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에 선포된 '헌금 없는 주일' 운동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운동을 주도한 높은뜻정의교회의 오대식 목사의 생각대로 이 운동은 교회에 돈이 없어도 선교와 구제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며 또한 그 과정에 교인들 개개인의 신앙을 성숙하게 만들고 '헌금 내는 기계'가 아니라 주체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생활을 하도록 그들을 훈련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 목사도 설교의 말미에서 자신이 솔선수범하여 아파트 청소 아주머니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얼마간의 돈을 드린 일의 감동적 의미를 설명했으니 아마도 다음 주일(1월17일)은 많은 감동이 흘러넘치는 날이 될 듯하다.
이 운동은 표면적으로는 교회가 한 주일의 헌금을 포기하고 그것으로 사회를 섬기는 일을 선택한 행위와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선포된 취지대로 이 운동은 교인들로 하여금 복음의 산증인이 될 기회와 신앙훈련의 장을 제공하는 심층적 의의가 있다. 교인들도 복음대로 살고 싶어 하는 열정이 있다는 사실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또한 한 교회의 복음적 운영에는 지도자의 영성이 여전히 큰 영향을 깨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이 운동에 대한 오 목사의 설명에 장로님들의 흔쾌한 동의가 뒤따랐으므로 교인들도 흔쾌히 이 운동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운동은 선교와 구제를 행사의 일환으로 실시할 것이 아니라 생활화할 것을 요구하는 의의가 있다. 매일의 일상생활 속에서 복음을 실천하게 하는 단초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운동은 재능의 기부나 시간 및 땀의 헌신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 운동이 한국교회에 안착되어 그간 헌금 없이는 사역도 없다는 태도를 보였던 교계의 풍토를 일신할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두 가지만 당부하고 싶다. 물론, 오 목사도 설교를 통해서 이것을 암시하기는 했지만, 다시 구체적으로 언명함으로써 교인들이 보다 분명한 안내를 받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교인들은 이 운동에서 사용될 '정의헌금'이 먼저 하나님께 봉헌되었기에 하나님의 돈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것이다. 비록 자신의 손에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돈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것이다. 그런 인식과 고민을 품고서 사회로 나감으로써 이 운동이 교회와 사회를 새롭게 하는 역할을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선, 교인들은 그 헌금을 시혜하듯이, 베풀 듯이, 도움의 대상들에게 건네서는 안 된다. 시혜자가 되는 순간 시혜의 공적은 자신의 명예로 환원되고 말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돈으로 자신의 명예를 사는 행위에 해당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도움 받는 사람들이 자신의 형제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들을 계속 사랑해야 한다. 그랬을 때 그들의 입장과 처지에서 그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천사를 대접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물론, 이것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기대하라는 것이 아니라 형제에게 사랑을 베푸는 그 자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간증하는 의미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히13:1-3).
그리고 교인들은 도움을 주는 것과 동시에 그들에게 교회에 나오라고 권해서는 안 된다. 복음을 돈과 함께 전달하게 되면 도움을 받은 그 사람은 어느 순간엔가 복음을 돈과 동일시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 시민들 가운데서도 스스로를 사회구조의 유기체적 관계망의 일부로 인식하고서 자금을 희사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도 하지만, 복음은 그러한 자선의 차원을 넘어서서 영혼 구원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해야 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교인들은 그리스도가 머리인 몸의 지체로서 그분의 명령을 순종하는 차원에서 형제를 사랑하고 그것도 지속해서 사랑하는 일에 집중하면 된다. 그 일이 복음을 연상시키게 되는 것은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다. 이것은 교인들이 복음을 생활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그것의 산 증인이 될 때 실질적인 파급력을 갖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