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인터뷰] “신학은 자기 고민에서 나온 학문”

원로 역사학자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인터뷰 2부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의 서재. 책장에 각종 역사 연구서적들이 빼곡히 자리잡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이로 말미암아 감히 말하는 자가 없어졌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최근 낸 산문집 『잊히지 않는 것과 잊을 수 없는 것』에서 현 시대를 향해 외친 외침이다. 현 시대 상황은 가히 단군 이래 최대 위기라 할만하다. 4대강 사업으로 국토의 물줄기가 신음하고, 남북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닫는데다 지성의 전당인 대학이 취업학원으로 전락하는 와중인데,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는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만 급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목소리를 내는 지식인은 소수다. 대학은 정부 지원금에 눈 어두워 대학 자율성을 내던졌고, 대학생들은 취업에 전념한 나머지 부조리한 사회에 대해 목소리를 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기독교는 그들만의 종교로 전락해가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을 개탄해서인지 이 교수는 거침없이 사자후를 토해냈다. 먼저 장로 대통령의 실정, 그리고 곧 5주기를 맞는 천안함 사건 등 민감한 주제에 대해 자신의 소견을 밝혔다.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에 대해선 언론에 보도된 내용밖엔 알지 못한다. 이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식으로 기독교인임을 드러냈었다. 이에 기독교계는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그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선거 당일 기독교인은 그에게 몰표를 주다시피 했다.  
그렇기에 이 전 대통령은 기독교적 가치관에 입각해 나라를 다스려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도리어 신앙과 직위를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이용했다. 한 마디로, 이명박 정권은 사악한 정권이었다. 여기서 사악한 정권이란 규정은 ‘○○정부,’ ‘△△정부’ 하는 식의 정치학적 수사가 아니다. 내가 말하는 ‘사악한 정권’은 이명박이라는 사람이 장로였으며, 기독교계의 뒷받침을 받은데 대한 종교적인 관점에서의 정의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추진한 4대강 사업에 이어 자원외교, 방위산업비리, 전시작전권 등의 문제까지 따끔하게 꾸짖었다. ⓒ사진=지유석 기자
한 번 생각해보라. 이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었고, 통일에 대한 희망을 없애버렸다. 또 거짓말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 단적인 예로, 천안함 사건의 진실은 현 정권 하에서는 드러날 수 없다. 무엇보다 천안함 관련 정부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 기술적인 면은 차치하고라도, 북한 잠수정의 공격으로 해군함정이 침몰했고, 46명의 장병들이 전사했다면, 함장부터 시작해서 서해 방위를 맡고 있는 해군·해병대 책임자를 문책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 사건과 관련해 그 어느 누구에게도 정치적 책임을 묻지 않았다. 지난 해 초 한바탕 논란이 됐던 북한 무인기도 마찬가지다. 북한 무인기라는 사실을 믿게 하려면 관련 책임자를 문책했어야 했다.”    
이 교수의 질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이 사실상 ‘올인’하다시피 추진한 4대강 사업에 이어 자원외교, 방위산업비리, 전시작전권(전작권) 문제까지 따끔하게 꾸짖었다. 특히 전작권을 입에 올리면서 그의 어조는 더욱 매서워졌다. 그런데 그의 어조 한켠엔 지식인으로서의 서글픔도 느껴진다. 
“기술적인 문제는 잘 모른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시행하면서 수 천 년에 걸쳐 이어 내려온 자연을 파괴했다. 이에 대한 죄과는 반드시 물어야 한다. 자원외교, 방위산업비리는 현재 조사에 착수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썩어빠진 정권이라 방위산업 관련 비리는 얼마든지 나오리라 본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무엇보다 "이 전 대통령은 장로대통령으로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면서 "외교권보다 훨씬 더 중요한 국방권을 미국에 헌납했다"고 지적했다. ⓒ사진=지유석 기자

그뿐만이 아니다. 이 전 대통령은 국방을 미국에 의지했다. 이로 인해 미국 무기를 사들여야 했다. 한미 양국이 내밀하게 나눈 이야기까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지난 1905년 체결된 을사늑약을 생각해보라. 이완용 등 이른바 ‘을사5적’의 강제에 의해 조선은 외교권을 빼앗겼다. ‘늑약’이라고 한 이유는 강제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 전 대통령은 외교권보다 훨씬 더 중요한 국방권을 미국에 헌납했다. 현 정부 역시도 전작권 환수를 사실상 무기한 연기시켰다. 이 전 대통령은 장로대통령으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했다. 그럼에도 언론과 지식인들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런 이유로 나 역시 산문집에서 ‘감히 말하는 자가 없어졌다’고 적었다. 수치스럽다.”  
한국교회여, 낮은 자리로 내려오라 
이 전 대통령의 일련의 실정으로 인해 한국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싸잡아 비판받고 있다. 기독교계 전체가 증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건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다시 한 번 ‘십자가’ 복음을 끄집어낸다.   
“기독교인들이 십자군적인 발상, 즉 ‘기독교를 믿기만 하면 그 어떤 행동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타종교를 대할 때도 이런 사고로 대한다. 사찰에 난입해 불상을 훼손하거나 땅밟기 같은 야단을 벌이는 건 단적인 사례다. 
그러나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다.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한다는 의미다.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써 용서와 화해를 이루고, 상대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기독교인데, 정복을 통해 이를 이루려는 사고가 팽배하다. 특히 무슬림과의 관계 정립이 쟁점으로 떠오를 텐데, 그래서 기독교의 십자군적 사고는 우려스럽다. 무슬림이 좋아서가 아니다. 출산율 저하로 앞으로 20년 후 외부에서 1,000만 명의 인구 유입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이들 인구가 중국이나 일본에서 올 것인가? 그럴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자칫 영토를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남아에서 이주해야 하는데, 동남아는 이슬람의 영향권이다. 참으로 걱정스럽다. 
교회가 낮은 자리로 내려와 섬기는 자세로 자기변신을 꾀하지 않으면 더 이상 소망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참으로 걱정스럽고 안타깝다.”
▲인터뷰에 배석한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좌)와 본지 이인기 편집국장(우). ⓒ사진=지유석 기자

이 교수는 단지 한국교회 상황을 걱정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그보다 자기 신학을 가지라고 주문한다. 이런 주문은 산문집 『잊히지 않는 것과 잊을 수 없는 것』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이 교수는 현장에서 나온 고민들을 신학화할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한국 신학은 미국에서 들여온 미국신학이다. 해방 이후엔 독일 신학이 직수입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신학은 학문이다. 학문은 어디서 나와야 하는가? 자기 고민에서 나와야 한다. 자기 고민은 현장 속에서 나타나는 고민이다.  
어렵게 말하고 싶지 않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을 조리 있게 풀어 가는가?’에 대한 고민이 바로 신학이다. 미국, 독일의 신학은 이런 바탕에서 축적된 것이다. 칼 바르트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기독교 국가들이 서로 싸우는 참상을 보면서 자신의 신학을 형성했다. 한편 라인홀드 니버의 신학은 미국이 자본주의화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기계의 노예가 되는 현상을 자양분으로 해서 나온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일제 식민지를 겪었고, 현재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반성적 신학이 전혀 없다. 지금 신학은 외국 것을 수입해서 퍼뜨리는 데 불과하다. 이런 신학이 한국교회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겠는가? 자기 고민이 없는데. 우리 신학계가 원리적인 면에서 현상을 고민하고 신학화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3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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