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베리타스 DB |
적어도 NCCK에 참여하는 각교단과 기관 대표들이 참석하여 법적 권위를 대표하는 정기 실행위원회에서, 김근상 NCCK 의장은 조속한 시일 안에 앞서 언급한 ‘WCC 공동선언문’에 대한 의장명의 선언문을 발표하고, “각교단에서 2인씩 선정해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WCC 공동선언문’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를 실시하고, 책임질 사람은 지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언론매체는 전하고 있다.
공동선언서 문서에 서명한 4명의 대표자 한 사람인 김영주 총무 스스로 ‘절차와 과정을 지키지 못한 점’과 “생각과 용기가 부족해서 그 경계선을 바로 설정하지 못했다”고 자책하고, 사과하는 이 해괴한 문서의 출현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를 성찰하게 만든다. 사태에 관련하여 적절한 종결을, 김근상 의장이 언급한대로 NCCK에 참여하는 각교단의 위임받은 인사들이 모여 하루 속히 내리기를 바란다. 공식적인 NCCK 기관대표들의 종결처리를 조용히 기다리기엔 이 문제의 본질이 자못 심각하기 때문에, 핵심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가 신학자로서 감히 한마디 하려고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문제의 본질은 두가지다. 한 가지는 한국 기독교에 암세포처럼 퍼져있는 ‘신학적 메카시즘’이요, 또 다른 한 가지 문제는 돈많이 가진 자가 진리를 좌지우지하는 ‘불편한 진실 맘몬니즘’이라는 교계 현실이다.
‘신학적 메카시즘’이란 1950년대 미국 정치계를 공포과 광기로 몰고갔던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매카시(J.R. McCathyi)가 주동이 되어 미국정계와 사회에 일으킨 ‘묻지마식 공산당 사상검증 테러’를 빗대어 하는 말이다. 1950년대 세계 냉정시대의 미소대결 상황에서 일어난 정치이념 사상검증 선풍은 미국 국무성 안에 205명의 공산주의가 있고 그 명단을 갖고 있다는 근거없는 폭탄선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후, 정치계만이 아니라 경제계, 언론계, 학계, 심지어 자연과학자들에게까지 ‘공산당 스파이’ 혐의를 두어 반론, 토론, 검증없는 검거 광풍을 일으켰고 중국 홍위병사건처럼 인간인격을 무자비하게 매도했다. 그 결과 한동안 미국 정치계와 사회는 지적 경직성이라는 댓가를 치러야 했고, 세계에 웃음거리가 되었으며, 결국은 메카시 의원 자신이 비판받고 그 정치적 광기가 소멸되었다.
소위 ‘WCC 제10차 총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공동선언문’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정직하게 2013년 부산에서 개최하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와 2014년 서울에서 개최하는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사이에 성경관과 신학적 입장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신앙하며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절대적 계명보다 더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신학적 관점과 해석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피차 성공적 개최를 위해 협조한다는 성명서라야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성명서에는 지구상에 살고있는 약 15억명 그리스도인들(로마가톨릭 7.5억 , 개신교와 정교회와 성공회 합 7.5억) 중에서 일부 보수적이고 심지어 근본주의적 신학을 따르는 기독교인들의 교리 항목을 성명서 속에 박아넣음으로써, 화해와 협력의 진정성 마져 의심하게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문제의 성명서는 알고 보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거치면서 새롭게 개혁한 세계 가톨릭 신자 7.5억명을 신앙적으로 비판 단죄하는 셈이 된다. 왜냐하면 제2차 바티칸 공의희 문헌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을 보면 한국 보수신학 교단 입장과 판연히 다르기 때문이다(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출판, 『제2차 바티칸 공의문헌』605-612쪽 참조).
세계 가톨릭 교인수와 비슷한 숫자를 구성하는 개신교 각 교파와 영국성공회와 동방정교회 교인들 7.5억명 중에서, 아무리 많아도 그 숫자의 1/3을 넘지 못하는 보수적 교인들의 신학입장을 표준으로 삼아가지고, 나머지 지구촌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의 신념을 단죄하고 심판하고 신앙 양심을 제약하는 비관용적 폭력적 태도는 ‘신학적 매카시즘’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왜 ‘신학적 메카시즘’을 극복해야 한국 기독교가 소생할 수 있다고 필자는 주장하는가?
‘공동성명서’에 나열된 중요한 신학적 어휘들이 충분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없이 그리스도 형제 자매들의 신앙과 인격을 ‘비기독교적, 이단적, 반기독교적, 비복음적인 것’이라고 매도하는 선동언어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어휘들을 보면 ‘종교다원주의’, ‘인본주의’, ‘동성연애’, ‘공산주의’, ‘개종전도금지주의’, ‘종교혼합주의’ 등등의 어휘들이다. 마치 WCC 회원교단은 큰 이단적 신앙에 모두 물들어 있다는 전제를 깔고 경고와 충고를 하는 성명서 같다. WCC와 NCCK가 이번 부산 총회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전지구촌 상황에서 생명, 평화, 정의 등의 주제에 대한 공감적 반응이나 긍정적 언급은 한마디도 찾아 볼 수 없다.
