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 ⓒ베리타스 DB |
그들의 변절의 배후에는 뭔가 들어낼 수 없는 숨겨진 이유들이 있는 것 같다. 그 배후에는 무엇보다도 자기가 충성했던 사람들이나 속해 있던 집단으로부터 배신이나 소외를 당했던 경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변절과 배신 혹은 소외는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는 것이다. 사실상 배신감이나 소외감은 인간으로서 가장 참기 힘든 경험들 가운데 하나다. 우리는 이러한 예를 신약성서에서는 예수를 배반한 가롯 유다에게서 그리고 로마의 역사에서는 시저에 대한 브루투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배신하는 데는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으로 나누어 생각하게 된다. 브루투스의 경우처럼 어떤 내적 확신에 의해서 시저를 배신할 수도 있고 유다의 경우처럼 제사장과 그가 받은 돈이라는 대가에 의해서 스승을 배신 할 수도 있다. 브루투스처럼 시저가 독재자가 되려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확신에서 오는 배신은 때로는 후세에도 영웅적 행동으로 칭송받을 수도 있지만, 가롯 유다의 경우처럼 돈에 대한 탐욕이라는 외적 요소에 의해서 감행한 배신은 역사적으로 비난거리로 남게 된다.
어쨌든 2012년 대통령선거철을 맞이해서 나타난 이런 배신 아니 변절은 조금 차원이 다른 듯하다. 변절한 사람들은 대체로 과거의 정치적 권력이나 지위 그리고 명예를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된 나이든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공통된 특징은 그들은 아직도 지나치게 권력욕이나 명예욕에 집착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번에 변절한 사람들 가운데 특히 눈에 띠는 사람은 김지하 시인과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등이다. 김지하 시인은 박정희 시절에 담시를 통해서 독재정권을 풍자하고 날카로운 비판을 가함으로써 민주화투쟁에 깊은 영감과 동력을 불어넣었었다. 그는 박정희정권에 의해서 많은 정신적 신체적 고초를 겪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변절을 시작할 때 그 충격들로 인해서 정신이 좀 이상해진 것이 아닌가 해서 동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변절의 시작으로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자 그에게 접근해 오는 보수세력과 신문들에다 대고 변절의 괴변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 예가 백낙청 교수에 대한 터무니없는 공격이다. 자기보다 더 명예를 누리는 사람을 두고 보지 못하는 심리가 된 것이다.
그리고 한화갑 전 민주당대표도 고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정치를 하면서 한국의 민주화에 나름대로 공헌을 한 사람이다. 그는 꽤나 유능한 정치가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으나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기대했던 만큼의 지원이나 신뢰를 얻지는 못했다. 그는 김대중씨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 중책을 맡지도 못했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이른바 친 노무현 386 그룹에 밀리면서 자기의 입지가 점점 약해진다. 이 때 이른바 민주당의 중심축을 차지했던 전라도 출신의 정치가들의 입지도 결정적으로 약해진다. 그들은 노무현의 386 아마추어 집단에 밀려나면서 정치생명도 점차 끝나고 결정적으로는 친 노무현 집단이 주도한 작년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공천 등에서 배제됨으로써 거의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이러한 결과가 구 민주당의 동교동계의 몇몇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고 결국 변절로 나타난 것이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그동안의 민주화운동 집단의 일관되지 못한 정치적 지향성이나 도덕적 성실성 그리고 동지적 연대성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이 요청된다. 그들 가운데는 인권과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권력쟁취와 동일시하거나 정치에서의 도덕적 성실성을 외면하고, 동지적 연대성을 망각함으로써 진보진영 안에서도 분열과 갈등이 점차 생겨났던 것이다. 그것은 특히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분열하면서 그들 사이의 갈등은 심화되었다. 여기서도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특히 진보진영의 생명인 도덕성의 결여는 통합진보당 사태에서도 나타났다. 진보는 사상의 참신성 못지않게 도덕성에 기초한 신뢰성을 얻지 못하면 승리하지 못하며 사회를 결코 개혁할 수 없다. 진보의 생명은 도덕성에 있다고 마르크스는 갈파한바 있다.
변절한 사람들이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들은 나이가 먹어서 이미 은퇴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과거의 정치적 지위나 사회적 명예에 매어달리고 있다. 그들은 세월이 지나면 권력이나 명예는 지나가며 그 후대들이 정치적 대의를 추구하고 그들에게 권력과 명예가 주어진다. 따라서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시기가 있는 법이다. 그 때가 빨리 지나가는 것을 보고 선인들은 인생은 무상하다고 하고 거기에서 삶의 지혜를 얻기도 한다. 인생의 모든 것은 시간과 더불어 들에 핀 잡초처럼 지나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들은 지나온 영욕의 세월을 성찰하면서 마지막 남은 삶을 조용히 지낸다. 그 늙은 나이에도 권력과 명예를 놓지 않으려 하거나 계속 추구하는 사람들은 노욕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다. 그런데 노욕에 사로잡혀서 다른 일도 아니고 변절을 감행하는 것은 그동안 애써 쌓은 지위나 명예를 땅에 내던지는 것이며 동시에 그들은 존중하던 후손들과 후배들에게 실망과 좌절을 안겨주는 것이다. 그들은 후회하기 전에 먼저 참회했으면 좋겠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살릴 때가 있다. 허물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 통곡할 때가 있고, 기뻐 춤출 때가 있다. 돌을 흩어버릴 때가 있고, 모아들일 때가 있다. 껴안을 때가 있고, 껴안는 것을 삼갈 때가 있다. 찾아 나설 때가 있고, 포기할 때가 있다. 간직할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전도서 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