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평생 섬겨온 사람들조차도 가끔 예수의 부활의 중요성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맥키버 목사는 우리의 정신을 가르치고 가슴을 뛰게 하며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활기를 주는 예수의 부활에 대한 12가지 사실을 일깨워 주었는데요. 예수의 부활의 의미를 곱씹어 봅니다. 아래는 맥커버 목사의 부활절 칼럼 전문.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하나님을 평생 섬겨온 사람들조차도 가끔 예수의 부활의 중요성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새로 신앙을 갖게 된 사람들은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받았던 새로운 생명의 완전한 차원을 즐겁게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의 정신을 가르치고 가슴을 뛰게 하며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활기를 주는 예수의 부활에 대한 12가지 사실을 제시한다.
1) 아무도 예수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예수의 부활은 제자들에게는 그의 죽음이 그러했던 것처럼 충격적이었다. 의심쟁이로 영원히 알려지게 된 도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고 있던 바를 표현했을 따름이다. 그는 자신이 철저히 검사해볼 때까지는 부활한 주님을 믿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요한복음20장 참조).
2)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부활을 의심했다. 모두가.
마태복음28장17절은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말한다. 진리를 전체적으로 고찰하려고 하는 자만이 자신의 이야기 속에 그러한 비난투의 진술도 포함하는 법이다. 마태 씨, 고맙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성령님.)
3) 나중에 제자들이 부활에 대해 철저히 고찰하고 논의한 뒤에야 비로소 그들은 예수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여러 번 예언했다는 사실을 회상하게 된다.
복음서들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곧 벌어질 이 세계변혁적인 사건을 준비하도록 세 번에 걸쳐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가복음8장31-32절, 9장31-32절, 10장33-34절을 참조하라. 그들은 예수께서 완전히 다른 계획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말씀들 중에 어느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나중이 되어서야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마가복음9장9-10절은 변화산에서 내려올 때 주님이 야고보, 요한, 베드로와 대화한 내용을 알려준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4) 무덤 입구의 돌이 굴려진 것은 예수가 나가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다.
제자들이 들어오도록 하기 위함이다. 천사가 말했다: "그분이 누우셨던 곳을 와 보라."
5) 예수는 믿는 자들에게만 나타나셨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에 모습을 보이신 사례는 고린도전서15장에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다. 믿는 자들에게만 "확실한 많은 증거들"(행1:3)이 주어진 대로 믿는 자들만 부활한 그리스도를 보았다.
6) 주님은 헤롯, 빌라도, 대제사장 등에게 "깜짝 방문"을 하지 않으심으로써 극적인 효과를 거둘 기회를 상실했다.
비판가들이 추측하듯이 부활사건이 조작된 이야기라면, 어떤 작가도 부활한 그리스도가 이 사람들을 잠깐 방문함으로써 응징할 기회를 누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예수께서 사람들을 어떻게 고치셨는지를 보지 않았는가? 예를 들어, 누가복음18장42절에서 여리고의 눈먼 거지를 예수께서 고치실 때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알았다, 네 원대로 됐다'라고 하시니 그의 눈이 떠졌다." 내가 약간 현대어로 바꾸었지만 그런 것이 바로 극적 요소가 아닌가?)
7) 몇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예수의 반대파들이 그분의 시신을 훔친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한가지의 명약관화한 이유 때문에 이 사실을 안다. 제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으로 예루살렘 전역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을 때(행5:28), 이것을 중지시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의 반대파들이 그의 시신을 제시하는 것일 것이다. 그들은 단 한 가지 간단한 이유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분의 시신을 갖고 있지 않았다.
혹시 다음번에 "유대인들이 예수가 죽은 사람들로부터 부활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것을 방해하기 위해 그들이 시신을 훔쳐서 감추었다"는 등의 어리석은 발언들이 들리거든, 이 사실을 기억하라: 만일 그들이 그분의 시신이 어디 있었는지 알았더라면 그들은 복음전파를 도중에 중단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8) 유대인들 중 어떤 이들은 예수가 죽은 사람들로부터 부활할 것을 예언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이 기억하고 있었는데 제자들이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이다.
마태복음27장62절 이후는 이렇게 적혀 있다: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래서 그들이 로마 병사로 하여금 무덤을 안전하게 지키도록 요청했다.
우리는 그들이 예수의 부활에 대한 이 추가적인 확증을 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
9) 예수의 친구들이 그분의 시신을 훔치지 않았다.
첫째, 그들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언을 잊어버리고 실망하여 마을을 떠났던 것이다(누가복음24장 참조).
둘째, 제자들의 놀라운 변모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터져 나왔을 때 실제로 "대포에서 쏘아진" 것과 같았다. 그들은 예수의 메시지를 들고서 로마 제국 전역에서 폭발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복음 때문에 죽었다.
그 어느 누구도 조작된 이야기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
10) 복음은 예수의 부활이 있기에 살아나고, 부활이 없으면 주저앉는다.
바울은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15:17). 그는 덧붙인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9).
친구여, 예수의 부활은 선택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큰 하중을 견디는 기둥, 즉, 수천 가지의 현실이 매달려 있는 기둥이다.
11) 이와 똑같은 "부활의 능력"이 지금도 가능하다.
바울은 자신의 마음속 소망을 진술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빌3:10).
1945년에 세계는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을 때 원자력의 파괴적인 힘을 목격했다. 그때 이래로 우리는 원자력의 긍정적 사용을 도모하기 위해 헌신해왔다. 오늘날 핵발전은 도시의 전기를 공급하고 전 세계의 물밑으로 잠수함을 보내며 수천 가지의 일들을 해낸다. 예수를 죽은 사람들로부터 부활시킨 힘은 어제 나의 설교에 힘을 부여하시고 어젯밤 당신의 간증에 능력을 부었으며 오늘 아침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 성령의 능력과 동일하다.
게다가, 나는 당신과 나를 어느 날에 부활시키는 것도 꼭 같은 부활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12) 부활사건은 수천 겹의 의미를 갖고 있다. 두 가지의 커다란 의미는 이것들이다.
a)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분의 정체성을 확인해준다. 그분이 자신에 대해 제시한 모든 주장들과 그분이 제자들에게 주었던 모든 약속들과 그분이 원수에게 안겼던 모든 심판들이 사실인 것을 확인해준다.
b) 그리고 그분은 오늘도 여전히 살아계신다.
한 스승의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즉, "부활 사건은 예수를 당신들이 믿는 모든 다른 종교지도자들보다도 더 우월하게 만들지 않나요?"라고 질문을 받았을 때, 그들은 "우리는 2천 년 전에 일어난 일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너무나 무식한 대답이다.
만일 똑 같은 주님, 즉, 갈릴리의 먼지 날리는 오솔길과 시온의 언덕을 걸으며 하나님의 길을 가르쳤던 나사렛 예수,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갈보리에서 죽음으로써 죄의 대가를 대신 지불했던 구세주가 오늘 우리 세상에 여전히 살아있고 자유로이 전파된다면 큰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그분은 오늘도 실제로 살아계시고 자유로이 전파되고 있다. 우리는 그의 발 앞에 도마처럼 엎드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여!"(요20:28)라고 아뢸 따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 그분은 부활하셨고 어떤 것도 이런 적이 없을 것이다!
글/ 조우 맥키버(Joe McKe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