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데 산티아고(6)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안톤 가우디가 설계하여 1882년부터 지금까지 건축중인 교회. |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 보이는 이쪽은 동쪽문[가우디 사이드]인데 매표소는 반대쪽 서쪽문에 있다. |
바르셀로나 공항을 빠져나가자, 깊은 밤 어둠을 밝혀주는 가로등을 따라 얼마간 간선도로를 달린 차량은 어느덧 우리를 숙소 인근에 내려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눈앞에 펼쳐진다. 굉장하다. 아직 한국에 머물러 있는지 떠난 것인지 분간치 못하는 감각을 한 순간에 너무나 강력하게 뒤집어 버리는 광경을 보고 만 것이다.
야트막한 건물들 사이, 잎사귀 무성한 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공원의 푸르름을 뚫고, 아름답고 기기묘묘한 첨탑과 조각들이 어둠을 뚫고 금빛 조명을 받으며 내 앞에 서 있다. 웅장하면서도 다정하고 거대하면서도 위압적이지 않은 놀라운 작품이 우리를 환영하고 있는 것이다. 감탄사가 이럴 때 필요하다는 듯이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늦은 8월 바르셀로나의 밤공기는 후끈했다. 흡사 한국의 여름 무더위와 닮아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묵게 될 민박집 젊은 여주인의 말에 의하면, ‘이렇게 덥거나 습하지는 않은데 이상하게 요 며칠 덥고 습하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원래 더울 듯’ 하다. 지중해의 바다 공기가 습윤할 것이고 작열하는 여름 태양의 뜨거움이 대지를 오죽 달궈 놓았을까? 민박집 여주인은 녹음기 재생테이프를 틀어 놓은 듯이 능숙한 어투로 숙소에 대해서 안내를 해 주었고,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온 긴장과 피로가 소설 속에 나올법한 세 평 남짓 공간 속에 뒹굴었다.
▲가우디의 건축물인 까사 바트요, 건물 제일 높은 곳의 십자가와 곡선으로 이루어진 외형의 신비스러움이 동화속으로 들어가게 하는듯하다. |
▲가우디가 설계한 까사 밀라[별칭 La Pedrera-채석장]의 독특한 옥상[테라스] 조각공원. |
침대 매트의 쿠션은 불규칙하고, 철 스프링은 오히려 거북할 정도로 쑥 들어가면서 철제의 마찰음이 짓이겨진다. 더위와 끈적임을 이길 방법은 없다. 옛날식 선풍기가 간신히 삐걱거리며 돌아갈 뿐이다. 이 숙소 3층까지 올라가는 계단은 두 사람이 서로 마주 지나칠 수 없을 만큼 좁으며, 낮 햇빛 속에 있다가 들어가면 빛과 어둠의 대비를 수정체가 반응하지 못하여 칠흑 같은 캄캄함에 잠시 멈추어 서서 전등을 켜야만 올라갈 수 있는 그런 구조이다.
숙소의 발코니 창문을 열면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들어온다. 천재 건축가 안톤 가우디가 디자인하고 직접 건축에 참여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드러낸 미완성의 작품이다. 1882년에 시작한 공사는 아직도 진행중이고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우디는 바르셀로나 구석구석을 자신의 손길로 창조했다. 화려하고 독특한 곡선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까사 바트요, 옥상에 설치한 조각 공원[마치 우주에라도 온 듯함]의 신비함이 가득한 까사 밀라, 형형색색의 화려한 모자이크로 몸을 감은 도마뱀이 주인처럼 지키고 있는 구엘공원 등이 그것이다. 그는 자신의 디자인을 자연에서 빌려 온다. 염소해골, 옥수수, 바다고둥, 나무의 줄기, 잎사귀, 사람의 뼈 모양 등 자연과 조화하려고 하였고 자연에 집중하였다.
▲구엘공원의 옥상 전망 공간의 난간을 따라 길고 긴 모자이크 벤치로 연결되어 있다. |
▲가우디의 디자인으로 설계된 구엘공원의 모자이크 도마뱀. |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이다. 한 사람의 영향력이 도시 전체를 지배한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이다. 바울 사도는 한 사람의 영향력을 이렇게 나타낸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을 것입니다.’(고전15:22) 도시를 창조하고 아름다움을 입히며 사람들의 삶을 즐겁고 유쾌하게 해 주었으며, 주님을 향한 거룩한 마음을 끊임없이 표현하며 살다가 어느 날 저녁기도 가던 길에 전차에 치여 세상을 떠난 가우디가 전해주는 감동은 오늘까지 바르셀로나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가우디가 디자인한 모자이크 도마뱀의 입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는 더운 여름 바르셀로나의 열기를 견디게 하는 청량제가 되어 준다. 시끌벅적한 하루를 마치고 가끔 컹컹 개짓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아늑한 밤이 되면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신성함은 흩어진 마음을 모으게 한다.
한 사람으로 인해 죽음이 전파되고, 한 사람으로 인해 생명을 얻기도 한다. 한 사람의 사는 길, 그가 걸어 간 길은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메아리가 된다. 밤 기온 섭씨 33도,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른다. 한낮의 뜨거움은, 입고 있는 옷을 뚫고 들어와 쏘는 침과 같이 따가움을 느끼게 한다. 출국 전 시작된 아내의 육체적 연약함이 쉽게 물러가지 않는다. 그렇게 한 사람, 가우디를 바르셀로나에서 만났다.(사진제공= 이대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