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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놀라운 이름

2016년 4월 3일 청파감리교회 주일예배 설교자 김기석 목사

kimkisuk
(Photo : ⓒ베리타스 DB)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

성경본문

시 66:1-12

[온 땅아, 하나님께 환호하여라. 그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하여라. 하나님께 말씀드려라. "주님께서 하신 일이 얼마나 놀라운지요? 주님의 크신 능력을 보고, 원수들도 주님께 복종합니다. 온 땅이 주님께 경배하며,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하여라. 오너라. 와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보아라. 사람들에게 하신 그 일이 놀랍다. 하나님이 바다를 육지로 바꾸셨으므로, 사람들은 걸어서 바다를 건넜다. 거기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기뻐하였다. 주님은 영원히, 능력으로 통치하는 분이시다. 두 눈으로 뭇 나라를 살피시니, 반역하는 무리조차 그 앞에서 자만하지 못한다. 백성아, 우리의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을 찬양하는 노랫소리, 크게 울려 퍼지게 하여라. 우리의 생명을 붙들어 주셔서, 우리가 실족하여 넘어지지 않게 살펴 주신다.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셔서, 은을 달구어 정련하듯 우리를 연단하셨습니다. 우리를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우리의 등에 무거운 짐을 지우시고, 사람들을 시켜서 우리의 머리를 짓밟게 하시니, 우리가 불 속으로, 우리가 물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마침내 건지셔서, 모든 것이 풍족한 곳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설교문

  •  부활절 이후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부활절이 지났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미세 먼지로 덮인 대기는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세계 도처에서 들려오는 테러 소식이나 정치인들의 이전투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마 다투어 피어나는 꽃들에 눈길을 줄 수 있음이 우리의 행복입니다. 교회는 오랫동안 부활절 성야 의식을 거행하곤 했습니다. 캄캄한 예배당 안으로 그리스도의 빛을 상징하는 부활초가 입장하면 신자들은 그 빛에서 각자의 초에 불을 밝혔습니다. 성찬식을 거행하면서 사람들은 '마라나타'(maranatha)라고 외쳤습니다. '주님께서 와 계신다' 혹은 '주님께서 오신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어둡지만 부활하신 주님은 그 어둠을 밝히는 빛이십니다. 믿는 이들에게 부활절 이후의 시간은 세상에 만연한 어둠을 밝히는 한점 불빛이 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부활절 이야기는 당혹스러워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부활은 전대미문의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으로 달려갔지만 얼른 자기들의 골방으로 돌아갔습니다. 도마는 주님의 손과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길에서 만나 자기들과 동행했던 이가 주님이신 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부활의 경험이 없었다면 그렇게도 역동적인 초대교회는 탄생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골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은 세상에 나아가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세상이 버렸던 그분을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다고 외쳤습니다. 고난이 두려워 스승을 버렸던 제자들이 오히려 그 이름을 위하여 고난받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했습니다.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은 '일어선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믿음 안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8:38-39)

이런 확신이 그로 하여금 온갖 시련과 박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복음의 증인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구원받음에 대한 기쁨, 하나님의 꿈에 동참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감격이 고통과 두려움을 능가했기에 할 수 있는 말입니다.

  •  찬양해야 할 이유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온 세상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에 초대하고 있습니다. "온 땅아, 하나님께 환호하여라. 그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하여라"(66:1-2). '온 땅'은 물론 '온 세상'을 의미하는 말이겠습니다만, 이런 표현을 사용한 까닭은 다신론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옛 사람들은 신들이 각자에게 주어진 지역을 관장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컨대 청파동을 다스리는 신이 따로 있고 종로를 다스리는 신이 따로 있었던 셈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통치를 공간화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온 땅'을 하나님 찬양의 자리에 초대했다는 것은 신들에 대한 그릇된 관념에서 벗어나 한 분 하나님 앞에 나아오라는 초대인 셈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은 세 가지 명령형 동사 속에 담겨 있습니다. '환호하여라', '찬양하라', '찬송하라'가 그것입니다. 이렇게 기쁘게 찬양해야 할 이유는 3절에 나옵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이 얼마나 놀라운지요? 주님의 크신 능력을 보고, 원수들도 주님께 복종합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은 어떤 일이기에 원수까지도 주님께 복종하는 것일까요? 이런 질문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시인은 '와서 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위해 하신 일을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다를 육지로 바꾸셨으므로, 사람들은 걸어서 바다를 건넜다". 이것은 물론 출애굽 사건을 가리킵니다만 '와서 보라'는 단어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는 늘 현재진행형입니다.

