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예수는 당신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다

맷 무어(Matt Mo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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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pixabay)
▲맷 무어는 예수는 당신의 직업상의 포부를 달성하거나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성취하도록 돕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몇 주 전에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커피숍의 정원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그 때 바리스타 중의 한 명이 담배를 피며 잠깐 쉬려고 정원으로 나왔다. 그는 내 컴퓨터 옆에 놓인 책의 표지에 커다랗게 '하나님'이라 씌어진 것을 보고 질문을 했다. 그렇게 해서 종교와 정치에 대해 이러저러한 짤막한 대화를 그와 나누게 됐다. (정치와 종교는 나의 아버지께서 내게 이것들과 관련하여 낯선 사람과는 절대로 대화하지 말라고 가르쳤던 주제들이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그 말을 듣지 않은 셈이다.)

그는 다양한 종교들을 연구했으며 그 모든 종교들은 미묘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똑 같은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이봐요, 친구. 나도 기독교인입니다. 나는 다른 선택을 한 사람에 대해 증오하지 않아요.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 예수는 궁극적인 역할모델입니다. 그는 강력하고 유연하며 용감하잖아요? 그의 발자취를 따르면서 내 인생을 멋지게 만들고 싶은 것이 제 꿈입니다."

조금 더 길게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 나는 "인생을 멋지게 만든다"는 말이 자신의 직업상의 포부를 성취하고 실속 있는 변화를 이루고 싶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뭐라구요? 모든 종교가 똑 같은 것을 가르친다구요? 당신의 '연구'라는 것이 구글 검색 결과로 알아차린 상위 세 가지 항목 정도로 요약되는 것은 아닌가요? 그리고 비슷한 종교들 가운데 당신이 기독교를 선택한 이유가 예수가 훌륭한 역할모델이기 때문이라고요? 정말인가요?

이런 반박들이 혀끝에서 맴돌았지만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나는 본성적으로 욱하는 성격이 있어서 혹시 내 속에서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을 느끼기라도 하면 나는 그것을 억누르려고 애쓴다. 왜냐하면 그대로 말해버리고 나서는 꼭 후회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독교의 신앙과 관련된 그릇된 관점에 대해 부드럽게 응대할 수 있을 시간과 장소도 있기는 하지만 그 사람이 10분 정도 휴식을 취하러 나온 사이에 나눈 처음 대화를 그런 식으로 운영할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욱하지 않고 나중에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기회를 얻기 위해 나는 가만히 앉아서 그의 논조를 경청했다. 그리고 예수가 강력하고 유연하며 용감하다는 그의 말에 동의하기도 했다. 사실, 예수는 ... 그런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그 바리스타 친구에게 조만간 들려줄 말은 그가 핵심을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예수가 실재하며 엄청난 역할모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그가 예수란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하셨고 그분이 세상에 대해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갖고 있는 이해는 심각한 실조 상태에 있었다. 그는 예수가 이 땅에서 살며 죽고 부활하신 여정의 유일한 목적이 모범을 세워서 우리가 노력할 때 성공할 수 있도록 필요한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이 보였다.

한편으로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기독교는 예수의 성품을 따르며 우리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성경적 원리에 따라 생활할 것을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것들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너를 네가 될 수 있는 최고의 너로 만들어주기 위해서 여기에 있다. 그러니 너는 네가 원하는 직업이나 아내나 6자리 수의 수입을 얻게 될 것이다"와 같은 발언을 한 적이 없다. 그분의 메시지는 대속과 복종과 관계라는 하나님중심적인 복음이다.

대속: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5).

여러분과 내가 직면한 최대의 난관은 우리의 낮은 자존감이나 우리의 꿈을 실현시키지 못하는 무능함이 아니다. 최대의 난관은 예수가 없다면 우리는 전능한 하나님에 대한 반역자로서 그분의 심판을 절대로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난관을 역전시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러 오셨다.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복종하는 것을 거부한 대가로 고통을 받도록 내버려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자신이 짊어지고 하나님 아버지의 정죄를 모조리 받으셨던 것이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

복종: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신약 기자들은 기독교인들을 "강력하고 유연하며 용감한" 사람들로 간주하지 않는다. 예수는 그들이 자기중심적인 노력을 통해서 성공하고자 할 때 그저 도와주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것이다.

오늘날 "종"이라는 말이 부정적인 함의를 갖고는 있지만, 나는 그 유능하며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기자들이 도달하고자 한 지점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기독교인이라는 존재의 모든 구성요소는 예수께 빚진 상태인 것이다. 그분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 -존재, 용서, 영생- 을 주시므로 그들은 무릎을 꿇게 된다. 그들은 그분께 즐겁게 봉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과 복음과 무관한 야망을 내려놓는 것이다.

관계: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14)

복음서 전체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관계의 역학을 구현하고 계심을 확인할 수 있다. 그분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오셨다. 그분은 완전하고 거룩하지만, 자신의 영광에 대해 무한정으로 미치지 못하는 인간들과 거리를 두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그들과 함께 이야기했다. 심지어 자신이 가르치는 것을 행하면 자신의 친구(!)가 된다고까지 말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자신을 멀리서 경탄하기를 원하는 냉정한 존재가 아니다. 그분은 관계를 중시하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으며 우리가 그분과의 동행을 즐기기를 원하신다.

만일 여러분이 나의 바리스타 친구처럼 예수를 단순히 훌륭한 역할모델로 보고서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한 견실한 정보를 얻을 만한 존재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길 바란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는 당신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그분의 성품 중 일부를 모방하기 위한 대상이 아니며 그분을 당신의 계획의 일부로서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그분은 당신의 간디나 도깨비 방망이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예수는 하나님이시다. 죄인을 구원하시고 죄인들을 통치하시며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좋은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여러분이 자기숭배와 세속적인 야망으로부터 돌아서서 그분을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대상이자 보배로 받아들이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여러분이 창조 때의 의도대로 하나님중심적인 삶을 사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경험하기를 원하신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초청에 응답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감사, 복종, 사랑, 예배뿐이다. 다른 길은 없다.

기사출처: http://www.christianpost.com/news/jesus-didnt-come-to-fulfill-your-dreams-161597/#9GdISF742IxYiVuw.99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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