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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잊지 말아야 할 예수의 큰 가르침 10가지 (I)

"근본적으로 자신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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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출처= 크리스천포스트)
▲조우 맥키버 목사는 오늘날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표방하면서도 근본적으로 자신들만을 위해 존재하며 교회 문밖의 세상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지도 않고 그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에게도 공감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고는 그 현실을 변화시킬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편집자 주] 조우 맥키버 목사는 오늘날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표방하면서도 근본적으로 자신들만을 위해 존재하며 교회 문밖의 세상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지도 않고 그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에게도 공감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고는 그 현실을 변화시킬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글을 2회에 걸쳐 나누어 싣는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눅6:46).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13:17).

제목을 이렇게 잡은 것에 대해 먼저 사과한다. 이런 일들을 바로 잡고 있는 신실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많은 훌륭한 교회들도 있으니까. 다른 뜻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수천 개의 교회들이 근본적으로 자신들만을 위해 존재하며 교회 문밖의 세상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지도 않고 그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에게도 공감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 말이 당신이나 당신의 교인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면, 감사하라. 만일 적용된다면, 상황을 뒤집는 일에 적극 뛰어들어라. 결론부에서도 다시 강조할 것이다.

1. 우리는 두 번째 계명이 명령인 것을 쉽게 잊어버린다.

우리는 기독교가 "나와 주님"과의 사적인 관계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예수는 그런 식의 게임은 거부하신다. 그분은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22:39)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명령이다. 선택지이거나 의견이거나 희망사항이거나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받을만한 생각이거나 하나의 훌륭한 발상인 것이 아니다. 이웃을 힘써 사랑하는 것은 예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세상에 펼치기를 기대하는 증거 중에서 핵심 요소에 해당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순종하지 않는가? 우리는 그것이 불편하고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할 때, 즉, 그들이 그것을 알게 되는 지점까지 그들을 돌보게 될 때, 그들은 우리를 필요로 하고 그것은 우리의 일정에 방해를 초래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사랑스런 사람들을 사랑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을 돌보며, 요구하는 것이 적거나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일이 된다.

2. 우리는 마태복음25장에서 굶주린 자를 먹이며 헐벗은 자를 입히고 병든 자를 문안하라는 그분의 명령과 관련하여 두 가지 사항을 자주 잊는다.

첫째, 우리는 이것이 명령이며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가 더 중요한 일을 하는 동안에도 이 명령을 실행할 시간을 찾기를 바라는 것임을 잊어버린다. 예수께서는 솔직하게 당신의 백성들이 이 일을 하기를 기대하신다. 나는 많은 교회들이 이것을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버려진 자들, 목소리 없는 자들, 잊혀진 자들을 위한 사역에 교인들을 참여시키고 있다는 보도를 보며 기쁨을 느낀다.

둘째, 우리가 "나의 형제들 가운데 가장 작은 자에게" 이런 일들을 할 때, 그분이 그것을 당신에게 한 것으로 받으신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하게 행해야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된 사람들에게는 박하게 굴 때가 많다. 바울 사도는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6:10)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말: 성경 어디에서고 교회가 이 세상의 모든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교회가 그 일을 하게 되면 정부가 복지에 관여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이제 성가신 일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있는 몇 명 되지도 않는 제자들에게 전 세계로 나가서 수십억 명의 물리적 필요를 충족시키라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면 웃음이 나온다.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것에 대해 감사하자.)

3. 우리는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감정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행동과 관련되어 있음을 잊어버린다.

주님께서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누가복음6장27절에서 말씀하셨을 때 그것이 행동을 요구하는 것임을 즉시 밝히셨다. 즉, 선대하고, 축복하고, 기도하고,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13-16장의 다락방 강화를 통해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그분의 계명을 지킨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물론, 말이 중요하며 감정도 중요하다. 그러나 행동, 즉, 우리가 하는 일보다 더 큰 위력을 발생시키는 것은 없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7:24).

세상사람 누구라도 두려움, 분노, 사랑, 증오 등 자신의 감정을 의지에 따라 발동하거나 완화할 수 있을 정도까지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만일 사랑이 단순히 감정에 불과하다면, 우리가 하나님이나 이웃이나 가족이나 제자들이나 원수들을 사랑한다고 할 때 주님은 줄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분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훨씬 더 통제가능하고 실행가능한 것들이다. 우리는 줄 수 있고, 기도할 수 있고 축복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그런 일에 대해 어떻게 느끼든지간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사랑의 일을 하는 것이다.

4. 우리는 박해받을 것을 예상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자주 잊어버린다.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요16:2).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역을 베푼 사람들에 의해서 사랑 받거나 감사의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다가 결국 그들의 호전적인 태도 때문에 허점이 찔리는 경우가 잦다. 우리는 "왜 그 사람들이 우리를 이런 식으로 대할까? 나는 그들을 돕고 축복한 일밖에 없는데..."라고 궁금해한다. "이럴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대답: 잘못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당신은 잘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마태복음 10장16-22절, 그리고 그와 유사한 구절에서 예수께서 우리가 "그분의 이름 때문에"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던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교회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서 자신을 이 일에 불렀지만 제대로 봉사할 자리를 찾아주지 못한 것 같은 주님에 대해 화를 내면서 환멸감을 표시하는 사역자들을 우연히 만날 기회가 있었다. 어떤 이들은 다시는 교회에 가지 않는다. 여러분은 이 사람들이 성경을 읽기라도 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들은 성경에서 우리가 교회 밖에서나 안에서 어려움을 당할 것을 예상하라고 경고하는 것을 보지 못했는가(행20:28 참고)?

5. 우리는 주님이 우리더러 우리의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자주 잊는다.

이 점은 앞에서 지적한 사항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사람들이 우리를 박해할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우리는 그것들을 무시해버릴 치외법권적 자격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분노를 키우거나 원한을 품거나 앙심을 풀지 않을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해야만 한다.

기독교인이라 공언하는 사람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몇 분간만 읽어보기라도 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주님의 백성이라는 사람이 다른 종교나 세속적인 향락을 좇는 사람들이나 제멋대로 하는 정치인들에 대해 적대적인 발언을 쏟아낸 것에 대해 기가 질려버릴 것이다.

글/ 조우 맥키버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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