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각 성과 촌을 다니시며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시고 모든 병을 고치시며 영과 마음과 몸 등, 전인을 치유하셨다. 이러한 나사렛 예수는 성령 사역자이셨다. 그 후 베드로, 빌립, 스데반 등 그의 제자들은 스승의 모범을 따라 성령 사역자들이 되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역사적 예수는 원형 성령 사역자이시다. 나사렛 예수는 이런 의미에서 유일한 성령 사역자시요 그 이후에 제자들과 교회사에 나타난 4세기의 교부 어거스틴, 이집트 수사(修士) 안토니우스를 비롯하여 중세의 버나드, 종교개혁가 루터와 칼빈, 18세기의 조나단 웨드워즈, 휫필드, 존 웨슬리, 19세기의 찰스 피니, 20세기의 로이드 존스 등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다.
여태까지 정통신학은 예수의 성육신과 신성을 강조하여왔고 기독론 중심의 신학을 전개하여왔다. 이는 정통기독교 교리의 핵심이다. 하지만,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며 아버지와의 관계는 강조하면서도 성령과의 관계는 전제하기는 하나 부각시키지 않는 경향이 있어왔다.
필자는 이 글에서 역사적 예수가 지니신 독특한 측면, 그동안 필자가 놓쳤던 부분, 말하자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성육신 가운데서도 신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 자신이 성령으로 태어나시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는 역사적 예수 이해에 있어서 그의 메시아적 사역이 지니고 있는 감추어져 있는 성령의 사역을 자유주의 신학과 심지어는 복음주의 신학이 간과하는 것을 보충하는 글이기도 하다.
I. 성령으로 태어나시고, 충만하신 예수
1. 성령으로 잉태된 나사렛 예수
성령은 성자인 나사렛 예수의 성육신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1:34-35)
여기 사용된 "덮으신다"(έπισκιάζω)라는 용어는 변화산 사건(눅9:34)에 대한 묘사에서도 다시 사용되고 있는데, 광야에서 낮에는 살인적으로 작렬하는 태양열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고 인도했던 하나님의 구름을 연상시킨다. 구름이란 가시적으로 나타난 "신비로운 하나님의 임재"(the mysterious presence of God)를 나타낸다. 이러한 천사의 기별에 대하여 마리아는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대답한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눅1:37-38)
예수의 잉태는 인간의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인한 생물학적 방식이 아니라 말씀이 천지를 창조하시듯이 성령의 권능으로 태초의 말씀이 마리아의 자궁에 들어가 아기 예수로 잉태된 것이다. 이러한 성령으로 인한 그의 출생은 예수의 신성과 죄 없는 존재를 보장할 수 있게 한다. 세례자 요한은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로서 아내 엘리사벳의 태에서 태어나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으나(눅1:13, 15)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약혼한 신랑 요셉과의 동침 없이 처녀 마리아의 태에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잉태되었다: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눅1:15). 세례자 요한의 출생은 자연적인 과정이었으나 나사렛 예수의 출생은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진행된 초자연적 과정이었다. 나사렛 예수는 잉태가 초자연적이고 그는 모태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하였다.
2. 성령의 기름부음 받아 성령과 말씀으로 충만한 메시아로서의 예수
1) 독생하신 하나님 아들 예수
예수께서 성령 사역자가 되신 것은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받을 때 성령의 충만을 받은 데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자신이 성령으로 잉태된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또한 자신이 메시아임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성령의 권능으로 사역을 하셨다. 사도 요한은 다음같이 증언한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예수는 태초의 말씀으로서 "성육신 하신 말씀"(das Fleisch gewordene Wort)이었다. 사도요한은 다음같이 증언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성육신하신 말씀인 예수에 관하여 다음같이 해설하고 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요일1:1-2).
예수가 말씀으로 충만하신 것을 드러내주는 장면은 복음서에서 그가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서 40일간 시험받으실 때에 마귀가 예수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시험했을 때, 예수는 신명기 말씀(신8:3b)을 인용하여 물리치신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b).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고 시험했을 때, 예수는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마4:7)고 물리치신다. 마귀가 예수를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내게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시험한다. 이에 예수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4:10b)고 물리치신다. 이는 예수께서 어린 시절부터 회당에 들어가 구약의 토라(Torah)를 열심히 읽으시면서 말씀으로 충만하신 것을 나타내준다.
2) 성령의 기름부으신 공적 사역
갈릴리의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의 글(사35: 4-6)을 펴 읽으시면서 예수는 자신의 메시아적 공적 사역을 선언하신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4:18-19). 예수는 자신이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서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시면서 자신이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아 메시아 사역을 하는 것임을 가리키신 것이다. 예수의 메시아 사역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역이다.
예수는 산상설교를 통하여 모세의 율법의 정신이 사랑이라는 것을 해석하시면서 하나님 나라가 그의 인격 안에 이미 도래했고, 천국이 가난한 자의 마음속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눅11:20).
그의 산상설교는 마태복음 5장-7장에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그의 말씀(가르침)들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의 설교와 말씀에 대하여 청중들은 놀랐다. 그의 설교는 권세있는 자의 설교로서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태는 다음같이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7:28-29).
세례자 요한이 옥에 갇혀서 예수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를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11:2-3)라고 질문하자 예수는 성령의 권능에 의해서 수행되는 그의 메시아 사역에 대해 간접적으로 대답을 하신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11:4-5). 소경이 보고, 앉은뱅이가 걷고, 나병환자가 치유되며, 청각 장애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은 성령의 치유능력에 의하여 가능한 것이다. 예수는 성령이 충만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령사역을 행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