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한국교계, 수오지심 회복해야 성찰과 회개가 가능”

문화신학자 김경재 교수 인터뷰(下)

문: 목회자와 평신도들 간의 소통과 교회와 사회의 소통이 현재의 교계의 상태를 갱정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왕 소통을 언급하셨으니까 교수님께서 전공하신 문화신학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화신학도 따지고 보면 소통을 강조하는 분야이지 않습니까?  

▲문화신학자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사진=이인기 기자
김: 말씀하신대로 문화신학을 다른 말로 하면 ‘소통의 신학’이에요. 틸리히가 그렇게 말했어요. 문화라는 개념이 이제 너무나 통속화되어버리고 일반화되어서 상황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겁니다. 상황이나 문화는 틸리히의 표현으로는 인간이 자기 자신의 실존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자기 실존 이해’이지요. 정치적 상황이 위급하다, 경제 상황이 어렵게 되었다는 등의 현상학적인 표현이 아니고, 그렇게 어려운 경제 사정이나 정치 위기 속에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의미합니다. 문화는 인간의 자기해석이거든요.    
그런데 기독교 신학은, 인간이 스스로 자기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만 가지고는 답이 없으니까, 진리의 소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혹은 성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인간의 자기이해인 상황 내지 문화와 조우할 때 진정한 리얼리티가 나온다고 봅니다. 상황이 없는 계시는 순수하고 영원할지는 몰라도 아직 현실태가 아닌 것입니다. 그건 이데아의 세계지요. 이것을 무시한 상황엔 답이 없지요. 그러므로 끊임없이 부딪치고 서로를 상호조명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계시 자체는 없습니다. 이해되고 해석되고 받아들여지고 응답된 계시가 있을 뿐이지. 계시 자체는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인데, 그 해석학적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가 이해한 것이 곧 하나님의 머리속에 들어간 것과 순도 100% 같다고 주장하니까 위험한 것입니다. 잘못하면 하나님과 동등해지려고 하거든요. 복음이 상황과 소통하는 것을 막을 때 이런 사태가 벌어집니다. 문화신학은 이러한 소통을 천착하지요. 
문: 소통은 일단 독단주의가 개입하면 불가능해지는데 현재 한국교회의 소통 불능도 모종의 독단주의 때문일 수 있겠습니다. 계시와 상황의 소통 속에서 참의 소리를 들을 수 있듯이, 지성과 감성이 아우러질 수 있는 것도, 목회자와 평신도가 대화할 수 있는 것도 독단적 태도를 포기할 때 가능한 일이겠지요.   
김: 방금 말한 대로 지성사회에서는 해석학적 존재로서의 인간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씨름하거든요. 그걸 알아야 자기의 책임도 알고 한계성도 아는 겁니다. 그런데 그걸 모르니까 독단주의가, 목소리 큰 놈이, 머릿수 많은 놈이 진리 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개신교가 발생한 이후 16, 17세기의 거성들이 사라진 다음에 그 거성들의 가슴 속에 불타고 있었던 종교개혁적 영성이 식으면서 소위 개신교 정통주의라는 게 생기거든요? 프로테스탄트 스콜라시즘이라는 것이 형성되지요. 그게 장로교 계통의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 등 교리화되고 신학화되면서 교조적이며 독단적인 권력의 양상을 띠게 되었던 것입니다. 
문: 교수님께서는 교회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실 때, 루터, 칼빈 등이 산에 가서 큰 거목을 찍어서 제재소까지 가지고 온 역할을 했다면 그 이후에는 톱으로 켜고 대패질해서 가구를 만드는 일이 진행되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재소에 온 목재만으로는 가구나 건물을 짓지 못하기 때문에 이후의 가공이 필요하게 된 셈인데 그것이 교회가 나름의 전통과 체제를 세우기 위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교수님께서도 전통과 체제를 세운 것 자체가 독단주의나 배타주의로 매도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실 것인데, 교회사에 있어서 소통불능은 왜 생긴다고 보십니까? 
▲문화신학자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사진=이인기 기자
