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일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지 신문은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임금이 남성을 앞질렀다는 조사결과를 일면 톱기사로 실었다. 영국의 교육 당국이 고등교육과 관련한 성별 격차를 알아보기 위해 실시한 이 조사에 따르면 22세에서 29세 사이의 여성은 평균 10파운드(약 18,000원)를 약간 상회하는 임금을 받는 데 비해 동일 연령대의 남성은 10파운드 이하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그동안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할 때 여성이 남성에 비해 훨씬 더 좋은 성적을 기록했는데, 그러한 결과가 축적되어 임금 시장으로 연결됨으로써 이와 같은 임금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결과만을 놓고 보면 앞으로는 한 남녀 커플이 아기를 낳은 후에는 남자보다 돈 잘버는 여자가 가장 노릇을 맡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김기석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베리타스 DB |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이러한 조사가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흔히 딸들이 아들들보다 공부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우리 집을 포함해서 말이다. (필자의 아들이 이 글을 읽어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자녀가 중고등학교 진학할 때에 남녀공학으로 배정 받으면 딸 가진 엄마는 환호작약하고 아들 가진 엄마는 절망한다. 내신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남학생들이 숙제나 수행평가 등에서 여학생들에 비해 불성실하다. 대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남학생들은 발표에서 가끔 반짝하지만 여학생들은 출석과 과제물에서 꾸준하다. 행여 무언가 빠뜨렸을 때의 여학생의 무마능력은 남학생을 훨씬 능가하는데, 소위 애교라 부르는 이것을 성적에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필자는 이러한 남학생들의 ‘역사적’인 부진의 원인이 무엇 때문인지 오랫동안 궁금해 해왔다. 우리는 예비고사 세대인데, 당시에는 남학생 수석과 여학생 수석의 점수 차이가 10~20점 정도 되었다. 그래서 당시 필자는 생물학적으로 남자의 지적능력이 여자에 비해 우수한 줄로 착각하였다. 여성신학을 통하여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차별에 의해 여성이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제도적으로 상실할 수 밖에 없음을 배울 때까지 그러했다. 필자는 오랜 탐색 끝에 오늘날 남학생들을 ‘찌질남’으로 만드는 중요한 원인은 컴퓨터 게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여자 아이들도 게임을 하지만 대체로 소셜 커뮤니티 게임을 즐기고 몰입은 할지언정 중독되지는 않는다. 남자 아이들은 즐기자고 만든 게임인데 죽자고 덤벼든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할까?
아마도 사이버 게임의 특성이 인류가 오랫동안 남녀의 각자의 독특한 차이를 형성한 수렵채집 시대와 잘 부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 아이들은 사이버 세계에서 목표물을 쫓아 다니고 적들과 전투를 벌이느라 해지는 줄, 날 새는 줄 모른다. 그 사이에 여자 아이들은 착실히 숙제를 하여 좋은 점수를 받는다. 이러한 과정을 전체적으로 파악한 필자는, 어쩌면 사이버 게임은 수천 년간의 가부장제를 전복시키고 모계사회의 재건을 꿈꾸는 일부 여성들의 은밀한 음모에 의해 고안되었거나, 아니면 반대로 오랫동안 식구들을 벌어먹이기에 지친 남자들이 부당하게 행사해온 권위와 함께 가장의 책임을 내팽개치기 위해서 여성들 모르게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의심해보았다. 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남학생들이 당하고 있는 것이고, 후자의 관점에서 보면 여학생들이 술수에 넘어간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이러한 터무니 없는 필자의 음모론에 설득 당할 이는 아무도 없을 테니 독자 여러분께서는 반론을 펴는 수고는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고, 오늘도 어떻게 하면 엄마의 감시를 벗어나 컴퓨터 게임을 해볼까 잔머리를 굴리는 아들에게 이 글을 읽게 하고 미래의 바람직한 남녀관계와 차이에 대하여 토론해보면 어떠할까?
글/김기석(성공회 사제, 성공회대 교수, 현재 영국 버밍엄대 방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