성경 안에 고귀한 사랑, 진리, 빛, 화해, 용서, 봉사, 감사, 찬양, 기쁨, 치유, 관용 등등 아름답고 위대한 힘들의 어휘는 하나도 없고, 격식적인 전문신학적 혹은 종교적 용어를 내걸고 모든 것을 판단 처리하는 바리새적이고 대심문관적인 접근과 입장을 드러내놓고 있다. 이번 문제의 「성명서」 초안자들과 서명자들이 범한 가장 큰 잘못은 바울이 경고한바 “의문(儀文)은 죽이는 것이요 영(靈)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후3:6)는 말씀을 무시하고 소홀히 한 것이다.
‘종교다원주의’라는 어휘를 한 예로 들어보겠다. ‘종교다원주의 담론’이 20세기 후반에 세계신학계 특히 선교신학계에 중요한 의제로 부상한 이유는, 지구촌 시대에서 인류가 각 문명과 지역마다 형성해온 불교, 힌두교, 유교, 이슬람교, 천도교 등등이 하나님의 인류 구원 경륜과 섭리 안에서 어떤 자리와 의미를 가진 것인가 신학적으로 연구하고 생각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복음선교를 보다 바르고 효과적으로 수행하자는 선교적 관심이기도 한 것이다. 세계적인 ‘종교다원론’을 말하는 책임있는 신학자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종교혼합주의’와 독선적 ‘종교배타주의’ 이다. 130년 전 개신교가 전래되기전 한반도 우리 조상들이 신앙했던 불교, 유교, 천도교, 무교들이 복음과 어떤 관계일까하고 생명을 물려 받은 한국인 후손들로서 진지하게 묻고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보수교단 지도자들은 ‘종교다원론’이란 단어는 곧바로 ‘종교혼합주의’를 의미하던지 복음의 고유성과 진리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선전하고 교인들을 그렇게 세뇌시킨다. 문제의 공동선언문 제1항에 “우리는 종교다원주의를 배격한다”라고 명기했다. 도대체 어떤 입장의 ‘종교다원주의’를 배격한다는 말인지 알 수 없다. 종교다원주의 담론엔 다양한 입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 다양한 입장을 무시하고,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배격한다”는 추상적인 주장과 같은 방식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종교다원론, 진화론, 동성연애론, 인본주의 등등 특정 단어 한 개를 무기 삼아 대중으로 하여금 지성적 분별력을 포기하고, 보수적 가치의 자기방어적 본능에 충실하도록 선전 선동한다. 지난해 12월 대선정국에서 진보적 성향의 국민들 (유권자중 48.6%)을 소위 ‘좌빨, 종북세력’에 동조하는 사람들인양 몰아부친 보수적 언론과 여당 정치선전인의 행동과 ‘신학적 매카시즘’은 꼭 닮게 작동한다.
순진한 교인들로 하여금 정통신앙를 믿고, 구원받기 위해서는 아예 신앙적 전염병균이 옮기는 것을 피하는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 결과는 매우 부정적이다. 눈을 크게 뜨고 보면, 개방된 한국사회 속에서 보수적 기독교는 점점 ‘소통 불가능한 종교동굴 속에 갇혀있는 집단’으로 스스로를 왕따 시켜버리게 된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도 모르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WCC 안에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온 교회 대표가 회원으로 참석하고 있으니 WCC는 “빨갱이 용공 종교집단”이라고 과거에 악선전 했다.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신학자들과 목사들의 책임이 참으로 크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평신도나 신학자나, 도대체 그 누구가 성경의 귀중함과 말씀 속에 깃든 영감성과 영원한 구원의 능력을 의심하겠는가? 그런데, 그와 같은 성경사랑과 성경의 영감성 인정을 반드시 「공동성명서」제4항에서 규정한 것처럼 “성경 66권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로 무오하며, 신앙과 행위의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표준임을 천명합니다”를 수용하는 특정신학적 입장과 똑같아야 한다고 단정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1950년대 정치적 메카시즘이 ‘양날검’이 되어 마침내는 메카시 상원의원 그 자신을 파멸시켜 버렸듯이, ‘성경문자무오설’은 21세기에 복음선교의 길을 도리어 어렵게 만들고, 복음의 전도자들을 광기와 광신으로 몰아가는 배타적 전사들로 만들어 버릴 위험도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오늘도 명동 거리에 나가보면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팻말을 들고 확성기를 이용하여 행인을 겁주고 이웃종교를 비난하는 전도자(?)를 만날 것이다. 문제의 「공동선언문」 이 타종교 동네에 널리 알려지고, 한국 지식인들 사회에 알려지고, 젊은 세대들에게 알려진다면 그들은 한국 기독교의 배타적 독선 독단주의에 절망하고 소통과 대화의 기대를 접어버릴 것이다. 그 결과를 장기적으로 예견하면 30년후 쯤 한국 기독교인 교세는 300만명 정도 감소할 위험을 내포하는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교계에 문제가 된 「WCC 제10차 총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공동선언문」사건 그 안에 감추어져 있는 한국 기독교계의 문제는 ‘신학적 매카시즘’ 극복이라는 생각임을 필자는 금할 수 없다. 거듭 바울사도 경고를 경청하여야 한다. “의문은 죽이지만 영은 살린다” . 교리논쟁, 신학적 입장, 성경해석의 입장, 21세기 현실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반응 등은 최상의 좋은 것일지라도 그것들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 어떤 한 입장만을 절대화하는 것은 스스로 대신문관이 되려는 영적 교만 행위이다. 소위 문제가 되고 있는 「공동선언문」안에는 ‘생명과 사랑의 복음’은 안들리고, ‘경직된 교리와 근본주의적 신학체계’만 들린다고 말하는 필자의 귀가 정녕 잘못된 것일가? 차라리 그러기를 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