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산티아고 영성순례기] 짐이 가벼운 만큼 영혼도 가볍다

이대희 목사·강릉선교감리교회 담임

까미노 데 산티아고 CAMINO DE SANTIAGO(4)

 
▲순례 네번째날, 팜플로나에서 ‘푸엔테 라 레이나’ 마을 가는 길에서 만나는 사리키에기 마을, 팜플로나에서 걸음을 나선 순례자들은 페르돈 언덕에 오르기 전에 충분히 휴식한다. 순례자들의 이정표가 되는 조가비와 노란 화살표.
▲순례 네번째날, 팜플로나에서 푸엔테 라 레이나로 가는 여정중 오바노스마을, 순례자가 된 남매의 슬픈 전설이 전해 온다.

우리가 가야할 여정을 산티아고로 결정한 다음, 우리는 짐을 꾸려야 했다. 40여 일 일정에 대한 세 사람의 짐을 어떻게 꾸려야 할 지 막막했다. 우리의 떠날 길이 까미노 데 산티아고로 정해진 만큼, 우리는 모든 것을 까미노 순례자 채비에 대해 연구하고 집중하였다. 집을 떠나 어디든 먼 길을 나설 때는 짐이 많아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 사람의 짐을 각각 배낭 하나로 마무리해야 했다. 배낭 하나 이상 많은 짐을 짊어지고 다닐 수도 없다.

대개 까미노-프랑스길 800킬로미터를 떠나는 순례자들은, 프랑스 영토 첫 출발지인 생장피드포르라는 마을에 들어가기 위해 파리를 경유한다.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생장피드포르까지 가는 여정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우리는 스페인의 동남부 해안가에 있는 바르셀로나를 거쳐 생장피드포르에 가기로 하였다. 국내에서 파리든 바르셀로나든 가려면, 항공편을 이용한다. 그 중 가장 저렴한 항공은 A항공사이다. 이 비행편은 모스크바를 경유하는데, 모스크바 공항에서 환승시간 동안 다음 종착지로 가는 연결 항공편에 수하물을 옮겨 싣지 못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짐을 분실하는 경우나 미처 도착하지 못한 수하물로 인해 황당한 어려움을 당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순례 일곱번째날, 로스 아르코스에서 ‘로그로뇨’로 가는 여정중 산솔 마을 바깥쪽에 있는 버스정류장, 까미노를 안내해 주는 노란 화살표가 어김없이 나타난다.
▲순례 일곱번째날, 로스 아르코스에서 ‘로그로뇨’로 가는 여정중 비아냐 마을, 15세기 교황인 알렉산더 6세의 사생아 체사레 보르자의 무덤이 있는 산타 마리아 교회의 벽감. 좌우에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께서 운명하시다.

실제로 우리보다 두 달 정도 앞서 같은 A항공사 비행편을 이용했던 분도 그와 같은 곤란함을 만나서 파리에서 모든 짐을 다시 구입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다고 비용을 더 감당하고 다른 항공편을 이용할 수는 없었기에, 짐을 기내로 모두 들고 가기로 꾀를 내어 배낭의 무게를 기내용 용량에 맞추고, 기내 반입 가능 물품에 한해서만 짐을 준비하였다. 혹시 부족한 것이나 필요한 것은 현지에 도착하여 마련하기로 하고, 배낭 하나에 10킬로그램 이상 초과하지 않도록 하였다. 배낭, 등산용 부츠, 챙 넓은 모자, 상의 반팔 두 장, 바지 두 장, 속옷 두 장, 양말 두 켤레, 우의, 재킷, 침낭, 수건 두 장, 샌들, 쿨토시, 약간의 비상약(밴드, 진통제, 영양제), 방수용 비닐봉지 여러 장, 손전등, 야외방석, 등산용 컵, 카메라, 카메라 충전기, 미니 무선키보드, 여성용품, 간식, 핸드크림, 선크림, 물휴지, 여권사본, 책 한권(마카리우스의 신령한 설교), 작은 성경, 일기장, 힙색, 스낵형 된장 등을 미리 준비하였고, 스페인에 도착해서 비누, 비누케이스, 샴푸, 치약, 모기약, 칫솔 등을 구입했다. 여기에 세빈이의 바이올린이 추가된 것이다. 
 
짐은 생각보다 단출하다. 이렇게 준비하면 배낭 무게를 합하여 7-8킬로그램 정도가 된다. 순례길에서는 순례자 자신 몸무게의 십분의 일 정도가 배낭 무게로서 적합하다고 한다. 사실 이 짐은 순례길에서 좀 더 무거워진다. 간식과 물이 더하여지기 때문이다. 걷다 보면 이 배낭을 끌어당기는 중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온 몸으로 깨닫게 된다. 그래서 순례자들 중에는, 출발하는 마을에서 도착할 다음 마을까지 배낭을 택시로 먼저 보내고 빈 몸으로 걸어가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한 번 빈 몸으로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 이들은 다시 짐을 짊어지기 쉽지 않다. 
 
▲순례 스물다섯번째날, 라바날 델 카미노에서 폰페라다까지 여정, 철십자가를 지나 해발 1400미터 고지를 넘는 순례자들의 발걸음.
▲순례 서른세번째날, 아르주아에서 라바코야까지 여정, 살세다 마을의 메송 라 에스키파-식사와 차를 하며 쉴 수 있는 바르Bar이다.

짐이 가벼워질수록 마음과 영혼도 가뿐해 진다. 동시에 짐이 어깨에서 무겁게 내리 누를수록, 내 삶의 짐이 얼마나 무거웠던가도 깨닫게 된다. 무거운 짐이 어깨에 있지만 벗어 버릴 수도 없고 계속 짊어질 수도 없는 인생의 딜레마 앞에 꼼짝 못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럼에도 나그네길을 가는 동안에는 어느덧 나는 짐과 하나가 된다. 무겁지만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다. 그리고 마을에 도착하면 우리는 그 무거운 짐을 벗고 안식한다. 무조건 짐을 벗어야 행복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순례길, 나그네길을 가는 동안 짐은 우리의 벗이요, 동무가 된다. 
 
그런데 그 짐에 욕심이 붙어 버리면 그 때부터 짐은 우리에게 고통이 되며 고약한 애물단지가 된다. 아내에게는 아내의 짐이 있고, 아들에게는 아들의 짐이 있고, 내게는 나의 짐이 있다. 야고보서는 이와 같은 교훈을 준다. ‘사람이 시험을 당하는 것은 각각 자기의 욕심에 이끌려서, 꾐에 빠지기 때문입니다.’(야고보서 1:14) 욕심이 커질수록 짐은 많아지고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이 되며 고통이 된다. 우리는 오늘 날, 이 짐을 너무 많이 마련했고, 그 짐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까미노는, 욕심을 버려야 어깨 위의 짐이 행복한 동반자가 되는 지혜를 조용히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사진제공= 이대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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