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평생 낮은 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던 김수환 추기경이 우리 곁을 떠났다. “받은 사랑이 많은데 다 갚지 못해 바보스럽다”며 스스로를 ‘바보’라고 일컬었던 그는 평생을 그렇게 자신을 낮춰 소외받고 고통받는 이웃들과 함께 했고 또 사랑했다.
교황장으로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미사가 드려진 20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은 1만여명의 추모객들로 인사인해를 이뤘다. 미사가 열리기 20분 전부터 대성전과 별관은 추모객들로 가득찼고, 안으로 채 들어가지 못한 추모객들은 가톨릭회관 앞 광장과 명동성당 대성전 부근 야외에서 대형스크린으로 방송되는 미사예식을 보면서 고인을 추모했다.
오전 10시 정각 예식을 알리는 입당 성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가 불려지자 추모객들은 일제히 고인을 기리며 성가를 따라 불렀고, 그를 위해 기도했다. 예식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드려졌다. 바깥의 추모객들은 살을 에는 영하의 추위와 황사 먼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1시간 40여분 간의 미사예식이 다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정진석 추기경은 강론에서 “김 추기경께서는 항상 우리 사회의 큰어른으로서 빛과 희망이 돼주었다”며 “가톨릭 신자 뿐 아니라 모든 한국인의 ‘사랑과 평화의 사도’였다”고 김 추기경을 기억했다.
“노환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미소와 인간미를 잃지 않았다”고 김 추기경의 마지막 모습을 전한 그는 “‘세상에서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라는 마지막 말씀을 남겼다. 김 추기경님의 뜻을 마음에 새기고 본받아 감사하고, 사랑하고, 용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딜랴 주한 교황청 대사는 고별사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항상 낙천적이고 기쁜 모습을 보여줬던 참 신앙인이셨으며, 당신의 전생애와 영면을 통해 당신이 참된 하느님의 사람이었음을 보여주셨다”며 김 추기경을 기렸다.
강우일 주교는 “김 추기경께서는 연세가 많아진 다음 도저히 빚을 갚을 길이 없음을 알고 요모양 요꼴이라고 탄식하며 자신에게 ‘바보야’라고 말하셨다”라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분명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어서 오너라. 내 사랑하는 바보야. 그만하면 다 이뤘다.’”
오후 12시. 조용하고 경건하게 예식을 지켜보던 추모객들은 모든 미사예식이 끝나고 김 추기경의 관이 운구차에 실려 명동성당을 떠나는 순간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목놓아 울었다. 추모객들은 젖은 눈으로 떠나는 운구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추기경님 안녕히 가세요. 사랑합니다”라고 작별 인사를 건넸다.
고 김 추기경은 이날 오후 하관식을 거쳐 경기도 용인 성직자 묘역에 안치됐다. 사목 표어인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와 그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성경구절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가 묘비에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