김: 맞습니다. 목재만 가지고 곧바로 건물을 지을 수 없지요. 하지만, 건물을 짓는 과정과 건물이 지어졌을 때 배타적인 영역이 생기는데 그 영역에 골몰하게 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예를 들면, 17세기가 지나면서 정치적으로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사회 정치 경제의 토대가 다 무너졌거든요. 역사 속에서 계몽주의가 저질렀던 잘못과 공헌이 무엇인가를 분별해서 가려 볼 수 있어야 무조건 믿기만 하면 된다는 소리를 함부로 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과 상황이 함께 걸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낭만주의, 마르크스, 심층심리학, 생의 철학 등의 관점에서도 기독교를 고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온 개신교와 세계 그리스도교의 조류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등도 이해해야 합니다. 이러한 소통이 전제되지 않으면 기독교는 건물 속의 종교에 불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마르크스, 레닌을 거론하면 머리에 뿔 달린 좌빨, 종북으로 몰아붙이는 세상이니깐 마르크스, 레닌은 그만두더라도 초기의 청년 마르크스의 가슴에 불탔던 사회주의의 순수한 정열을 이해하지 못하면 통일이 어려워요. 소위 흡수통일을 모두가 꿈꾸고 있지만, 아무리 실패한 북한이라도, 실패했죠 저것은 사회주의라고도 볼 수 없어요, 본래의 그 조상들의 맨 뿌리 속에는 사회주의적 이념으로 불탔던 순수한 불꽃이 있었으므로 그것을 인정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무산계급의 자유와 해방에 대한 열망을 이해하고 사회주의가 그동안 세월 속에서 겪어 왔던 이념적인 자기 성찰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면서 통일의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소통은 균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소위 프랑크프루트학파의 하버마스, 아도르노 등으로 이어지는 풍요로운 사회비판 철학의 담론입니다. 
저는 제가 죽기 전에 대한민국 여권을 받아서 평양을 정정당당하게 여행할 수 있는 정도로만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일 고통스러운 것이 실존적으로 말하면 대한민국 헌법을 그대로 놔두고 우리가 자기 정체성에 모순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헌법에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한다고 명시해두고 있는데, 이것은 북한이 남조선을 해방시키겠다고 공포하는 것이나 다르지 않아요. 일단 유엔에 가입해서 두 국가가 형성된 이상 헌법 제1,2조 국토영역은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통일이 돼서 다시 개정하더라도. 이러한 자기모순이 어디 있어요? 한반도 전체가 대한민국 영토라고 했으면 북한의 입지는 어딘가요? 유엔에 가서 동등하게 국가로서 행사하면서 왜 한 나라의 모법인 헌법에서는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 거지요? 이런 자기모순의 백성이 어디 있습니까? 소통이 안 되는 전형적인 사례가 이런 것이지요. 예수께서 소경을 고치시고 난 뒤에 바리새인더러 일러주신 말씀이 이 경우에 꼭 들어맞아요.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요9:41). 독단에 빠지면 이런 비판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실상을 볼 눈이 없는 것이지요. 
문: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소통의 개념에는 자기성찰의 의미가 많아 보입니다. 
▲문화신학자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사진=이인기 기자
김: 우리 크리스천들이 감수성을 가지고 회복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수치감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측은지심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글 하나 썼지만, 그에 못지않은 것이 수치심이지요. 수오지심은 유가의 인간학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심성 중의 하나이잖아요? 그 때 수치감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의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통제하지 못하게 될 때 생기는 감정인데, 영어로 표현하면 인테그러티(integrity)가 깨지는 아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야단을 쳐서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도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할 때는 양심의 고통을 느끼게 되잖아요? 교계 지도자들의 행태나 고소고발이 남발되는 사태나 모두 크리스천으로서 수치심을 상실한 행위들입니다. 
깨어있는 지성으로서 살려고 하는 사람은 나를 비롯해 모든 사람이 정말 살맛이 안 나는 거야. 부끄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무능력과 자괴감 때문에 가슴을 치고 한탄을 하고 싶기도 하고... 그런데 무슨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 앞과 세상 사람들 앞에서 크리스천으로서 살지 못한, 부끄러움을 모르는 안하무인이 되어버렸다는 통렬한 자기 성찰과 회개 운동이 일어나지 않으면 교계의 무수한 연합단체들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런 단체가 없었을 때도 교회는 있었고 신학도 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자기 성찰과 회개입니다. 이것은 해를 거듭하더라도 늘 진리입니다. 
문: 오랜 시간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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