생 시절 이 박사님의 명으로 웨스터민스터신앙고백을 번역했는데, 이를 잘못 번역하여 많은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이 오용하게 하는 큰 결례를 범했습니다. 그런데 이 박사님은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라 하시면서 저의 손을 잡아주셨고, ‘그래도 넌 내 애제자야’라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런 스승님이 지금 무척 그립습니다.”
추모사를 전한 서울교회 이종윤 목사는 고 이종성 박사에 대해 ‘큰 스승, 아버지’라고 했다. 그는 “이 박사님은 장신대와 한국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셨던 분이었고, 신학을 머리로만 하지 않으시고 몸소 실천하셨던 분”이라고 회고하면서 추모사 말미에 “아버지 선생님, 우리 선생님”이라 되뇌었다.
고 이종성 박사는 기독교 보수신학과 진보신학을 섭렵한 한국 신학계의 거목이었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통전적 신학’을 설파한 그는 이 신학을 중심으로 화해의 정신을 발휘,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 한국교회와 더 나아가 한국사회를 하나되게 하고자 했다. 지난 9월 암으로 병원 신세를 지면서도 그는 한국교회의 제반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했다고 한다.
장신대 김명용 교수는 “타 교단들이 분열되고 갈라질 때 예장 통합이 분열되지 않은 이유는 이 박사님께서 우리에게 폭넓은 신학을 가르치시며 큰 그릇으로 키우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장 성서적이고 복음적이며 에큐메니컬을 지향하셨던 분”이라고 고 이종성 박사를 추모했다.
증경총회장 림인식 목사는 ‘한국의 에스라’를 잃었다는 말로 고 이종성 박사의 소천을 애도했다. 장례예식 설교를 전한 림 목사는 이 박사를 구약성경에 나오는 에스라와 비견하면서 ‘대학자’라고 칭했다. 그는 “이 박사님이야말로 에스라와 같은 학자요, 제사장이었다”면서 “이 분의 신학을 기억하면서 한국교회가 그의 과업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