바다를 육지로 바꾸셨다는 말은 과거 출애굽 때 벌어졌던 유일회적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재도 지속되는 또 지속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사실 바다를 육지로 바꾸셨다는 말 속에는 상당히 심오한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고대 가나안 신화에서 바다와 강은 우주적인 권세를 상징했습니다. 바다 물결이 흉용(洶湧)하고 강물이 범람할 때 사람들은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다와 강을 관장하는 신이 따로 있다고 믿었고 그 신들의 호의가 없이는 사람은 살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포세이돈과 오케아노스는 바다와 강물을 관장하는 신들입니다. 가나안 신화는 바알이 바다의 신인 얌(yam)과 강물의 신인 나하르(nahar)를 정복하여 질서를 세웠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가나안 신화를 잘 알고 있는 시인이 출애굽 사건을 상기시키고 있는 까닭은 야훼 하나님이야말로 혼돈과 무질서를 극복하시는 분임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위태롭기 그지 없습니다. 불확실성이 자꾸 증대하여 내일을 기약하기 어렵습니다. 애써 일구어놓은 삶의 터전이 일시에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바다를 육지로, 무질서를 질서로, 죽음의 문을 생명의 문으로, 아골 골짜기를 생명의 샘으로,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을 부활의 영광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마치 구원의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거기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기뻐하였다"고 노래합니다. 바다를 육지로 바꾸는 기적은 날마다 일어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시인을 따라 이렇게 노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영원히, 능력으로 통치하는 분이시다. 두 눈으로 뭇 나라를 살피시니, 반역하는 무리조차 그 앞에서 자만하지 못한다."(7)

'주님이 통치하신다'는 이 한 마디 속에 삶의 든든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이르는 말입니다. 악이 제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악은 최후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무리는 언제든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온 땅이 평화를 누리는 것이고, 그 땅에 기대어 살아가는 모든 생명이 각자에게 품부된 삶을 충만히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뜻을 거역하는 이들을 엄한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  자비로우신 하나님

현실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우리 시대의 어둠 때문에 가슴이 아픕니다. 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마치 서로를 조롱하고 상처를 입히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태도를 보이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영혼이 쏙 빠져나간 좀비같은 이들이 거리를 거닐고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마땅히 지켜져야 할 기본적인 룰이 다 무너지고 적나라한 미움과 적대감이 거리를 휩쓸고 있습니다. 인간성의 심오한 깊이를 드러내는 이들과 접촉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더 나은 존재가 되려는 노력은 줄어들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이 되기 위해 분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시대는 참 빈곤합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 삶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피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배를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땅의 것들이 아니라 위의 것들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백성아, 우리의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을 찬양하는 노랫소리, 크게 울려 퍼지게 하여라. 우리의 생명을 붙들어 주셔서, 우리가 실족하여 넘어지지 않게 살펴 주신다."(8-9)

사탄이 우리를 지배하려 할 때 제일 처음 하는 일은 우리 삶에서 감사를 제거하는 일입니다. 우리 마음에 불평과 불만이 많아질 때 사탄은 어둠 속에서 미소를 짓습니다. 삶이 아무리 고달파도 하나님의 통치를 신뢰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찬양을 그치지 않습니다. 얼굴이 웃으면 마음도 따라 웃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면 하나님의 힘과 위로와 기쁨이 우리 속에 유입됩니다. 우리 마음을 뒤흔들어놓던 혼돈의 바람은 잠잠해지고 평화가 찾아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지 않으신다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시련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자비가 뭐냐는 질문에 대해 어원으로 보자면 '불행한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라고 대답한 후 즉시 신앙적 의미의 자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비는 끌어안는 신적인 태도요, 환대하시는 하느님, 용서하시려고 몸을 굽히시는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내 주시는 것입니다"(안드레아 토르니엘리 대담,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대화 <신의 이름은 자비입니다>, 국춘심 옮김, 북라이프, 2016년 3월 31일, p.37)

하나님은 끌어안는 분이요, 몸을 굽히시는 분이요, 당신 자신을 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기에 우리는 시련을 겪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지금 겪고 있는 시련조차 무의미한 고통이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  시련을 넘어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셔서, 은을 달구어 정련하듯 우리를 연단하셨습니다. 우리를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우리의 등에 무거운 짐을 지우시고, 사람들을 시켜서 우리의 머리를 짓밟게 하시니, 우리가 불 속으로, 우리가 물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10-12a)

사람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은 무의미성입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혹은 겪고 있는 일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내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인은 그 백성이 겪고 있는 현실의 고통을 하나님의 연단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모든 고통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것은 누구도 답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물론 바람을 심어 광풍을 거두는 일이 있습니다. 악인들이 더 이상 사람을 해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은 참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시련을 겪기도 합니다. 시련을 만날 때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징계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일은 우리의 능력을 뛰어넘는 일입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시련을 통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시인은 시련의 시간조차 하나님께 귀속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 우리의 속 마음을 드러내시고, 우리 속에 있는 불순물들을 걸러내신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물에 사로잡힌 물고기나 새처럼 암담한 일을 겪기도 하고, 무거운 짐이 어깨를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것 같은 치욕을 감내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시인은 그 모든 고통의 시간을 불과 물을 통과하는 것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도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간, 위로부터의 도우심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마침내 건지셔서, 모든 것이 풍족한 곳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12b)

'그러나'라는 부사 속에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언제나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어 다가옵니다. 절망의 심연 속에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우리가 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지금도 우리 곁에는 불과 물의 시간을 지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홀로 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통해 그들을 돕고 싶어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아슬아슬한 생존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을 넓은 곳으로 인도하는 일은 무엇이나 하나님의 일입니다. 지금 울고 있는 이들 곁에 다가가 그들이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하십시오. 마음이 무너져버린 이들 곁에 다가서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몸을 굽히고, 자신을 선물로 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십시오. 그렇게 사는 것이 바로 부활을 믿는 자의 삶입니다. 주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답게 어두운 세상에 희망과 사랑의 불을 가져가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온라인뉴스팀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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