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조우 맥키버(Joe McKeever)는 최근 크리스천포스트에 기고한 정기 칼럼에서 "신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더 것들에 대해서 10가지 항목을" 제시했다. 그는 50년전의 상황에서 그러했다고 부연하고 있지만 오늘날에도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 많아 전문을 번역해 나눈다.
한 목사 친구가 『신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들』이라는 책을 썼다. 나는 그 책의 표지와 속지의 만화까지 그려줬는데, 그 만화는 그가 원한 만큼의 분별력을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설교자들은 자신들이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던 것과 배웠어야 하는 것 등에 관해서 항상 이야기한다. 현재 신학교의 과목들은 졸업생들이 그 필요성을 주장했던 것들이다. 우리 신학교 석사학위 졸업생들 모두가 요구했던 과목, 즉, 동창생들의 요구가 직접 반영된 과목은 <대인관계론>이다. 나도 몇 차례나 그 과목을 가르쳤다.
그러면, 신학교가 학생들의 미래 사역을 위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모든 것들을 가르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선적으로 지적해보자. 신학교가 하는 일은 학생들로 하여금 현실에서 닥치게 될 어떤 문제이든지 직면하게 할 기본적 소양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결국은 성령께서 그들 각자와 동행하면서 가르치고 일러주고 안내해주시는 것이다.
그렇다. 대부분의 목사들처럼 나도 할 말이 몇 마디 있다. 오늘 생각에 떠오르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신학교에서는 교회 재정에 대해서 한 번도 가르치지 않았다. 나는 교회예산을 어떻게 짜며 어떻게 늘리고 어떻게 관리하며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즉, 교인들에게 어떻게 십일조를 하게 할까)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다.
2. 신학교에서는 나의 결혼생활과 사역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를 가르치지 않았다. 결국 나의 생활은 처음부터 심각하게 삐걱거렸다. 나를 주저앉히는 강한 아내와 우리 부부에게 직설적으로 조언해주는 훌륭한 상담자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결혼생활은 파탄됐을 것이고 우리의 사역도 실패했을 것이다.
3. 신학교에서는 멘토를 찾으라고 가르치지 않았고 멘토가 되는 법도 가르치지 않았다.
4. 신학교 수업에서는 성적으로 부적절한 행동과 간음에 대해서 경고하기는 했지만 목회자가 선을 넘은 이후에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일러주지 않았다. 이런 실패를 경험한 이후에도 새로운 기회라는 것이 있는지 혹은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다.
5. 목사는 제멋대로인 직분자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이 뿐만 아니라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아서 지시해줘야 하는 무기력한 직분자들에 대해서도 한 마디 들어본 바가 없다.
6.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역자들을 포함하는 직원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나는 교회행정에 관한 과목을 수강하기는 했지만, 교수는 텍사스주의 대형교회에서 직원으로 일했던 시절의 이야기만 되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는 거론되지도 않았고 연구 리포트도 없었다.
7. 변화하는 기술환경? (나는 웃기만 할 뿐이다. 1960년대 중반에는 변화라든지 기술이라는 것이 없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교회사무실은 다이얼식 전화기와 등사기를 쓰고 있었고 그것이 전부였다. 주보는 인쇄소에서 인쇄를 했다. 비서들은 주보를 매주 발송하기 위해서 "자동 주소 인쇄기"라는 거대한 기계를 운전했다. 예배당에서는 슬라이드를 보여주기 위해 삼각대 위에 스크린을 세워야 했다. 이런 것들과 마이크가 우리의 기술환경을 구성했던 것이다.)
8. 해고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해고된 사역자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 무능한 사역자를 어떻게 해고할 것인가? 자신이 실직한 경우에는 어떻게 자신을 추스르며 새로운 사역에 임할 것인가? 실패로부터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9.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서로 나누도록 어떻게 훈련시킬 것인가? 우리가 복음을 가르치기는 하지만 몇 년 뒤에 지금증인되기학교나 복음주의평신도연구소 등의 프로그램에서 마주치게 될 실제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는 들어본 바가 없다.
10. 교단이 무엇이며 교단의 역할은 무엇이고 어느 정도까지 교단의 일에 관여하거나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배우지 못했다. 교단을 형성하는 것은 성경적인가? 교인이 궤도를 이탈해서 완전히 비성경적으로 변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나는 신학교에서 누구도 이런 것들을 가르치지 않는 이유가 그들도 역시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관심을 촉구하고 "우리가 해답을 모른다"라고 말하기만 하면 한 걸음 앞으로 나간 것이 될 것이다.
오늘날의 신학교는 내가 지냈던 시절과는 다른 상황이다. 1960년대 중반에는 분교라는 개념도 없었고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것도 없었다. 사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신학교의 학위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었고 몇 가지 밖에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학위의 종류도 무척 많다. 졸업식장에 가보면 학위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입이 벌어질 것이다. 이슬람 전공 신학석사, 선교철학 전공 신학석사 등등.
그러므로 위에 나열된 내용들은 현재 신학교들이 더 나은 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고 고발하는 것이 아님을 알 필요가 있다. 그저 50년 전에 그랬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