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현장스케치] 전병욱 목사 면직, 또 멀어져

면직 미뤄질수록 피해자 치유 더뎌짐 인식해야

 ▲<전병욱 목사 성범죄 기독교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12월18일(목) 오전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지유석 기자

2014년 세밑, 교계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전병욱 전 삼일교회 담임목사의 면직여부다. 지난 10월에 전 목사에 대한 치리권을 가진 예장합동 평양노회(노회장 강재식 목사, 이하 노회)는 그의 면직을 다룰 재판국을 설치하기로 결의했다. 전 목사의 성범죄가 불거진 지 4년만의 일이었다. 교계 안팎에선 노회 결정이 전 목사 문제를 정상화할 첫 단추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조심스럽게 제기됐었다.   

만 3개월이 지난 지금 그 기대감은 배신감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재판국은 당초 시한인 한 달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면직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전 목사는 혐의를 대부분 부인했고, 맞불 고소전을 예고했다.    
이를 보다 못해 기독교 시민단체가 나섰다. 온라인 카페 <전병욱 목사 진실을 공개합니다> 등 7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전병욱 목사 성범죄 기독교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12월18일(목) 오전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가진 것이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전 목사 면직을 미루는 노회를 강력히 성토했다.   
▲『숨바꼭질』 공동 편집자인 권대원 씨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숨바꼭질』 공동 편집자인 권대원 씨는 “노회는 피해자는 안중에도 없는 듯 보인다”고 말문을 열었다. 권씨는 “노회가 정치적 계산 때문에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불쾌하다. 왜 결정을 미루는지 궁금하다. 피해자가 여러분들의 딸 혹은 가족이라면 그럴 수 있는지 묻고 싶다”는 심경을 표시했다.    
전 목사 사건의 핵심은 피해자의 치유다. 이를 위해 삼일교회는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와 협약을 맺고 피해여성들의 사례에 대한 접수 및 상담을 의뢰했다. 이곳에서 피해자 상담을 담당한 고미경 소장의 발언은 충격적이었다. 고 소장은 “전 목사의 성폭력 피해는 가늠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녀는 “피해자들이 전 목사의 성추행에 노출된 기간은 짧게는 2개월에서 7년에까지 이른다. 그럼에도 접수된 사례는 많지 않았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피해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밝혔다.   
고 소장은 피해자들의 심경에 대해 “피해자들이 전 목사가 목사 신분을 그대로 유지한 채 설교를 한다는 점, 그리고 그의 성추행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가 개척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에 가장 분노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고 소장에 따르면 노회는 피해자의 아픔을 어루만지는데 소홀해 보인다. 고 소장은 재판국 분위기에 대해 “일반 사회법정에서는 성폭력에 대한 편견이 강하고 이 같은 편견이 합리성이라는 명분으로 합리화된다. 즉, 성(Gender)에 대해 남성의 시각에서 바라보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를 노회 재판국에서도 똑같이 느꼈다. 전체적으로 어느 쪽에도 치우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인상이 강했다”고 전했다.   
▲전병욱 목사 성범죄 피해자를 상담한 고미경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고 소장은 이번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사실 하나를 공개했다. 전 목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가 재판국원을 만나 피해사실을 증언했다고 밝힌 것이다. 피해자는 안전을 이유로 고 소장이 배석한 가운데 모처에서 재판국원을 만나 증언했다고 고 소장은 전했다. 고 소장은 이 사실을 공개하면서 “피해자들이 재판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며 재판일정 지연에 아쉬움을 표했다.    
전 목사 맞불소송 엄포, 현실로 드러나   
한편 전 목사 측은 맞불소송을 예고한 바 있었다. 그의 예고는 현실로 다가왔다. 『숨바꼭질』의 공동편집자이며 온라인 카페 <전병욱 목사 진실을 공개합니다>의 운영자인 이진오 더함공동체 목사는 17일(수)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홍대새교회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알려왔다.   
▲『숨바꼭질』의 공동편집자이며 온라인 카페 <전병욱 목사 진실을 공개합니다>의 운영자인 이진오 더함공동체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이 목사는 전 목사 측의 고소를 “교회법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라고 규정했다. 이 목사는 “현재 재판국이 4차 모임까지 열렸다. 임시 노회가 열리면 전 목사는 면직 가능성이 높다”면서 “그가 법적 조치를 단행한 이유는 단 하나, 사회법을 통해 교회법을 무마시키려는 시도인 것이다”고 일갈했다.     
이 목사는 “법적 조치에 대해선 책임 있게 응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현행법상 사실을 적시해도 명예훼손은 성립한다. 그러나 유무죄를 떠나 전 목사의 성범죄는 정확한 실체를 다퉈보는 일이 필요하다. 유야무야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 목사에 따르면 전 목사는 수 명에 대해 법적조치를 취했다고 했다. 그 윤곽은 곧 드러날 전망이다. 이 목사는 “고소인들을 모아 공동대응할 것이다. 또 온라인 서명페이지를 만들어 이 문제가 전 목사 쪽과 피고소인 사이의 분쟁이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라는 인식을 확산시킬 방침”임을 밝혔다.   
▲공대위 측 구교형 목사(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장)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기자회견은 공대위 측 구교형 목사(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장)가 노회에 조속한 면직결정을 촉구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구 목사는 “피해자까지 증언에 나섰다. 얼마나 많은 증언이 필요한가? 현재까지 확인한 사실대로 정확히 판결을 내려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어 “서울대 강 모 교수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전 목사는 구속 수사가 맞다. 전 목사에 대한 처리상황은 종교특혜다”라면서 “종교적 특수성이 죄를 가리는데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교회를 살리는 첫 단추는 전 목사의 면직이다. 만약 이 같은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전병욱 사건은 언제든 불거질 것이고 그러면 한국교회의 위상은 계속 실추되어 결국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언급했듯 공대위 기자회견의 초점은 노회로 집중됐다. 그러나 노회는 여전히 결정을 미루는 모양새다. 재판국의 A 목사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재판은 진행 중이다. 현재로선 아무런 구체적인 일정이 정해진 바 없다”고만 언급했다.   
저간의 사정을 종합해 볼 때, 전 목사의 면직 건은 해를 넘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런 상황은 결국 피해자의 상처 치유에도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와 관련, 고 소장은 “피해자들은 법을 포함한 사회정의가 가해자에게 정당한 처벌을 할 때 자신의 피해를 사회정의가 공감해준다고 느끼게 되며 이를 통해 피해자는 치유된다고 보여진다”면서 “전 목사는 목사 면직은 물론 노회 차원에서 재발방지 대책이 마련돼야 이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노회가 귀담아 들어야 할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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