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법안인 '테러방지법'이 2월23일(화)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된 가운데 야당은 본회의 표결을 막기 위해 의사진행방해(필리버스터)에 들어갔다. 이날 밤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5시간 35분 동안 발언한데 이어 같은 당의 은수미 의원이 24일(수) 새벽 2시 30분부터 12시 48분까지 10시간 18분 동안 발언했다.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테러방지법은 주호영 의원 외 156인(새누리당 의원 전원)이 발의했다. 이에 대해 야당은 물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시민단체들은 해당 법안이 "국가정보원을 강화하는 테러방지법이 제정되면 민주주의 및 인권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고 반대해 왔다.
법안의 세부적 내용은 이 같은 주장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테러방지법 2조는 "‘대테러 활동에 필요한 경우' 국가정보원(국정원)은 법원 영장 없이 감청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해당 조항의 경우 ‘대테러 활동'의 정의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은데다 상황에 따라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6조에서는 "국무총리 소속 대테러센터를 설치한다"고 정했다. 그러나 테러방지법은 대테러센터는 일반적인 기획, 조정 업무만 수행하고 정보수집 권한은 국정원장이 갖도록 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장에 대한 감독기능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02년 3월11일 천주교 인권위원회, 불교 인권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위원회,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대한성공회정의평화사제단 등10개 단체들이 낸 "테러방지법안 폐기를 촉구하는 종교인선언"(이하 종교인선언)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종교인선언은 정부가 9.11테러 직후 ‘테러방지법'을 내놓자 기독교계 등 종교계가 반대입장을 밝히기 위해 내놓은 것이다.
당시 종교계는 종교인선언을 통해 "테러 예방이라는 명목 아래 국정원의 권한을 확대 강화시키고 국정원으로 국가권력을 집중하려고 하는 것은 화해와 평화의 시대를 거스르는 악행"이라면서 해당 법안의 폐기를 촉구했다. 특히 종교계는 국정원의 권한 강화를 우려했다. 이에 종교인선언을 통해 "지금은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인권 향상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국정원의 해체나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할 때"라고 밝혔다.
종교인선언엔 선구적인 내용도 담겨 있다. 이 선언 2항엔 이런 내용이 명시돼 있다.
"우리나라는 월드컵대회 등 국제행사에 대비하여 월드컵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과 안전대책위원회를 이미 마련해놓았다. 또한 테러행위의 예방과 진압, 수사와 처벌을 위해 군 경찰 검찰 등에 대테러 전담기구 및 제도적 장치도 이미 준비되어 있다."
지금 테러방지법을 반대하는 논리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첫번째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선 더민주당 김광진 의원은 23일(화) 자신의 SNS에 "국정원장이 국회의장을 만나 북한이 테러를 준비한다는 첩보를 보고했다고하지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테방법이 필요없습니다. 이 법이 없어도 그 첩보 다 수집하고 있다는걸 국정원이 스스로 밝히고 있잖습니까?"라면서 기존 법령으로도 테러 예방이 가능하다고 꼬집었다.
아래는 2002년 종교계가 발표한 종교인선언 전문이다.
‘테러방지법안 폐기를 촉구하는 종교인 선언'
평화와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우리 종교인들은 국가정보원의 테러방지법안이 최근 여야 총무 합의를 통해 국회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소식에 놀라움과 우려를 감출 수 없다. 이에 종교인들의 의지를 모아 입장을 밝히는 바이다.
1. 국정원의 권한 강화는 시대를 역행하는 반인권적 악행이다.
최근 밝혀진 수지김 사건과 최종길 교수 고문의 전모는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안전기획부가 저질러왔던 인권침해와 권한남용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지금은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인권 향상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국정원의 해체나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할 때이다.
그런데 오히려 테러 예방이라는 명목 아래 국정원의 권한을 확대 강화시키고 국정원으로 국가권력을 집중하려고 하는 것은 화해와 평화의 시대를 거스르는 악행이다.
2. 테러방지법은 군병력을 동원하는 상설비상계엄법이다
우리나라는 월드컵대회 등 국제행사에 대비하여 월드컵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과 안전대책위원회를 이미 마련해놓았다. 또한 테러행위의 예방과 진압, 수사와 처벌을 위해 군 경찰 검찰 등에 대테러 전담기구 및 제도적 장치도 이미 준비되어 있다.
정보기관인 국정원은 자신들의 임무인 정보의 수집과 분석을 충실히 하면 되는 것이다. 국정원이 군병력과 경찰을 동원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테러방지법은 오히려 국방과 사법권을 흔들 우려가 있기에 '상설비상계엄법'이라 할 것이다.
3. 테러방지법은 인권을 침해하는 제2의 국가보안법이다
국정원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여 인권침해적인 요소를 모두 삭제했다는 말은 기만이다.
현재 국회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는 테러방지법안에 의하면 '테러'라는 개념을 '정치적 종교적 이념적 또는 민족적 목적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그 목적을 추구하거나 그 주의 주장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계획적으로 행하는 행위'라고 모호하게 정의하여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며 또한 국가보안법상의 불고지죄와 유사한 '테러범죄미신고', 외국인에 대한 구속 도청 감청 출국조치 규정, 인권침해에 대한 구제조치의 미비 등 이는 제2의 국가보안법으로 테러방지법이 인권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4. 국회는 비공개 청문회를 중단하고 테러방지법안을 즉각 폐기하라
현재 국회에는 '테러방지법 입법 반대에 대한 청원'이 접수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국가인권위원회와 대한변호사협회 등은 테러범죄에 대한 예방과 처벌은 '현행법으로 충분하다'는데 의견을 함께 하며 테러방지법안 입법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국회정보위에서는 3월 11일 비공개 청문회를 개최하여 공식의견서를 밝힌 이들 기관의 의견 청취는 없이 청문회에 법학자 2명의 진술인만을 채택한다고 한다.
이렇듯 비공개로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 테러방지법은 시민사회의 의견 수렴절차를 무시하여 절차적 민주성을 확보하지 못하였음으로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
5. 민주적이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테러 예방책이다
우리 종교인들은 평화를 옹호하며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모든 테러행위를 반대한다. 그러나 지금 절실한 것은 테러방지법안의 졸속적 국회 통과가 아니라 국가간 또는 집단간 진정한 화해와 평화의 손짓이다.
우리 사회에서 요구되는 진정한 테러방지 대책은 국민의 인권과 자유라는 기초 위에 국민의 광범한 지지와 동의를 얻을 수 있는 민주적이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만일 국회와 정부가 이러한 보편적 상식을 무시하고 국정원의 압력에 굴복하여 테러방지법안을 통과시킨다면 심각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엄중 경고하는 바이다.
2002. 3.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