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역사학자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한국교회에 대한 애정 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사진=지유석 기자 |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할 차례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한국교회에 대한 애정 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 교수는 청빈의 덕목을 누누이 강조했다.
“한국교회를 볼 때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문책할까 두렵다. 예수께서 오죽 답답했으면 성전의 좌판을 뒤엎으며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도다’(마태복음 21장 13절)라고 하셨을까? 예수께서 한국교회를 두고 똑같이 책망하실 것 같다.
무엇보다 한국교회가 가난해졌으면 좋겠다. 예수께서 부자청년에게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신 말씀을 새겨들었으면 좋겠다. 지금 한국교회는 큰 부자다. 말하자면 이익집단화, 시장화, 권력화됐다는 말이다. 한 번 살펴보라. 최근 불거진 목회자들의 비리는 주로 성과 돈에 얽혀져 있다. 특히 돈과 관련된 비리가 계속 불거지는데, 이런 현상은 교회의 권력화와 깊이 관련돼 있다.”
교회의 청빈을 이루기 위해선 어디에서 첫 단추를 꿰어야 할까? 이 교수는 지역사회와의 밀착에서 해답을 찾았다. 앞서 이 교수는 한국교회에 자기신학의 부재를 언급했었다. 결국 한국교회는 우리가 밟고 있는 한국 땅에 뿌리내리고 자기신학이란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지적인 것이다.
▲이만열 숙명예대 명예교수는 이제 한국교회가 우리가 밟고 있는 한국 땅에 뿌리 내려 자기신학이란 열매를 맺어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사진=지유석 기자 |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부평초처럼 마냥 떠 있다가 엉키면 큰 교회가 되거나 아니면 물살에 휩쓸려 내려가거나 둘 중 하나다. 그보다 지역주민의 삶과 밀착된 풀뿌리 작은 교회가 대안이라고 본다. 교역자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성도수는 200명에서 300명 선이다. 이 정도 규모의 교회를 실천하지 않으면 한국교회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일전에 故 옥한흠 목사 관련 좌담회에서 참석했는데, 이 자리에서 고인이 메가처치를 지향한데 대한 아쉬움을 표시했었다. 즉 신도 5만의 교회가 아니라 500명이 모이는 교회 100개를 만들면 훨씬 건강한 교회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말이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 시기가 벌써 10년 전이다. 그런데 당시엔 잘 먹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5~6년 전부터 작은 교회 운동이 일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민주화 에너지가 산업화를 일궈내
지금 우리 사회는 여러모로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정치권은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이 사리사욕 채우기에 바쁘다. 고위공직자들의 부패와 성적 윤리 문란은 위험수위에 육박했다. 특히 국가방위에 쓸 무기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군 고위 장성들의 부패는 이들의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폭로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다. 보수 정권이 집권하면서 대통령은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고, 국가기관은 대통령의 심기를 챙기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런 위기상황은 현 정권 들어서서 더욱 노골화 돼 인터넷, 특히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조금이라도 정권의 심기를 건드리는 게시물이 올라오면 검경이 출동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흔히 해방 후 한국역사에서 산업화를 민주화에 앞세우는 것에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사진=지유석 기자 |
이 교수는 이런 상황에 개탄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이 대목에서 이 교수는 한국현대사를 보는 관점을 과감히 역전시킨다.
“나는 4.19세대다. 대학교 4학년 때 4.19를 경험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했다. 지금이야 ‘자유’니 ‘민주주의’니 하는 낱말들을 공개적으로 입에 올릴 수 있었지만 당시엔 어림도 없었다.
흔히 해방 후 한국역사는 산업화를 민주화에 앞세운다. 무슨 뜻이냐면 산업화가 이뤄지고 나서 민주주의가 나왔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는 어불성설이다. 4.19를 통해 민주화의 토대가 확립됐고, 이 과정에서 산업화의 에너지가 축적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포학한 유신정권을 뚫고 나간 힘도 4.19를 통해 일어난 민주화의 에너지였다.
북한을 보라. 북한은 1970년대까지 국민총생산(GNP)이 한국보다 우위에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혁명적 열기를 일으킨데 따른 결과였다. 그러나 1970년대 김일성 일인 독재체제가 공고화되고 우상화가 이어지면서 경제가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니 민주화를 통해 산업화가 이뤄진다는 확고한 역사관을 가지기를 당부한다.”
여러모로 어려운 시절이다. 특히 젊은이들의 어려움은 심각하기 그지없다. 이 교수 역시 젊은이들의 어려움에 많은 연민을 표시했다. 이 교수는 “하나님 나라의 의를 먼저 구하라”는 말씀으로 젊은이들을 격려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3포 세대 아니, 4포 세대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며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권면했다. ⓒ사진=지유석 기자 |
“요즘 젊은이들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 여기에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하는 ‘4포 세대’니 하면서 희망이 전혀 없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어디에서 희망을 가져야 할까?
성경을 보면 예수께서 ‘공중의 나는 새를 보라, 너희 하나님께서 기르신다’고 하셨고, ‘백합화를 보라,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약속했다. 먹고, 입고하는 것 등은 경제적인 문제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경제에 앞서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하라고 했다. 이렇게 하려면 제도도 바꾸고 혁명도 해야 한다.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실의에 빠져 있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기를 권면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