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데 산티아고(5)
▲스페인으로 데려다 준 네덜란드 국적의 K항공. |
▲항공기에서 내려다 본 바람의 나라, 네덜란드. 풍력발전기가 즐비하다. |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감사가 더덕더덕 붙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그 분의 뜻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아닌가? 까미노를 준비하는 과정, 걸어가는 일정, 여정을 다 마친 이후 일상의 삶 속에서도 끊임없는 감사의 사건들이 멈추질 않는다. 까미노 걷기를 통해 우리의 무디어진 감사가 회복되고, 작은 일에도 감격할 수 있는 은총에 대한 예민함이 살아난 것이다. 주님은 놀랍고 기이한 일을 우리의 첫걸음에서부터 만나게 해 주셨다. 사실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길CAMINO 어디서나 언제든지 신비한 선물을 이미 베풀고 계셨다.
우리 일행이 인천공항으로 가려면 강릉버스터미널에서 공항리무진버스를 타야 한다. 교회에서 주님 위해 충성을 다하는 P와 K권사님, 두 분이 터미널까지 배웅을 나섰다. 완전히 밝지 않은 새벽, 먼 길 나서는 목사의 가족을 격려하며 위로하고 기도하는 그들의 따스한 마음은 내 마음의 거룩한 기쁨이며 힘이다. 목사는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과 같다. 이 시대 수많은 목회자들이 흔들리고 있다. 말할 수 없는 아픔 속에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리며, 고독하고 외로운 길을 걷는 나약하고 상처 가득한 볼품없는 존재들이 한국 교회의 목회자상이다. ‘목사님, 아무 염려하지 말고 즐겁게 다녀오세요.’ 진심이 묻어 있는 아름다운 말에 나그네는 행복한 마음을 느끼면서, 손 흔들며 배웅하는 그들을 위해 복을 빌고 은혜를 간구한다. 바울 사도가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기도(빌1:3)하였던 것과 같이 주님께서 허락하신 교회와 성도들을 떠올리면 감사, 감사뿐인 것이다.
▲바르셀로나로 가기 위해 들린 환승공항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천재 건축가 안톤 가우디(1852-1926)가 설계하여 1882년부터 지금까지 짓고 있는 미완성 사그라다 파밀리아(성 가족)교회 탄생의 문인 동쪽 파사드. 그 웅장함과 독특함은 말로 형용할 길이 없다. |
새벽 6시, 강릉을 떠난 공항버스는 10시 15분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날씨가 쾌청하지 않고 구름이 잔뜩 끼었다.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바르셀로나로 가는(12시50분발) A항공사 체크인을 공항 D카운터에서 기다리는 중에 당황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우리가 타고 가야할 비행기가 연착이 되어 12시 50분에 출발하지 못하고 3시간 후, 15시 30분에 출발한다는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비행기를 갈아타려면 바르셀로나로 가는 비행기 시간보다는 적어도 2시간 전에 모스크바에 도착해야 한다. 그런데 환승대기시간이 3시간인 우리는 모스크바에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승객들 중의 몇몇도 당황하고 있는 듯 했다. 잠시 후, A항공사 직원들이 우리와 같은 사정에 처한 손님들에게 비행편을 변경해 주기 시작한다. 도착지까지 직항이 연결되는 파리나 런던 같은 구간은 모스크바 경유편인데도 불구하고, 직항으로 바꾸어준다.
우리가 가야하는 바르셀로나에는 직항 노선이 없다. 네덜란드의 K항공사로 변경해 주었는데, 암스텔담을 경유하는 항공편이다. 단순히 비교하여 보아도 항공권 가격에서 상당한 차이가 난다. 우리는 가장 저렴한 항공사를 골랐는데 주님께서는 더욱 훌륭한 조건을 허락해 주셨다. 모스크바를 경유하기로 계획하였는데, 풍력발전기가 가로수처럼 늘어 선 바람의 도시 암스텔담 상공을 날았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잠언16:9) 처음 걸음부터 우리의 계획과는 전혀 다르지만 선한 것으로 인도해 주신 은혜를 마음껏 체험하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수난의 문, 서쪽 파사드. 주님께서 잡히시는 날 뱀과 함께 한 유다의 간교한 입맞춤과 큐브 안에 마방진 숫자들, 주님의 고난받는 얼굴이 철문과 교차한다. |
▲사그라다 파밀리아 종탑에서 내려다보는 바르셀로나 시내전경, 프랑스의 장 누벨이 디자인한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건축물 아그바 타워가 보인다 |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일체감사’ 뿐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려는 주님의 선하신 뜻을 이와 같이 목격하였음에도 금세 잊어버리고 만다. 두고 온 교회와, K형님 댁에 맡겨 둔 두 딸을 염려하는 마음이 장마철 구름처럼 일어난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는 픽업 차량이 제 시간에 도착할까? 뜨거운 날씨로 인해 너무 힘들지 않을까? 예약관계, 식사나 숙소, 교통편 모든 진행은 순조로울까? 일어나지 않은 앞날의 일들에 대해서도 걱정과 고민이 끊임없이 생겨난다. 장시간 비행으로 인해 오른쪽 허리도 아파온다.
항상 주님의 뜻을 살피며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나는 아직도 부족하며 어리석음 가득한 어린아이이다. 성숙하고 진보한 삶으로 변화하려고 애를 쓰지만, 성령님의 은총 없이는 내 삶의 평강을 이루는 것이 어림 반 푼어치도 없음을 안다. 그 첫 번째 은총의 덕목이 감사라고 주님은 가르쳐 주신다. 그렇게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밤하늘이 내게 다가왔다.(사진제공= 이대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